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플라스의 악마 # 3
나는 성 염색체형이 XO인 뉴트럴이다. 뉴트럴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복제인 부화장에서 생식기가 발현되지 않은 채 나온 일종의 불량품이다. 우주에서 쏟아지는 유해 광선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는 가혹한 환경 때문에, 달에서는 나 같은 존재들이 드물지 않게 생겨난다. 그렇다고 뉴트럴이 폐기 대상은 아니다. 다른 신체 기능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내가 내 몸을 비관했던 시간도 있었다. 뉴트럴로 태어난 것이 내가 선택한 결과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길지 않았다. 뉴트럴은 보통 성별을 가진 다른 복제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둔다. 관계에 에너지를 덜 소모한다. 그래서 집중력이 좋고 숫자에 예민하다. 업무 성과도 대개 평균보다 높다.
나도 일반적인 뉴트럴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근무지를 한 번 옮기게 된 것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내 삶은 그런대로 평탄했다. 삶이 단조로울수록 걱정거리는 적어진다. 그게 내 지론이다. 가진 물건이 몇 개 안 됐다. 작업복 두 벌과 평상복 두 벌, 그 외에 뭐가 더 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일이 끝나면 숙소로 돌아오고 간편식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맨손체조를 조금 한 뒤에 침대에 누웠다. 그러면 금방 잠이 찾아왔다. 그게 나의 편안한 일상이었다. 그런데 조이라는 존재가 나타난 뒤로 내 잔잔함이 흔들리고 무너져갔다.
그랬다. 조이는 양복장이가 강조했던 대로 한 사람 이상의 몫을 했다. 우주정이나 화물선 정비에 관해 이론과 실무를 모두 꿰고 있었다. 로건이나 레오가 하는 일을 무시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지만, 그들의 영역은 물론 매우 전문적이라고 자부해 왔던 내 영역에서도 나보다 아는 게 많았다.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로봇이니까. 투입되기 전에 필요한 사항을 빠짐없이 입력했을 테니까. 그건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엄연한 반칙이다. 인간은 새로운 일을 배우고 그 일이 제대로 손에 익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팀 입장에서 보자면 확실히 좋은 일이었다. 조이가 온 뒤에 야근하는 횟수가 점점 줄었다.
“마리, 안 끝났어? 가자.”
퇴근 시간이 다 됐는데, 나는 검측기를 들고 씨름하고 있었다.
“왜 이러지?”
화물선 정비가 끝났는데 계속 오류 메시지가 떴다. 로건이 나에게 다가왔다.
“안 끝났어? 문제가 있어?”
“모르겠어… 오류 번호 자체가 안 나와. 시스템 소프트웨어 문제인가?”
입을 다물고 지켜보던 조이가 나섰다.
“짚이는 데가 있어.”
빨리 가고 싶어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던 레오가 잇몸을 드러내며 반색했다.
“오 그래? 조이가 해결해라. 얼른 찾아서 우리 집에 보내줘.”
조이는 내 표정을 살폈다.
“왜 눈치를 보는데?”
나는 뾰족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자존심이 상했다. 조이가 내 작업을 의심하고 있었으니까. 조이는 화물선 내부로 들어갔다. 익숙하게 항법장치 아래 덮개를 열었다. 보지도 않고 손부터 쑥 넣었다.
“야! 뭐 하는 거야?”
내가 소리를 질렀다. 낮에 오랜 시간을 들여 작업했던 구역이었다. 예민한 부품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곳이라 잘못 건드리기라도 하면 처음부터 다시 손을 봐야 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금방 ‘딸깍’ 소리가 들리고 내가 손에 쥔 검측기에 파란 불이 켜졌다.
“56번 소켓에 기판이 완전히 결합되지 않고 살짝 들린 것 같았어.”
레오가 환호했다. 로건이 씩 웃었다. 조이는 다시 내 눈치를 봤다. 나는 그런 조이가 더 미웠다.
조이는 인간을 돕는 로봇인데. 나는 관계에 집착하지 않는 뉴트럴인데. 조이를 미워하는 감정을 품은 내가 낯설었다. 조이는 사람보다 더 사람 같았다. 상대의 마음을 읽고 합리적으로, 적절하게 반응할 줄 알았다. 조이가 로봇이란 걸 잊지 않으려면 내내 긴장해야 했다.
“조이,”
나는 웃으면서 조이를 불렀다.
“응, 마리”
“너, 로봇 맞지?”
조이가 오른손으로 옆머리를 넘겨 귓바퀴가 드러나게 했다.
“무슨 뜻이야?”
“내가 충고하는데, 그거, 귀에 박힌 일련번호는 계속 눈에 띄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야 그럴 일 없겠지만, 나중에 사람 행세하려고 일부러 감추는 거라 오해받을 수 있어.”
