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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드 Oct 31. 2023

3. 나는 회사에 엉덩이를 팔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무엇을 월급과 교환하고 있을까? 다시 말해 우리는 무엇을 팔고 월급을 받고 있는 걸까? 어느 날 SNS에서 이에 관한 아주 신랄한 표현을 봤다. 우리는 회사에 우리의 엉덩이를 팔았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보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반박하고 싶었다. 엉덩이라는 단어가 선정적인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에 꼭 근로자가 회사에 몸을 팔았다는 소리처럼 들리잖나. 물론 저 비유는 근로자가 출근해서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뜻, 혹은 그렇게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을 팔았다는 뜻일 터다. 그러나 이런 회사와 근로자 사이의 거래를 회사부터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의 회사에선 지문을 찍든 출입증 역할을 하는 사원증을 인식하는 등의 방식으로 근로자들의 출근 시간을 체크하고, 또 대부분 출근 시간에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1~2분이라도 지각했다간 벌점을 주거나 월급을 삭감하는 등의 불이익을 준다. 가령 사무실에 오전 9시까지 도착하는 게 출근의 원칙이라면 오후 6시까지 근로자가 집에 도착하는 게 퇴근의 원칙이자 정의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이것까지 논하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생략하겠다.


하지만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고 상점이 주어지거나 일찍 온 만큼 추가 근로 시간으로 인정되어 수당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조직의 특성상 법을 반드시 지킨다는 공무원도 오전 8시 10분에 출근했다 한들 50분이나 되는 시간을 근로 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신기한 건 오전 8시 이전에 오면 그만큼 일찍 온 시간이 온전히 근로 시간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사실상 인간이 편의를 위해 임의로 시간을 분절했을 뿐이며 똑같이 근로자의 아침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시스템에서 7시 55분과 8시 01분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저녁도 마찬가지다. 오후 6시부터 7시까지는 어지간해선 근로 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저녁 먹는 시간, 휴게 시간이라는 이유에서다. 공무원의 경우 저녁 식대가 제공되기 때문에 이 시간에 보통 다 같이 저녁을 먹지만 저녁 식사비를 지원하지 않는 사기업에서 내가 일을 좀 더 빨리 끝내기 위해, 혹은 집중의 흐름을 깨지 않기 위해 저 시간에 실제로 업무를 수행해도 근로 시간으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리하여 저녁을 굶고 빠르게 일을 마쳐서 오후 6시 40분에 퇴근하는 근로자는 그냥 40분간 무보수 노동을 한 게 된다.


근로자가 예상하지 못한 이유, 가령 교통사고나 차량 고장, 기타 사고로 지각하면 깐깐하게 증거 자료를 요구하고 신호 운이 모자라 5분쯤 지각하면 득달같이 페널티를 붙이려고 하면서 근로 시간 1시간 공제는 현실과 상관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적용한다. 이런 걸 보면 내가 회사에 나의 엉덩이든 시간이든 그걸 판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가 사지 않았다고(그래서 돈을 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시간이 존재하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회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거래 혹은 교환을 맺은 당사자인 근로자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티를 낸다. 출입 확인뿐 아니라 몇몇 회사에서는 컴퓨터의 움직임까지 관찰한다. 내가 아는 사람이 다니는 회사에서는 15분 간 마우스 커서나 키보드에 움직임이 없으면 팝업을 띄워서 그 사유를 묻는다고 한다. 졸음을 쫓으려고 커피 한 잔을 사러 간다거나, 여성의 경우 갑작스러운 생리적 현상을 수습하고자 한다면 충분히 걸릴 수 있는 결백한 시간인데도 그동안 일하지 않고 뭐 했느냐고 추궁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렇다 보니 근로자는 회사에 엉덩이를 판 것도 아니고, 시간을 판 것 같지도 않은 이상한 처지에 놓인다. 일단 제시간에 와서 앉아 있으라고 하는 거 보니 엉덩이를 팔았나 싶지만 내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시간의 일부는 돈으로 쳐주지 않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시간을 팔았다는 계약도 일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면 근로자 개인의 능력이 교환 대상이 된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일을 다 마쳤어도 근로자가 집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


내가 돈을 받는 대신에 뭘 팔았는지도 아리송한 이 관계. 우리는 우리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세월을 이런 애매모호한 상황에 억눌린 채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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