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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yiun Oct 25. 2024

핑크 머리 로봇 조이

라플라스의 악마 # 2



  ㈜옥토끼는 달과 우주정거장을 오가는 물류의 약 삼십 퍼센트 정도를 책임지는 운송 회사다. 보유한 화물선이 많다 보니 자체적으로 정비팀을 운용한다. 석 달 전까지 우리 정비-18팀은 로건과 레오, 나, 이렇게 세 명이 전부였다. 화물선 조종사 출신 로건은 엔진과 연료 계통을 책임지고, 기체 구조와 외관 수리는 레오, 수학 전공인 나는 메인컴퓨터와 조종계통을 맡았다.


  다른 팀과 비교해 사람이 두세 명 정도 부족했다. 그래서 늘 잔업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팀 분위기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다지 친밀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그게 편했다. 팀원이 보충될 거란 소식을 듣고 우린 그날 들떠있었다. 작업 시간보다 조금 일찍 나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제안은 내가 한 거였다. 왼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전선 다발을 옮기던 레오가 정비창 바닥에 가래침을 퉤 뱉었다.


  “씨팔, 진짜 오긴 오는 거야?”

  “왜, 저만큼 왔다가 널 보고 도망갈까 걱정돼?”


  용접기를 한쪽 구석으로 내려놓은 뒤 로건이 웃으며 말을 받았다. 말수가 적은 로건이 레오의 투정을 받아준 건 기분이 좋다는 뜻이다. 나도 삼 년 전 이 팀에 배속되었을 때, 레오의 첫인상을 보고 절망했다. 괴수의 이빨처럼 뾰족하고 들쭉날쭉한 치열, 불끈 솟아오른 산맥처럼 얼굴 여기저기에 분포된 상처, 칼자국을 낸 것처럼 쭉 찢어진 눈매, 어깨 아래까지 치렁대는 붉은색 곱슬머리, 왼쪽 무릎 아래가 비틀어져 절뚝이는 걸음걸이. 어느 하나 '정상'의 범주 안에 들어오는 게 없으니까.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레오는 욕을 섞지 않고는 말을 할 줄 몰랐다.


  레오가 콧구멍에 새끼손가락을 넣고 이리저리 돌리고 있을 때 '쉭' 소리를 내며 정비창 문이 열렸다. 우리 시선은 일제히 입구 쪽을 향했다. 문으로 들어온 건 세 명이었다. 왼쪽엔 우리가 익히 아는 정비 부문장, 오른쪽엔 처음 보는 양복장이였다. 그렇다면 가운데? 분홍색 찰랑거리는 커트 머리에 곱상한 얼굴,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여자였다. 어딜 봐도 제 몫을 할 일꾼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 입에서 일제히 탄식이 흘러나왔다.


  “뭐야 로건? 이 상황이?”


  레오가 로건을 돌아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로건을 보며 말했지만 로건에게 말한 건 아니었다. 평소 목이 뻣뻣한 정비 부문장이 당황해서 얼른 양복장이의 표정을 살폈다. 정비 부문장이 그럴 정도면 양복장이는 꽤나 높은 신분일 거라고 나는 직감했다. 양복장이는 의외로 발랄하게 웃었다. 나는 붉으락푸르락하는 로건과 레오, 양손 바닥을 비비며 어쩔 줄 몰라하는 부문장, 의외로 의연한 양복쟁이의 표정을 번갈아 가며 살폈다. 상황이 묘했다.


  “같이 일할 팀원이다. 인사해 조이.”


  정비 부문장의 신호에 분홍 머리가 오른손을 들어 까닥했다. 멀끔한 손가락이 얇고도 길었다. 기름때 묻어나는 작업용 공구 같은 건 한 번도 만져봤을 것 같지 않았다. 레오가 어금니를 부딪쳐 딱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흥분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옆에 선 로건의 옆구리를 연신 쿡쿡 찔렀다. 빨리 항의하라는 재촉이었다.


  “부문장님, 일전에 말씀하시기론 힘 좀 쓰는 사람 보내준다고…”


  로건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느닷없이 양복쟁이가 천진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조이는 힘이 셉니다. 한쪽 팔로 50kg 정도는 넉넉하게 들 수 있게 설계됐어요.”


  그 말을 듣고도 우리는, 그게 무슨 뜻인지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부문장이 실실 웃으며 부연 설명을 했다.


“조이는 로봇이야.”


  로봇이라고? 그의 말은 우리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우리가 두 다리로 서서 걷는 인간형 로봇을 처음 본 건 아니었다. 달에서도 식당 서빙이나 청소 같은 허드렛일은 로봇이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소득 수준이 달보다 훨씬 높은 스테이션, 우주정거장에는 인간형 로봇이 더 많겠지만 말이다. 달에서 볼 수 있는 인간형 로봇은 지시를 겨우 알아듣는 정도의 지능에, 금속 골격과 전선 다발이 튀어나와 있는, 한 마디로 ‘딱 봐도 로봇인 로봇’이었다. 그런데 조이는 완전히 달랐다. 일단 외형부터 사람과 구별이 어려웠다. 조이라는 이름은 '생명'이란 뜻의 고대 문자에서 따왔다고 했다. 로봇에 '생명'이라는 이름이라니.


