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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드 Sep 11. 2023

선거일에 일하는 공무원 시점

코로나가 극심할 때 엄청난 투표율을 맞닥뜨린 공무원의 경험담

출근길 버스에서 들려오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종종 선거가 언급되는 게 들린다. 내년에 총선이 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총선에서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투표하는 사람이 아닌 투표소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현장에 있었더란다. 또 최근에는 어쩌다 보니 '선거홍보물 그거 공장에서 나오는 거 아니었어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물론 홍보물을 인쇄하는 건 기계가 하겠지만 그 이후에는 어마어마한 가내수공업이 이어진다(...) 그래서 선거를 위해 일하는, 선거일이 휴일이 아닌 공무원의 입장을 써보며 옛날이야기를 마무리하려 한다.


먼저 선거일이 조금씩 다가오면 행정복지센터에서는 선거인 명부를 몇 번씩 확인한다. 주소지를 올바르게 입력하면 자동으로 잘 들어가게 되어 있는 통반이 잘못된 경우도 많고 주소지에 오타가 있는 경우도 있다. 아무튼 들춰보면 뭔가 고쳐야 할 게 많다. 행정복지센터가 관할하는 곳에 사는 사람들의 주소지를 모조리 뽑아야 하기 때문에 며칠 만에 A4 수천 장을 소모하게 되고 종이를 빠르게 넘겨보기 위해 지우개와 골무 등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게 이 시기다. 선거인 명부를 묶어보는 연습도 한다. 당연하지만 민원인들이 들어오지 않는 밤 시간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선거는 특히 행정복지센터 공무원에겐 추가 근무를 의미한다.


그리고 선거 공보지 포장(...)을 위해 날을 잡고 주말 하루를 몽땅 소모한다. 정말 상상 이상으로 양이 많기 때문에 그날엔 통장님들이나 행정복지센터에 근무하지 않는 공무원들도 투입된다. 내가 일하던 행정복지센터의 경우 1층을 싹 비운 다음 책상과 의자로 컨베이어 벨트(...)를 만들었다. 우리만 일하는 게 아니라 간식을 비치해 둘 공간도 따로 구성했다. 그런 다음에는 정말 밥 먹는 시간 빼고 계속 공보지를 집어넣고 주소가 적힌 표지를 마지막으로 또 잘 집어넣고 입구를 봉한다. 어느 정도 봉투 뭉치가 쌓이면 묶어주기까지 해야 한다. 그 모든 물건들을 가져가는 우체부들은 그야말로 가져가기만 하기 때문이다. 절대 공장에서 자동으로 뚝딱 나오는 시스템이 아니다! 모두 사람이 한다!! 실수로 누군가의 공보지가 두 장 들어가는 일은 절대 발생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슬렁슬렁할 수도 없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지면 불손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따져 묻는 사람이 필경 나오는 탓이다. 


그때 주민총괄을 담당하시던 분이 '월요일에 몸살 났다고 출근 못 하면 안 된다, 우리는 무조건 다 나와야 한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 내 기억으로는 오전 9시에 시작해서 밤 8시 넘어서 끝났던 것 같다. 다행히 이 날은 특수한 경우로 취급되어 4시간이 넘어가면 휴일 근무 수당을 주지 않는 규칙을 적용받지 않았다.






행정복지센터는 사전투표소로도 활용되는데, 나 같은 경우 평일엔 민원 업무를 봐야 했고 이곳의 민원대가 격무가 심한 걸 아는 행정팀장님께서 토요일 사전투표 근무는 제외해 주었던 것 같다. 일한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투표 당일에 겪었던 일만 얘기해 보겠다. 참고로 2020년 총선 투표율은 66.2%로 28년 만에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한다. 즉 무진장 바쁜 케이스였다는 거다.


일단 투표소가 아침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므로 투표소에서 일해야 하는 공무원들은 새벽 5시까지 현장에 모여야 했다. 그 시간에 대중교통이 있을 리 만무하기에 나는 새벽 4시 20분 즈음에 일어나 부모님 차를 얻어 탔다. 뱃속에 뭔가를 넣기에도 너무 일러서 최대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려 했다. 


