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안테룸 서울 호캉스 후기
호텔에 호캉스 하러 온 건데 포스팅을 한 개 건너뛰고 나서야 호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무튼 나의 목적지 호텔 안테룸 서울! 가로수길 메인 거리와 정말 가까우며 신사역에서 충분히 걸어올 수 있는 대로변에 위치해 있으며, 루프탑 카페와 지하에 있는 갤러리가 있는 3성급 호텔이다.
체크인은 지하 1층에서 한다. 체크인 카운터는 두 개로 이루어져 있었고, 나는 약 2시 40분경에 호텔에 갔는데 체크인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미 와 있었다. 해당 호텔이 일본 체인이라서 그런지 기다리고 있는 외국인들은 일본인이었으며 로비에도 일본풍이 느껴지는 예술 작품이 걸려 있었다. 층별 안내도는 플라스틱 전광판이 아니라 천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점도 독보적이었다. 참고로 체크인 카운터 옆쪽에 화장품 브랜드 '클레어스'의 샘플이 여러 종류로 배치되어 있었고, 명절에 방문한 나는 해당 사항이 없었으나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클레어스 스토어에 들고 가면 제품을 받을 수 있는 명함 카드도 있었다. 나는 원래 클레어스에서 나오는 스킨과 로션을 사용하는 사람이라 반가웠다.
내가 선택한 룸은 Loft Double. 더블 침대 1개가 놓인 방이었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얼리버드 할인을 받아 11만 원 대에 예약했다. 배정받은 층은 12층. 엘리베이터가 두 대라서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고 목적지에 갈 수 있었다.
내가 호텔 안테룸 서울을 고르게 된 까닭에는 이곳이 나름 친환경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위의 사진처럼 층별 안내도부터 각 층의 안내판을 천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칫솔과 면도 도구 등은 유료로 구입하게 하여 개인의 낭비를 억제한다. 무엇보다 '동구밭'과 협업한 고체 어메너티를 준다. 이와는 별개로 샤워 가운이 아닌 잠옷을 제공한다는 점도 너무너무 좋았다. 투숙객 입장에선 짐을 덜 수 있기 때문!
일단 전체적인 방의 모습은 이렇다. 로프트 더블 타입은 저렇게 계단을 살짝 거쳐서 침대에 올라가도록 구성되어 있어 나름 다락방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캐리어를 가져왔다면 침대 밑 공간에 가방을 둬도 좋을 것이다. 커튼으로 가려진 부분의 창틀은 넓어서 걸터앉아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기에 적합했다. 호텔 안테룸 서울은 어메너티로 커피가 아니라 저녁에 마시면 좋을 차(캐모마일)와 아침에 마시면 좋을 차(호박차)를 제공하기에 딱 머그컵에 티백을 우려 앉아 있기 좋은 곳이었다.
얼핏 보이지만 세면대가 샤워 부스, 양변기가 있는 곳과 분리되어 있어 2명이 숙박한다면 아침 시간에 공간을 나눠 쓸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공간 자체는 넓지 않고 욕조는 없다. 하지만 혼자 머무는 나에게 그런 게 무슨 상관인가. 그리고 내가 자랑하고 싶은 건 따로 있다. 일단 앞에서 잠깐 언급한 고체 어메너티! 페이스 앤 바디 솝, 샴푸, 컨디셔너 3개를 제공하는데 모두 고체 타입이다. 용기 또한 친환경 재질이며 사용한 뒤 건조한 곳에 말려두면 그대로 집으로 가져갈 수 있다.
그리고 위의 사진에서 보이는 잠옷. 난 잠옷을 제공하는 호텔은 처음 봤다. 하지만 모든 호텔이 샤워 가운 대신 잠옷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편하고 좋잖아!!
편하고 보들보들한 감촉, 심지어 상의를 여미는 부분은 똑딱이로 되어 있어서 입고 벗기에 이보다 더 편할 수 없다. 어디서 저런 잠옷 팔면 사고 싶을 정도다. 샤워 가운을 입고 잘 수도 있지만 아무리 세게 묶여도 잘 여며지지 않고 벌어지는 데다 무게도 잠옷보다는 무겁다. 실제로 나는 외출하지 않을 때 객실 안에서는 계속 호텔에서 제공한 잠옷을 입고 있었고 대만족이었다. 굿즈로 파셔도 될 것 같은데...
그러나 호텔 안테룸 서울의 자랑은 이런 게 아니라 루프탑 카페다. 이리저리 법석을 떨다가 그새 배고파진 나는 아침 대용으로 사 왔던 도넛을 호로록 먹어버리고(올드페리도넛을 가면 꼭 크렘 브륄레맛을 사시길) 19층에 위치한 루프탑 카페, '텔러스 9.5'로 향했다.
