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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드 Aug 21. 2023

오펜하이머의 누명을 해소한 미 에너지부 장관의 성명

2022년 12월 16일, 제니퍼 그랜홈 장관 발표


* 약간의 생략이 들어가 있으며, 오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 강조된 부분은 역자의 주관에 따라 적용된 것입니다.

* 원문은 여기



[배경]


1954년 6월, 미국 원자력 위원회(Atomic Energy Commission, AEC)는 J.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의 보안 인가를 취소했습니다. 지난 10년 간 오펜하이머 박사는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 소장과 AEC의 일반 자문 위원회(General Advisory Committee) 의장 직을 수행했습니다. 공직에 있는 동안 오펜하이머 박사는 정부에 있는 그 누구보다 미국의 핵 무기 프로그램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보안 인가와 관련된 결정에서 AEC는 오펜하이머 박사가 기밀 정보를 누설하거나 잘못 관리했다고 주장하지 않았고, 조국에 대한 그의 충성심에 의문을 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보다 AEC는 오펜하이머 박사의 성격에 ‘근본적인 결함fundamental defects’이 있다면서 그의 보안 인가를 취소했습니다.


1953년 12월 AEC가 제한된 데이터 접근을 일시적으로 정지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펜하이머 박사는 청문회를 요청했으며, 공정한 절차로 자신이 결백하다는 게 밝혀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AEC 내에서 3단계의 검토 과정을 거쳤습니다. 먼저 당시 AEC의 보안 인가 규정에 의해 AEC는 인사 보안 위원회(Personnel Security Board)에서 3명을 뽑아 오펜하이머 박사의 보안 인가를 심사하게 하였습니다. 1954년 5월 27일, 2:1의 투표 결과로 인사 보안 위원회는 AEC 일반 자문 위원회에 오펜하이머 박사의 보안 인가를 되살리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인사 보안 위원회는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근거를 설명하는 보고서를 발행했는데, 워원회 측은 ‘국가적 배신 행위’에 대한 증거를 찾지 못했고, ‘해당 개인의 애국심과 충성심을 보여주는 긍정적이고 책임감 있는’ 증거들만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인사 보안 위원회는 오펜하이머 박사의 과거 동료들에 관한 평가(이는 1947년 오펜하이머 박사의 보안 인가가 갱신되었을 때 이미 검토되었음), 그리고 오펜하이머 박사가 수소폭탄 개발을 반대하지 않았다면 ‘프로젝트가 훨씬 활발하게 수행되어 관련 분야에서 일찍이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졌을 것’이라는 이유로 그의 보안 인가를 되살리지 말라는 권고를 내렸습니다.


다음으로 AEC 총책임자(General Manager; 뒷부분에서 chairmen of AEC라는 표현이 나와 해당 어구는 직역하였음. 참고로 이 제너럴 매니저는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데인 드한이 연기했던 니콜스)는 인사 보안 위원회의 확인 사항을 권고하는 내용의 상세한 서신을 보내 해당 안건을 위원회 전체에 회부했습니다. 비록 그는 인사 보안 위원회가 확인한 바를 권했지만, 인사 보안 위원회가 제공한 것과는 다른 이유에 기반해 그런 행동을 취했습니다. 인사 보안 위원회 결정의 중심 요인에서 총책임자는 ‘증거를 보면 수소 폭탄에 관한 오펜하이머 박사의 태도에 악한 동기가 없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대신 그의 서신은 오펜하이머가 과거 동료들에게 얼마나 정직했는지candor, 그 동료들이 누군지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나 서신은 ‘오펜하이머 박사가 타국에 기밀을 넘겼다거나 조국을 배반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고도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셋째, 1954년 6월 29일 오펜하이머 박사의 자문 계약이 만료되기 이틀 전 AEC는 인사 보안 위원회의 권고를 4:1의 투표로 받아들였고, 다수는 총책임자의 서신을 따르는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 DOE)는 AEC의 후신으로서 개인 보간 인가를 비롯한 여러 기능을 이어받았습니다. 이러한 권한으로 DOE는 최근 상원의원 34명, 아이다호 국립 연구소의 전현직 연구소장, 그리고 로스앨러모스 국립 연구소 소장들로부터 ‘오펜하이머 사건In the Matter of J. Robert Oppenheimer’에 관한 AEC의 1954년 결정을 재고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저(에너지부 장관) 역시 과거에 이 문제가 검토된 바 있지만, 재검토할 가치가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논의]


