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악마 # 1
달의 태양은 지평선을 가로지를 뿐 솟아오르지 않는다. 소리 없는 바다는 눈이 덮인 사막처럼 희고 밝게 빛난다. 땅을 디딘 내 발에 차갑고 어두운 그림자가 매달린다. 금박을 치마처럼 걸친 아폴로 11호 착륙선 주변에 관광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뚱뚱한 월면복 차림으로는 기껏해야 서로의 어깨를 잡을 수 있을 정도인데도, 둘씩 혹은 셋으로 무리 지은 사람들은 애써 서로 끌어안는 시늉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헬멧 안, 그들의 얼굴은 큰 소리를 내며 웃고 있다.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해서라도 즐거운 기억을 오랫동안 붙잡아두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때 조이와 로건, 레오, 내가 그랬던 것처럼.
- 마리, 마리, 어디야!
헬멧 안에서 로건의 성마른 목소리가 쩌렁거렸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을 묻는 걸 보면, 그는 지난밤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모르는 것 같다. 로건이 상황을 파악했다면 나를 찾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정비-18팀이 이용하는 통신 회선을 분명히 꺼두었는데, 로건은 용케도 다른 회선을 찾아 무전을 연결했다. 아마도 재난을 대비한 비상 회선일 것이다. 나는 응답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비상 회선은 이쪽에서 끌 방법이 없다. 나는 한참 뜸을 들인 뒤에 그에게 답한다.
- 여기… 고요의 바다.
- 왜 지금 거기에 있는데?
- 길을 잃었으니까.
- 무슨 소리야, 왜 회선을 끊은 거야? 조이는 어디 있어? 같이 있는 거야?
로건은 숨도 쉬지 않고 연이어 질문을 던졌다. 가장 뒤에 나온 것이 그가 지금 제일 알고 싶은 내용일 거다. 로건에게는 내가 아니라 조이가 중요할 테니까.
- 못 알아들어? 조이가 어디 있냐고?
내 속에서 화가 불끈 치민다. 나는 인류 첫 살인자의 대답을 로건에게 퍼붓는다.
- 내가 조이를 지키는 사람이야?
조이의 계산대로라면, 지금 로건은 패닉 상태일 것이다. 계획이 틀어졌으니까. 그의 어조가 내면에서 몰아치고 있는 폭풍을 증명하고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부문장이 정비창에 도착한다. 예정대로라면 오늘 인수인계 절차가 있을 예정이었다. 비상 회선으로 레오까지 끼어들었다.
- 당장 달려가서 눈깔 뽑아버리기 전에 말 안 해? 조이 어디 있어!
레오가 옛날처럼 욕을 지껄이다니. 눈물이 찔끔 흘렀다. 반가웠다. 레오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다리를 절뚝이면서도 전속력으로 달려 조이의 숙소에 가 보았을 것이다. 지난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레오다운 행동이다.
- 레오 조용히 해봐. 마리, 일 커지기 전에 빨리 답해. 지금 시간이 없어.
무슨 시간이 없다는 건가? 그래, 로건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없겠지. 반대로 내 입장에서는 가능한 오래 시간을 끌어야 한다. 레오가 조이를 찾으러 숙소로 간 지금 정비창엔 로건 혼자 있다. 아마 골방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뒤엔 달라진다. 사람이 많아질 거다. 시험 기간 종료를 축하하기 위해 정비 부문장이 올 것이고, 제조사 양복장이도 오고, 어쩌면 ㈜옥토끼의 더 높은 양반들까지 올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피해가 너무 커진다. 로건이 계획을 실행하기 힘들 것이다. 내 계산에는 그렇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