그 당시엔 코로나의 기세가 무시무시했으며 백신은 나올 기미조차 없었으나 격리기간이 풀리지 않은 해외입국자들의 투표권을 보장해 주기로 했기에, 오후 6시가 지나고 야외에서 그들을 맡을 사람이 필요했다. 일종의 위험수당이자 추가 수당은 10만 원(이후 이 금액은 6만 원으로 밝혀진다;).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들이 많기로 유명한 동네에서도 투표하겠다는 사람이 가장 많이 나온 게 내가 근무한 투표소였으니 당연히 선뜻 나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날 투표소를 전체적으로 관리하실 분은 거기 모인 공무원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나에게 그 일을 맡겼다.


아침 6시가 되기 전이었는데 투표소에 줄을 선 사람들이 좀 있었다. 이런저런 안내사항을 듣고 바로 현장에 투입되었다. 나는 그날 복도에서 사람들을 안내하는 일, 명부 확인하는 일, 신분증 확인하는 일 등 투표용지와 관련되지 않은 모든 종류의 일을 다 했다. 해가 다 뜨기 전 난방이 되지 않는 복도에 있기가 참 추웠던 기억이 난다. 투표소 현장엔 자원봉사자와 통장들이 있었지만 일반인들에게 힘들거나 중요한 일을 맡기지는 않았다.


투표소에 아침, 점심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건 거기서 일하는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라는 거다. 사람이 조금 줄어든 것 같으면 눈치껏 순번을 정해 뭔가를 먹고 돌아와야 했다. 일하는 사람들이 먹을 수 있게끔 믹스커피나 간식 등이 투표함 근처에서 일하는 분들 주변에 있었던 기억이 나지만 나는 거기까지 갈 기회도 없었다. 아침으로 뭘 먹긴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고, 점심에는 가까운 곳에 있는 아티제에서 샌드위치를 먹었었다. 계속 비닐장갑을 끼고 있어야 했던 손과 '안녕하세요->신분증 보여주시겠어요->마스크 살짝만 내려주시겠어요'로 이어지는 레퍼토리를 수천 번 읊었던 것도 기억난다. 


해외격리자 투표는 야외에 투표 부스 하나를 놓고 진행되었다. 방호복과 신발 덮개, 페이스 실드와 비닐장갑을 착용하고 사람이 한 명씩 들어가서 나올 때마다 소독용 티슈로 부스를 닦고 소독약을 뿌렸다. 그들이 투표를 마칠 때마다 어디로 새지 마시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알렸다. 해가 지고 기온이 떨어졌는데도 방호복을 입으니 곳곳에서 땀이 났다. 움직임 자체가 둔해지고 페이스 실드는 종종 뿌예지는 데다 무엇보다 숨이 막혔다. 그때 의료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진짜로 투표가 다 끝나고 나면 투표함은 개표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옮겨져야 한다. 여기는 어떤 체육관에서 한다고 하던데 인구에 따라 한 동에 투표소 7개가 세워질 수도 있는 만큼 투표함을 전달하는 것 자체도 전쟁이라고 한다. 빠른 퇴근을 위해서는 신속하게 투표함을 두고 와야 하고, 모두 그걸 알기에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뜀박질이 시작된다나. 나는 어쨌든 격리자들과 가까이 접촉한 사람이라 그 현장에 끼지는 못했다. 듣자 하니 다른 분들은 밤 8시, 9시 넘어서 겨우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평균적으로 정리하자면 선거 당일 투표소에서 일하는 공무원의 근무 시간은 새벽 5시부터 밤 7시. 나 같은 경우는 당일 오전에 현금으로 수당을 받았는데 12만 5천 원 정도였던 거로 기억한다. 15만 원은 절대 넘지 않았고 10만 원보다는 더 많았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2020년 최저임금이 시간당 8590원이라는데 8590원*14시간=120,260원이니 딱 최저임금 수준으로만 받았던 듯하다. 


혹시나 선거 이야기인데 선관위 공무원 얘기는 없다는 걸 의아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나는 선거 관련 업무를 하면서 선관위 소속 공무원을 본 적이 없다. 투표소에서 전일 근무하는 사람 중에도 선관위 소속은 없었다. 개표는 구청 및 시청 공무원들이 한다던데, 선관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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