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사람은 돈을 들여야 제대로 운동을 하는구나
난생처음으로 돈을 들여 운동을 하고 있다. 엄마가 최근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진단을 받고 조금 무서운 마음이 들었던 게 계기였다. 현재 상황에서는 완치되지 않는 병이며 심해질 경우 척추가 대나무처럼 굳고 온몸에 염증이 퍼지며 끔찍한 상태에 빠지는데, 정확히 이 질병이 왜 발생하는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유전적 요인이 크다는 말에 엄마가 나에게 제대로 된 운동을 시작할 걸 권했다. 그때까지 나는 요가 스트레칭과 산책 정도만 하고 살았고 운동과는 평생 친해지지 않을 줄 알았다. 학교 다닐 때 나는 체육 7등급이었다. 내가 가장 못하는 수학보다 점수가 낮았다. 몸 쓰는 거에 한 번도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껴본 적이 없던 나는 그야말로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병에 걸려도 조금 덜 아프기 위해 필라테스를 시작했다.
필라테스를 고른 데에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땀 흘리는 게 싫었고 손목과 팔이 남들보다 많이 망가진 상태라 재활에 뿌리를 둔 운동을 하는 게 좋을 듯했다. 그 당시 나는 필라테스가 그토록 땀과 눈물을 쏟게 하는 운동인 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마침 회사 근처에 재활 치료를 전문으로 내세운 필라테스 스튜디오에 체험 신청을 넣었다. 요새는 쉽게 자격증을 따서 전문성이 떨어지는 필라테스 강사들이 많아 오히려 몸을 해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재활 관련 자격증이 있는 선생님들만 채용한다고 하여 믿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주 2회 50분 수업을 20회 듣는 데 성공했고, 며칠 전에 30회를 더 결제했다. N달을 저축해야 얻을 수 있는 돈을 한 번에 쏟아부었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필라테스가 돈 주고 운동 따윈 해본 적이 없는 사무직 직장인의 어떤 점을 저격하였는지 간단하게 풀어보겠다.
나는 세 끼는 잘 먹어야 하는 사람이라 식이 요법을 하진 않았고 그래서 필라테스를 20번 다녔다고 몸무게가 변하지는 않았다. 인바디도 해보지 않아서 내 몸이 어떻게 달라졌다고 숫자를 섞어 말할 수는 없겠으나 강사님의 객관적인 시선과 사진이 보여준 것, 그리고 개인적으로 느꼈던 점을 아울러 말해보겠다.
1. 돌아온 발
전부터 내가 신는 신발이 닳는 모양새는 좀 특이했는데 필라테스를 다니기 전까지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마도 발목이 휘어서 그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여태 내 발목이 휘어 있는 줄도, 아치가 무너진 줄도 몰랐다. 예전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때 방바닥에 서서 공부하던 적이 좀 있어 슬쩍 족저근막염을 앓고 지나간 것만 기억하고 있었지만 이번에 필라테스 수업을 수강하면서 처음으로 내 발의 확실한 이상을 목격했고 교정을 받았다.
신기한 건 발목 교정 첫날에 찍은 비포/애프터 사진에 나도 눈치챌 수 있는 확연한 차이가 담겨 있었다는 점이다. 아니, 50분쯤 수업했다고 어떻게 바깥으로 꺾여 있던 발목이 이렇게까지 돌아올 수 있지? 물론 그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런지가 그토록 고통스러운 동작인 줄 모르고 살았던 나약한 나는 그날을 시작으로 필라테스 레슨을 받을 때마다 통곡하기 시작했다(...) 필라테스를 하면 분명히 땀도 나는데 그보다는 눈물이 더 나는구나! 엄청난 유레카다.
발목이 어느 정도 교정되고 난 지금은 아치를 세우는 훈련을 하고 있는데, 정말 단순한 동작도 제대로 되지 않아 쪽팔릴 정도였으나 2회 차만에 '어머! 전에는 안 됐는데 되네?!' 하는 심정을 몸소 목격하고 느꼈다. 신기함을 넘어서 이쯤이면 용한 운동이 아닌가 싶다.
2. 다듬어진 몸
나는 눈썰미가 없는 편이라 잘 모르겠지만 강사님 말에 따르면 다리 모양도 많이 예뻐지고 하체가 전보다 탄탄해졌다고 한다. 내가 체감하는 건 예전엔 정말 판판했던 엉덩이에 조금 모양이라는 것이 생겼다는 것, 그리고 허벅지를 밀었을 때 그냥 살이 밀리는 게 아니라 전에는 없었던 근육의 결이 얼핏 보인다는 점이다.
참고로 나는 주 2회 레슨을 받을 뿐 추가 운동은 하지 않는다(...) 아마 개인적으로 운동을 한다면 훨씬 더 큰 효과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3.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 작용
운동을 하면 심리적으로도 득이라는 건 모두가 알 것이다. 기분이 좋아지거나 적어도 나쁜 생각이 사라지고, 정신 차려 보면 운동이 주는 쾌감이 중독되었다든지 등등. 실제로도 도파민이나 엔도르핀을 비롯해 여러 긍정적인 호르몬이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호르몬은 눈에 보이지 않고 나는 아직 수업이 끝나면 기분이 엄청 좋고 뿌듯하기보다는 '오늘도 넘겼구나' 하는 안도감 비슷한 게 먼저 올라오긴 한다^^;
그런데 가끔 강사님이나 내 사정으로 인해 수업을 취소했을 때 어딘가 모르게 아쉽다. 난 내가 소속된 실에서 제일 먼저 출근하며 레슨이 없어도 늘 규칙적인 루틴을 지키고 있어 그런대로 모범적인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마 내 의식보다 신체가 운동하는 것의 장점을 잘 인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확실히 수업을 받고 있을 땐 잡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으며 몸을 어떻게든 강사님의 가이드대로 따라가게 하는 데에 온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에, 일종의 움직이는 명상 및 현존 효과를 불러오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현존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현대인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꼭 필요하므로 이것만 취하고 가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인간은 뭐든지 돈을 투입해야 유의미한 결과물을 얻는 것 같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레슨을 들으면서 힘들고 아파서 펑펑 울었다(...) 그러나 내가 눈물 흘릴 기회를 산 건 아님을 알고 있기에 다음 30회도 열심히 완주하려 한다! 그렇지만 몸무게는 좀 줄었으면 좋겠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