본 부처는 지금껏 오래 전에 사망한 개인을 상대로 한 AEC의 명령을 재고하지 않았으며, 그런 일이 보통 고려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오펜하이머 문제는 몇몇 측면에서 분명 재고할 가치가 있습니다. 오펜하이머 문제는 전쟁에서 없어서는 안 될 뛰어난 역할을 맡은 사람에 관한 사항이며, 조국에 관한 그의 애국심과 충성심은 결코 심각하게 의심 받은 적이 없습니다. 역사적 증거들을 보면 오펜하이머 박사의 보안 인가에 관한 결정은 정보 보안을 진실로 걱정해서라기보다는, 오펜하이머 박사가 핵 무기 정책에 관한 공공 논의에서 발휘하는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한 AEC의 정치적 욕심과 더 관련이 깊었습니다. 이러한 정치적 동기가 인사 보안 프로세스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 됩니다. 이런 이유로 저는 직원들에게 오펜하이머 문제를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오펜하이머 문제와 관련하여 가장 믿을 만한 자료는 AEC 직원들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1959년 AEC 변호사는 AEC 총책임자를 위해 해당 문제의 법적 분석을 포함한 내부 검토를 수행했습니다. 수많은 절차적 문제를 열거하며 그는 ‘시스템은 실패했으며… 충성심 있는 한 미국인에게 상당한 불의가 자행되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 검토에서 밝혀진 문제 중에는 ‘위원회가 전부터 위원장이 권고한 사항을 보유하고 있었고, 이는 인사 보안 위원회 보고서와 강조점이 매우 달랐으며, 그렇기에 인사 보안 위원회가 고려하지 못했던 요인들을 제출했다’는 사실도 있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오펜하이머의 변호인은 분명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으며, 오직 인사 보안 위원회의 제안만 고려하여 검토안을 작성하게’ 하였습니다. 1977년 또 다른 AEC 변호사는 오펜하이머 박사에 반대하는 서신을 썼지만 양심 상의 이유로 해당 사건에서 내려왔는데, 그는 그 사건만큼 누군가 안보 위협이라는 이미 결정된 목적으로 AEC가 일을 진행했던 적이 없다고 회상했습니다.


이후 AEC, 에너지 연구 개발청(Energy Research and Development Administration, ERDA), 그리고 DOE에서 활동했던 역사학자들이 1989년에 펴낸 책에서는 이 문제의 사실적 기반을 검토하였습니다. 이 책은 1957년에 시작된 AEC 역사를 쫓아가려는 열띤 노력의 일환으로, 여기엔 오펜하이머 청문회와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으며 수많은 AEC 위원장, ERDA 관리자, DOE 장관들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저자인 역사학자들은 AEC 문서에 자유롭게 접근하였는데, 그것들은 책의 주요 원자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위원회가 ‘오펜하이머의 보안 인가가 국가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거나, 안보 시스템이 요구하는 바와 상반된다고는 양심상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분석과 그들이 찾아낸 자료들을 보면 오펜하이머 사건에서 수많은 부조리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주장된 결함 대부분은 역사적으로 시간이 많이 흐른 탓에our standpoint of historical remove 평가하기 쉽지 않지만, 두 가지는 당시 AEC가 견지하던 규칙과 분명히 상충합니다.


첫째, 인사 보안 위원회는 일방적 의사교환과 관련된 AEC 보안 인가 절차(Security Clearance Procedures)의 요구조건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보안 인가 절차에서는 인사 보안 위원회 위원들이 청문회 진행 시 지원을 받는 걸 허락하고 있지만, ‘위원회 심의에 참여’하였거나 ‘사건의 시비와 관련하여 위원회에 의견을 표출’할 법한 사람에겐 지원을 받는 걸 명백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1954년 4월 12일에 이루어진 청문회보다 한 주 전, 인사 보안 위원회는 오펜하이머 박사의 보안 인가를 취소한 사건에 출석했던 변호사들, 로저 롭(Roger Robb;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비공개 청문회 때 오펜하이머와 증인을 몰아붙이던 그 사람. 제이슨 클라크 역) 아서 롤랜더(Arthur Rolander)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검토했습니다. 사실 인사 보안 위원회는 AEC 총책임자 윌리엄 미첼(William Mitchell)로부터 ‘롭과 롤랜더가 청문회 준비를 돕는 목적으로 위원회에 풀타임으로 배정되었고, 그들은 첫 주에 위원회가 파일을 읽을 때 출석할 것이다’라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오펜하이머와 그의 변호인은 인사 보안 위원회의 청문회가 개시되기 전 벌어졌던 위원회와 기소 팀의 논의에 출석할 수 없었습니다.