  “여러분 놀라셨죠? 아마 놀라셨을 겁니다. 반응을 보니 우리가 정말 잘 만들 긴 한 것 같네요. 그럴 일이 있기야 하겠습니까만, 굳이 로봇인 걸 확인하려면 오른쪽 귓바퀴를 보시면 됩니다. 거기 12자리의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거든요.”


  우리 시선이 양복장이의 입에서 조이의 얼굴로 향했다. 조이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찰랑거리는 단발에 가려 조이의 귓바퀴는 보이지도 않았다.


  “부문장님, 우리가…”


  얼굴이 붉어진 로건의 말을 부문장이 잘랐다.


  “알아. 고생하고 있는 거. 딱 석 달이야. 그 뒤에는 내가 진짜 사람 보충해 줄게. 18팀 먼저 넣어줄 거야. 길지 않잖아, 석 달.”


  양복장이가 또 나섰다.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예요. 이미 테스트는 다 끝났고, 이건 뭐랄까, 안 해도 되는 건데… 하도 설계자가 꼭 필요한 절차라고 해서. 형식적인 겁니다. 이 최종 테스트만 끝나면 생산 라인 바로 가동됩니다. 예쁘고 영리하고 힘도 세고. 석 달 뒤에 다시 봅시다. 아마 그때는 제발 같이 더 일하게 해달라고 조를겁니다.”


  레오가 이빨을 딱딱 맞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로건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항의를 해봐야 먹히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조이는 우리와 같은 푸른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오른쪽 가슴에는 흰 토끼 두 마리가 그려진 정비팀 패치까지 붙이고 있었다. 상황의 불편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이가 웃었다. 입을 가리고 웃었다. 우리는 아주 넋이 나갈 지경이 되었다.


  부문장과 양복장이가 돌아간 뒤 로건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정비창 곳곳에는 감시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게 분명했다. 조이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에 대한 인간들의 반응은 어떤지 지켜보는 것이 이번 시험의 목적일 테니까. 아주 사소한 행동까지도 빠짐없이 기록될 것이 분명했다.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카메라들이 어둠 속에 숨어 눈을 번쩍이는 승냥이들처럼 느껴졌다. 한참 동안 뜸을 들이다 로건이 입을 열었다.


  “뭘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걸리적거리지 말고 일단 우리 하는 거 구경이나 해.”


  나는 로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특별한 의미는 아니었다. 팀장이니까, 더 고민이 많을 것 같았다. 그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로건이 나를 살짝 돌아봤다. 나는 그가 웃어주길 기대했다. 나는 그의 묵직한 미소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때, 레오가 돌발행동을 했다. 씩씩거리며 콧김을 뿜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돌연 조이에게 달려든 것이다. 당장 목을 조일 것처럼 두 손을 올린 자세였다. 나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나는 평화주의자니까. 그런데, 조이의 반응이 놀라웠다. 조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양손을 허리에 올린 채, 땅에 단단히 박힌 말뚝처럼 똑바로 버티고 서 있었다. 그리고는 경쾌한 표정으로 레오에게 말했다.


  “내 목을 조이려고?”


  당황한 건 레오 쪽이었다. 조이한테 더 가까이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치켜든 손을 그냥 내릴 수도 없었다. 로건이 도왔다.


  “레오, 계속 그렇게 서 있기만 할 거야? 잔업 하기 싫으면 움직여야지.”


  레오의 붉은 얼굴이 더 붉어졌다. 귀까지 새빨개질 정도였다. 레오는 슬그머니 팔을 내리고 돌아섰다.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가래침을 뱉었다.


  “에이 썅, 얼마나 번다고 이따위 일. 내가 빨리 관두던가 해야지.”


  그 용모로 갈 곳이 있기나 할까. 레오는 여전히 인상을 구기고 있었지만, 내 눈에 그의 모습은 맥없이 꼬리를 내린 들개였다. 레오는 주춤주춤 물러서더니 바퀴가 달린 작업대에 등을 내고 화물선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때, 조이가 움직였다. 언제 위치를 봐 두고 있었는지 금방 다른 작업대를 찾아들고는 레오의 바로 옆으로 쑥 파고들었다. 레오와 위팔이 서로 닿을 듯 바싹 붙었다. 레오가 질겁했다. 그는 불시에 손목을 잡힌 소녀처럼 앙칼진 소리를 냈다.


  “뭐야!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뭘 하긴, 대장이 보고 배우라고 하잖아.”


  흔들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자신감이었다. 나는 그런 조이를 보는 로건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비치는 걸 보았다. 레오를 저렇게 쉽게 제압하다니. 불쾌했다. 저 로봇의 자신만만함은 도대체 무얼까? 나는 레오와 말을 트는 데만 해도 오래 걸렸다. 그런데 조이는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내가 일 년이 걸려 도착했던 지점보다 훨씬 더 멀리 나아간 것 같았다. 노련한 조련사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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