나는 공연히 시비를 걸고 있었다. 그런데 조이는 존중하는 자세로 진지하게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 말이 맞는 것 같아."
조이는 바로 행동했다. 노란색 플라스틱 피복이 입혀진 전선 가닥을 하나 집어 들더니 머리를 뒤로 묶었다. 분홍색 머리카락에 가려졌던, 앙증맞게 동그란 두 귀가 드러났다. 보고 있던 레오가 반색을 했다.
“오, 예쁜데? 계속 묶고 다녀라.”
나는 헛웃음을 웃었다. 사실이었다. 예뻤다.
“칭찬 고마워. 레오”
조이는 자기보다 더 큰 레오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평소에도 그랬다. 조이는 레오를 아이 다루듯 했다. 외모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어깨를 토닥이고 엉덩이를 두드렸다. 레오는 진짜 아이가 되었다. 까르르 웃고 어리광을 부렸다. 조이가 두 팔을 벌리면 레오는 달려갔다.
레오가 나를 자기 숙소로 데려간 건 나를 만난 지 일 년쯤 지났을 때다. 그건 나를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증거라, 못 이기는 척 따라갔다. 그쯤 나는 레오가 외모나 말투와는 다른, 여린 내면이 있다는 걸 알았다. 같은 팀이니까 척을 질 필요는 없었다. 레오의 숙소는 그의 외모처럼 난장판이었다. 레오는 물에 희석한 알코올을 가져왔다. 나에게도 권했지만 거부했다. 레오는 알코올 희석액을 한 컵이나 들이킨 뒤, 자기 과거를 줄줄 털어놓았었다. 신세 한탄 같은 거였다. 레오는 부화장 작업자 실수로 인공 자궁에서 나오자마자 단백질 재활용 처리장에 떨어졌다. 작업자가 막 출고된 복제인 생체신호를 잘못 읽었던 모양이다. 레오는 날카로운 회전 칼날에 갈려 사라져 버릴 뻔했다. 그러나 용케 치명상을 피하고, 자력으로 살점 덩어리 가득한 탱크를 헤엄쳐 나왔다. 대신 그의 몸에 회복 못 할 상처가 남았지만.
“믿을 수 있어? 못 믿겠지? 그럴 거야. 내가 생각해도 내가 대단해.”
그는 옷을 벗어 비틀어진 다리와 산맥처럼 붉게 솟아 등판을 지나가는 흉터를 보여줬다. 그의 맨몸을 보게 된 것이지만, 성적 자극은 전혀 없었다. 털을 벗겨낸 짐승 같았다. 그의 몸에서 나는 것인지, 방에서 나는 것인지 몰라도 코가 마비될 것 같은 냄새가 났다.
조이가 온 지 한 달쯤 뒤에, 나는 다시 레오의 숙소로 찾아갔다. 레오는 싱글거리며 문을 열어주었다.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조명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사물들은 모두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아무렇게나 널려있던 옷가지도, 일회용 식량 포장도, 시큼하게 코를 찌르던 악취도 없었다. 나는 놀랐다. 분명히 같은 장소인데, 과거에 방문했던 곳이 아니었다.
“조이가 청소해 줬어. 좋더라고. 그래서 이제는 나도 해.”
나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 같았다. 그의 안에 새로운 질서가 생겨난 거였다. 떨떠름한 속내가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그는 나를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플라스틱 쓰레기라도 삼켰어?”
주저했다. 그렇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석 달이야, 레오. 조이가 우리와 함께 있는 시간은. 그리고 이미 한 달 지났어.”
나는 후회했다. 그 말이 내 입을 나와 공기의 진동을 타고 레오의 귀로 들어가자마자, 레오는 눈을 치켜떴다. 종잇장을 구겨놓은 듯 표정이 험하게 일그러졌다.
“나가.”
레오는 손가락으로 입구를 가리켰다. 나는 뭔가 더 설명하려고 했다. 애착이 너무 심하다고, 합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그럴수록 떠난 뒤 충격이 클 거라고.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레오의 붉은 얼굴은 더 붉어졌다. 처음엔 원숭이처럼 킥킥거리는 것 같더니 그 소리가 이내 사이렌처럼 길게 늘어져 요동치는 고성으로 바뀌었다.
“나가, 나가, 나가!”
레오는 웃옷을 찢었다. 예상할 수 없는 격렬한 반응이었다. 미친 사람처럼 날뛰기 시작했다. 당장 뭐라도 집어던질 기세였다. 위협적이었다. 난 달아났다. 그 뒤로 한동안 나는 레오와 대화할 수 없었다. 나는 지쳐갔다. 매일매일 가시를 잔뜩 섞어놓은 수프를 한 사발씩 떠먹는 것 같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