롭과 롤랜더, 인사 보안 청문회의 일방적 의사교환은 법적 절차가 진행된 다음에도 계속되었습니다. 그들은 청문회 동안 위원회 심의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으며, 이 자리에도 오펜하이머의 변호사는 없었습니다. 롭과 롤랜더는 일방적 의사교환과 관련된 보안 인가 절차를 어겼습니다. 또한 ‘사건을 속단’하거나 ‘편견으로 공정한 제안을 할 수 없는’ 사람을 사건에 앉혀서는 안 된다는 AEC의 규칙을 인사 보안 청문회가 지켰는지도 심각하게 의심되는 부분입니다.


둘째, AEC는 오펜하이머의 변호사에게 AEC 총책임자가 알아낸 사실과 그의 권고안을 드러내는 서신을 논박할 자리에 출석할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 서신은 AEC의 최종 판단에 기반이 된 결정적인 문서였습니다. 보안 인가 절차에 규정된 바에 따르면, AEC 총책임자는 ‘보안 인가를 허가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에 관해 모든 권고안이 수반된 전체 기록을 토대로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AEC는 이런 규정에서 벗어나 위원들끼리 최종 결정을 내렸습니다. 보안 인가 절차는 관련 개인에게 ‘총책임자가 찾아낸 자료의 사본을 제공’해야 하며 ‘본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취지서를 제출할 권리’가 있음을 알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오펜하이머 박사는 이런 권리를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오펜하이머 박사와 그의 변호인은 AEC가 결정을 내린 뒤에야 AEC 총책임자가 위원들에게 권고안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펜하이머 박사의 변호인은 AEC 총책임자가 알아낸 사실과 권고안을 다룰 기회가 없었다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총책임자가 인사 보안 위원회가 내린 결론에서 벗어났고, 인사 보안 위원회 보고서와는 다른 사실을 강조했으며 오펜하이머 박사에게 새 혐의를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반대표를 냈던 위원인 헨리 D. 스미스(Henry D. Smyth)는 이 점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그의 표현은 이렇습니다. ‘총책임자가 알아낸 사실과 권고안은 인사 보안 위원회 보고서와 매우 다르고, 그 보고서에 없는 내용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오펜하이머 박사의 변호인에게 니콜스의 서신을 논평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면, 그 서신이 공개됐을 때 심각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결론]


그 당시 오펜하이머 박사나 다른 누군가가 제한된 자료에 접근할 수 있었어야 했느냐는 의문은 70년이 지난 지금 본 부처가 대답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며, 그런 시도를 해서도 안 됩니다. 보안 인가 심판 절차는 구두 증언이 가지는 신빙성과 다른 증거들이 그 당시 맥락에서 얼마나 잘 평가되었는지를 민감하게 따지는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펜하이머 사건’의 실질적인 시비를 재검토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오펜하이머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AEC가 본인들의 규칙을 어겼다고the AEC failed to follow its own rules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 점이 절차의 공정성에 중요하게 작용했다고도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보안 인가 취소 건을 맡았던 변호사들이 위원회를 돕게 하고, 청문회 이전 한 주 내내 문서 자료를 검토하도록 한 일이 위원회의 통찰력을 흐리게 하고, 열린 마음으로 청문회에 임할 수 없게 했을 거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기에 더해 AEC가 최종 결정을 내릴 때 오펜하이머 박사의 변호인은 AEC에게 제출된 자료를 알지 못했으며, 그 자료는 인사 보안 위원회가 내놓은 사항과 매우 달랐습니다. 이로써 AEC는 해당 절차의 효용성을 부정할 수 없는 수준으로 위태롭게 하였습니다.


이런 잘못된 부분으로 인해 AEC 명령은 무효화되어야 하며, 생존해 있는 허가 신청자의 경우 해당 규칙에 따라 새로운 심사를 받아야 합니다. 오펜하이머 박사의 경우 (그가 사망했기에) 새로운 판결은 없을 것입니다.


원자력 위원회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에너지부 장관에 부여된 권리에 따라, 저는 1954년 6월 29일 오펜하이머 사건에 내려진 결정을 무효화할 것을 명합니다I hereby order that the decision rendered on June 29, 1954, In The Matter of J. Robert Oppenheimer be vacated.


오펜하이머 박사가 1967년 사망했을 당시 J. 윌리엄 풀브라이트(J. William Fulbright) 상원의원은 상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펜하이머 박사의 특별한 천재성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는지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에게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기억합시다.’ 오늘날 우리는 미국 정부가 가장 수준 높은 탁월함으로 조국에 봉사했던 인물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기억합니다. 정치적 동기는 인사 보안 문제에 관여할 자리가 없다는 점도 기억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이상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법률을 공정하고 일관되게 적용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점 역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제니퍼 그랜홈(Jennifer M. Granho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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