북카페 겸 루프탑 카페인 '텔러스 9.5' 되시겠다. 이곳은 특히 남산 타워가 훤히 보이는 서울 야경 맛집으로 유명한 곳으로 파는 메뉴 자체는 아메리카노가 8000원일 정도로 비싸다. 그러나 나의 관심은 책에 있었다. 전문 서점에서 따로 큐레이팅을 받는 모양이었는데 놓인 책들 하나하나 모두 흥미로웠다. 그러다가 뜻밖에도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 소설을 발견했다. 관심이 있었던 책을 대형 서점도 아니고 야경 맛집을 겸하고 있는 곳에서 보게 되다니 이건 운명이로구나, 싶어서 결국 구입했다. 진열된 책들은 모두 판매하는 거라 서가에서만 읽을 수 있고 나처럼 구매를 원한다면 그냥 카운터로 가져가면 된다.
지금이 밤은 아니지만 구매한 책은 카페 내부에서도 읽을 수 있으므로 안쪽을 더 기웃거려 봤는데, 안타깝게도 이곳의 자랑이라는 서울 시티 뷰는 다음과 같았다.
왜 하필 내가 간 날에 미세먼지가 저리도 자욱하게 퍼져 있단 말인가! 남산 타워는 정말 간신히 보일 정도다. 그날 미세먼지 앱을 확인하니 대기질은 '상당히 나쁨' 수준이었고, 그 정도면 맑은 야경은 볼 수 없을 듯해 나는 굳이 밤에 루프탑으로 다시 올라가지도 않았다. 하늘이 깨끗했다면 확실히 인상적일 모습이긴 하다. 뾰족뾰족한 아파트들이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띄고 멀리 강과 산도 보이니 말이다.
유명하다는 뷰는 아쉬웠으나 나만의 맞춤형 발견을 하여 싱겁지만은 않았던 호텔 내 카페 탐방이었다. 이제 나에게 남은 과제는 두 개였다. 저녁을 해결할 것, 그리고 도넛을 먹어버린 걸 만회할 것. 그리고 나는 호텔 주변을 헤매다가 크로플을 파는 가게를 찾아낸 상태였다.
지하에 있어서 눈에 띄는 간판조차 없는 그곳의 이름은 '새들러하우스'. 역시나 나는 몰랐던 곳이었으나 크로플 맛집으로 상당히 유명한 곳이었다. 내가 간 시각에는 이미 많은 종류가 품절되어 있었는데,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왔기에 플레인 크로플 하나만 샀다. 크로플은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을 테지만 상온에 두면 상할 것 같아서 배만 채우면 되지 않느냐는 가벼운 마음으로 냉장고에 보관했다. 그리고 나는 다음 날 차가운 크로플도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고 오픈런을 하게 되는데...
그러나 그건 내일의 이야기고, 목요일의 나는 크로플을 먹지 않은 채 호텔 안테룸 서울 1층에 위치한 베트남 식당 '아이뽀유'를 방문했다. '쌀국수는 나의 소울 푸드! 아시안 음식 너무 맛있어요!!'를 주창하는 내가 도저히 놓칠 수 없는 맛집이었다. 홀에서 근무하시는 분은 베트남 출신이신지 한국말이 유창하진 않았으나 주문 자체는 자리에 설치되어 있는 키오스크로 하면 되었고, 소스에 고수를 빼 달라는 말 정도는 알아들으셨다. 가격은 기본 쌀국수가 2만 원이라 비싼 편인데 베트남식 커피와 디저트, 고수 아이스크림 등 특이한 메뉴들을 취급하는 곳이었다.
내가 고른 메뉴는 분짜. 소스를 아주 넉넉하게 주셔서 이것저것 원 없이 담가 먹었다! 전체적으로 달달하고 상큼한 맛에 짭짤한 피클이 거들어주는 훌륭한 맛이었다. 같이 나온 야채도 신선했고 고기 종류도 하나가 아니었다. 기름기는 좀 있었으나 소스에 담가 먹으면서 샐러드를 곁들이니 부담스럽지 않았다. 면도 뭉쳐 있는 것 같더니 소스에 넣고 살살 흔들어주자 금방 풀렸다. 후회 없는 선택이었도다.
이렇게 적고 나니 먹기만 한 것 같은데, 어어, 사실 그렇긴 한데(...) 날이 저물면서 강하게 느꼈던 것은 사실 내가 잘 찾지 않는 낯선 공간이 선사하는 현존의 감각이었다. 어딜 가도 내가 본 적 없는 곳이고, 지도를 보지 않고 그냥 이 구석 저 구석 들어가 보는데 내가 조금 전에 봤던 상점이 나오는 재미가 있고, 처음 맛보는 것들이고, 그러다 보니 당장 내 앞에 놓인 것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거리를 구경하고 사람을 구경하면서, 평소라면 아무런 관심이 없었을 골목이나 식물의 사진을 찍고. 우리나라 도시는 거기서 거기인 측면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낯선 요소는 개인을 현재로 이끈다. 나는 무엇보다 그게 좋았다.
마냥 시시하게 생각했던 국내 여행도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양식을 취하면 나에게 좋은 환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알찬 1박 2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