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여행기를 쓰기에 앞서 딴 얘기를 해보려 한다.
다들 아시겠지만 미국의 가정집은 대부분 목조 주택이다. 호텔이나 아파트 에어비앤비를 이용하지 않는 이상 한인민박, 그러니까 누군가의 가정집에 잠시 머무는 경우가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코리아타운은 아니지만 베버리힐즈의 한인 민박에 묵었는데 동네는 고급질지언정 주택의 소재가 드라마틱하게 다른 건 아니라 목조 주택의 단점, 이를테면 방음이 잘 되지 않고 바닥을 걸을 때 소리가 나며 개미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특히 방음이 되지 않는 목조 주택과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우렁찬 미국식 사이렌 소리가 합쳐지면 새벽에도 그 소리에 깜짝 놀라서 눈이 뜨이는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그러니 이어 플러그를 가져가시길 추천드린다. 물론 그래도 깨긴 깬다(...)
LA 여행(특징: 여성, 혼자, 뚜벅이) 3단계: 1일 차, 베버리힐즈를 중심으로
첫날의 일정은 다소 여유롭게 잡았다. 입국 심사 등등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기 때문. 그래도 도로가 밀리지는 않아 적당한 시간에 숙소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향긋한 냄새가 났는데, 건너편에 열매를 맺은 거대한 나무가 있었다.
앞 뜰에 장미와 같은 꽃, 뒷마당에는 레몬 나무 등 대부분 뭔가를 심어 놓은 풍경이었다. 아침에는 주기적으로 돌아가며 잔디에 물을 주는 스프링클러 소리도 들었다. 내겐 대단히 미국적인 정경으로 다가왔다.
방 상태를 확인하고 캐리어를 펼쳐놓은 뒤 점심부터 먹으러 갔다. 내가 미리 생각해 놓은 곳은 Urth Caffe였다. 베버리힐즈 말고 다른 곳에도 지점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꽤 유명한 맛집인 듯했다. 치안은 둘째치고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으므로 곧장 우버를 불렀다. 기사님들이 종종 자기를 부른 승객이 맞는지 확인하는데 이때 내가 우버 앱에 등록한 이름을 물어보므로 되도록 영어 이름을 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Urth Caffe는 약간의 웨이팅을 한 후 들어갔다. 메뉴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보이지 않아서(?!) 콜드브루와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빈자리에 적절히 자리 잡은 뒤 직원에게 받은 숫자 푯말을 테이블에 세워두고 있으면 음식을 가져다주는 방식이었다. 샌드위치는 미국 음식치고는 짜지 않은 반면 미국 답게 양이 많았다. 샐러드는 전체적으로 신선했다. 콜드브루는 굉장히 진해서 나중엔 어지러움까지 느낄 정도였다. 강한 산미가 내 취향이긴 했는데 카페인 쇼크를 우려하여 상당 부분을 덜어내고 물을 열심히 섞었다 ^ㅠ^;
이후 우버를 이용하지 않고 베버리 힐즈 사인이 있는 곳까지 쭉 걸었다. 월셔 대로 등은 걸어도 안전하다는 정보가 있었다. 보행자 신호가 짧은 듯해도 넉넉했으며 길이 걷기 쉽게 닦여 있었다. 가는 길에 베버리 캐년 가든Beverly Cañon Gardens도 있어 잠깐 둘러보았는데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유럽식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잔디밭과 분수대가 분위기를 더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더욱 여유로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거리를 바쁘게 구경하며 걷다 보니 키가 너무 커서 옆으로 살짝 늘어지는 야자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영화를 즐겨 보는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한 번은 봤을 법한 풍경이었다. 그런 낯익은 모습을 조금 더 지나니 역시 또 어느 영상 매체에서 한 번은 본 것 같은 베버리 힐즈 사인Beverly Hills Sign이 나타났다. 도로와 나란히 배치된 잔디밭 공원, 몇 가지 조각물들, 영물처럼 생긴 거대한 나무 등이 인상적이었다. 약간 인증샷을 남기러 오는 장소 같았는데, 혼자라서 사진을 찍기는 영 불편하지만 풍경 사진은 찍을 수 있지.
명품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베버리힐즈의 로데오 거리Rodeo Drive도 구경해 보기로 했다. 누구나 아는 세계적인 브랜드들의 스토어가 줄지어 있는 곳으로, 그야말로 '돈이 있어야 재밌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도 유명 브랜드들이 스토어를 꾸민 모습을 보는 것도 은근히 눈요기가 되었다. 참고로 그 주변에 포 시즌스 호텔이 있는데 진짜 으리으리하고 멋있는 모습이었다.
가난한 여행자(...)는 명품 거리에서 쇼핑을 할 수 없으니 다른 곳에서 돈을 쓰기로 한다. 바로 멜로즈 애비뉴에 있는 글로시에Glossier라는 곳이다. 화장품 가게인데 매장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관광객으로서는 시카고라든가 라스 베가스, 런던, 뉴욕, LA 정도의 도시에서 글로시에를 만날 수 있겠다. 립밤과 핸드크림, 블러셔 등이 유명한데 패키징과 상점의 컨셉 모두 독특하고 예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러 가기도 하는 곳인 듯했다. 분홍색을 메인 컬러로 내세우고 있어 같은 거리의 폴 스미스 핑크 월The Paul Smith Pink Wall과 핑크 핫도그Pink's hot dog까지 포함하면 아주 핑크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루트의 구성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여기에 선물로 뿌릴 립밤 몇 개와 조카에게 줄 키링(실제로 열리는 플립폰 모양의 키링인데 LA 한정 상품이라 인기가 많다고 한다)을 사러 갔다. 내부는 아주 넓고 쾌적하며 자유롭게 둘러보고 화장품 샘플을 써 볼 수 있는 분위기였다. 샘플용 도구들은 대단히 깔끔하게 정리 및 관리되어 있어 믿음이 갔으며, 퀄리티 있는 사진이 나오는 포토존도 존재했다.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다(중요).
제품을 둘러보다가 구매 욕구가 들면 직원을 찾으면 된다. 매장 내에 계산 코너는 없으며 직원이 내 주문 사항을 받고 나면 결제 후 제품을 챙겨준다. 직원이 Order for 누구누구~라고 내가 주문 시 알려준 이름을 불러주면 받아가면 된다. 핑크색 쇼핑백에 내 이름이 쓰여 있었다 ^^;
그러나 내가 LA에 온 목적은 베버리힐즈도, 쇼핑도 아니다. 바로 할리우드의 메이저 영화 스튜디오사들이 제공하는 투어 프로그램이다. 내일부터 그 여정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