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입장에서 재택근무의 중요성 역설하기
유명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본인이 다니는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없앤다는 얘기를 전해왔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 회사를 나갈 사람들이 생기겠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사측은 재택근무가 근로자에게 매우 중요한 복지라는 걸 모르는 걸까, 아니면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근로자를 믿지 못하는 걸까? 새삼 재택근무와 관련된 상념들이 떠올랐다.
나는 사람들이 거의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는 지금이 되어서야 재택근무의 귀중함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가 한창일 시기에는 공무원으로서 대면업무를 하느라 하루도 재택근무를 한 적이 없었고, 그 후에 들어간 회사는 대표가 직원들이 쓰는 커피 캡슐 개수마저 참견할 정도로 직원들을 불신하는 곳이었다. 그다음 회사는 수습기간인 6개월 간엔 거의 모든 복지가 해당되지 않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이렇게 쓰니 내가 열악한 환경에서만 일한 것 같다(...)
그러다가 현재 회사에서 일주일에 한 번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이후 내 삶의 질이 그야말로 급상승했다. 나는 일찍 일어나는 편이라 재택근무 시작인(이 시간은 고정되어 있다) 오전 10시까지 꽤 여유롭다. 그럼 산책을 한다든가 도서관을 다녀온다든가 집 근처 카페에서 1시간쯤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방 청소를 하거나 운동하는 것도 가능하고 심지어 맥모닝을 먹고 올 수도 있다. 관공서나 은행, 병원에 가볍게 다녀오는 것도 된다. 근무 시간이 시작되고 나서는 중간중간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는 하기 어려운 스트레칭 동작으로 몸을 풀어주거나 내 방에 갖춰져 있는 책상의 스탠딩 기능을 이용할 수도 있다! 점심시간 역시 사람들이 없어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거나 식당에서 순번을 기다리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근처 가게에서 푸딩을 사 먹을 시간도 있다.
만약 내가 자취를 했다면 출퇴근 이동 시간 및 준비 시간 동안 온갖 집안일을 했을 것이다. 세탁기 돌려놓고 바닥 청소 하고, 잠깐 후다닥 나와서 빨래를 널어두기도 하고 점심시간을 활용해 세탁소에 다녀올 수도 있다. 자취생들에게 집안일이 얼마나 시간을 잡아먹는 일인지 고려하면 재택근무 시 이런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번거로운 일들을 해치울 수 있다. 그러면 운동을 한다든지 자기 계발 시간을 그만큼 확보할 수 있고, 근로자의 육체적 및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된다. 나처럼 이렇게 부지런하지 않아도 근무 시간 10분 전에만 일어나도 괜찮은 게 재택근무다. 피로를 제대로 털어내지 못해 골골대는 수많은 헬조선 직장인들의 퀭한 얼굴을 떠올리면 생각만 해도 효율성이 상승할 것 같다.
우리는 사실상 시간과 돈을 맞바꾸며 살고 있다. 그리고 사실 시간은 돈보다 더 소중하다. 시간은 다른 사람이나 은행에서 빌릴 수 있는 것도 아닌 데다, 2023년 10월 12일의 시간은 그 날짜가 지나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반면에 물가상승률의 영향을 받아 실질 가치가 달라지긴 하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월급은 어쨌든 통장에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특히 내 시간을 보장받고 헛되이 쓰지 않을 수 있을 때 감사함을 느낀다. 재택근무는 회사가 다시는 없을 모월 모일 내 시간의 가치를 알아준 듯한 느낌을 준다.
한편 나는 재택근무가 환경 친화적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근로자 개인이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비용을 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면 지나치게 에어컨을 세게 틀거나 히터를 강하게 틀게 되고, 설거지하기가 여의치 않다는 이유로 일회용품을 평소보다 많이 쓰게 되기도 한다.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재택근무를 하면 무조건 탄소 배출이 줄어들 것이다. 하다못해 사무실 건물은 가정집보다 전등도 훨씬 많이 켜야 한다. 이런 에너지 사용이 줄어들거나 없어질 수 있다면 기후 위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젠 지구가 따뜻해지는 게 아니라 끓어오르고 있다고 하지 않은가.
이런 측면들을 고려하다 보니 나는 재택근무 제도를 시행하는 이 회사에 긍정적인 인상을 갖게 되었다. 누구나 아는 대기업도 아닌 회사지만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점이 하나 있다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일부 기업들이 코로나의 위험성이 예전보다 떨어졌다는 이유로 재택근무를 축소하는 행태가 아쉽다. 근로자의 일상과 나아가 환경까지 생각하는 재택근무의 장점은 모든 근로자들에게 통용되지도 않는 케케묵은 생각, 그러니까 '회사에 나와야 사람이 일을 한다'라는 고정관념에 밀려나기에는 너무 크다. 하다못해 한국처럼 지역 불균형이 몹시 심한 나라는 재택근무를 통해 지역 발전을 이끌어낼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훗날 이직하게 되면 재택근무 가능 여부를 매우 중요하게 볼 것이다. 재택근무는 회사가 발휘할 수 있는, 어렵지 않으면서도 그 효과는 강력한 복지 정책이자 사회적 기여다. 그러니 회사들이여, 재택근무를 없애지 말아 달라! 이 글이 한 회사의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흘러들어 조금이라도 공감을 이끌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