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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그린 Oct 05. 2023

11 H&M의 15불짜리 귀걸이

-하루에 하나씩, 물건과 이별하기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럴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날씨가 바뀌었다.


윈드스토퍼를 입으려고 생각하다 도톰한 점퍼를 꺼내 들고나갈 만큼 여름과 가을 사이에 무언가가 빠져 버린 느낌이다.


외출하기 위해 옷장을 살피다가, 기분 전환을 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이럴 때는 스카프나 액세서리가 필요하다.


서랍을 열어, 매일 차던 반지나 귀걸이 말고 새로운 무언가가 있을까 싶어 뒤적거린다.


그러다 액세서리를 모아 둔 작은 통에서 몇 년 전에 H&M에서 산 귀걸이를 발견했다.


금색으로 반짝이는, 귓불 아래에서 달랑거리는 이 귀걸이는 한번 차고 나갔을까. 아니면 두 번은 찼으려나.


가급적  한두 번 입고, 쓰고 버릴 물건은 사지 말자고 생각하는 요즘이지만


글쎄.


15불 정도 했던 귀걸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나는


가끔은 이런 소비도 괜찮다,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주 가끔 이렇게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나의 삶을 환기시키고 싶을 때.


그럴 때 간편하게,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게 이런 15불짜리 귀걸이일 수도 있을 테니까.


심플한 티셔츠에 귀걸이를 하고 거울을 본다.


이런 차림으로 나간 날은 놀이터 벤치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도 괜찮다.


슬리퍼를 신고 동네 공원을 유유히 산책해도 편해 보이는 모습이다.


오늘 오전에 나는, 만육천 원의 진료비를 내고 상담을 받고 왔다.


상담실을 나오며, 1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무언가 크게 바뀐 일은 없었지만, 매일매일 조금씩 마음을 다르게 먹고,


매일매일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한걸음, 아니, 반 걸음씩 걷다 보니 벌써 이만큼 오게 된 걸까.


그러다 또 생각한다.


진료비 16천 원과 귀걸이 15불의 차이에 대해서.


지금 이 귀걸이가 필요 없어진 나는, 서랍에서 이 귀걸이를 비워내겠지만.


그렇지만 이 귀걸이는 그때, 그만큼의 가치를 분명 해 내었을 거란 걸.


위로가 필요한 내게 위로를 주었을 테고, 용기가 필요한 내게 용기를 불어넣어 줬을지도 모른다.


세상 어느 것도 내게 아무 의미 없이 다가와 사라지지는 않는다.


서랍 속에 잠들어 있던 이 귀걸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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