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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딥그린 Oct 13. 2023

12 스노볼

-하루에 하나씩, 물건과 이별하기



처음부터 버릴 생각은 아니었다.

물티슈를 양손에 들고 거실장 위에 놓인 물건들을 닦던 중이었다.

손이 미끄러지면서, 닦고 있던 스노볼 하나가 깨졌다.

정말 가볍게 톡.

톡, 하고 깨졌다.

어찌나 얇은 유리였던지.

거실장 위에 톡, 떨어지면서 유리는 산산조각 났고 알 수 없는 액체와 함께 반짝이 가루가 쏟아졌다.

솔직히 나는, 그 스노볼을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어쩜 그렇게. 

나는 스노볼을 살짝 놓쳤고, 스노볼은 가볍게 깨져버린 걸까.


출장길에 사 온 스노볼이었다.

무슨무슨 스탄으로 끝나는 나라에서 구입했던 것 같다.

스노볼 나무 받침대에 양각으로 새겨진 글씨 위에 반짝이 가루가 잔뜩 붙어 있었는데, 스노볼을 만질 때마다 그 가루고 손에 묻어 불편했다.

나는 손에 무언가가 묻어나는 것을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이라.

그래서 그 스노볼을 손에 쥐고 자세히 들여다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여행지에서 사 온 기념품들과 사진을 담은 액자들과 함께 거실장에 놓아두었을 뿐이었다.


집을 가볍게 비우기로 마음먹은 후, 나는 딱히 쓸모없는 물건들을 비우는 데 조금 촉을 세우고 지냈다.

그래서였을까.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스노볼이 깨져버린 게 내 생각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대로, 말한 대로 되어버린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특히 말을 정말 조심히 사용하려 노력한다.

그건 어쩌면, 내가 말과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단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래서 더 감동받을 때도 있고, 불편할 때도 있는 것일지도.


깨진 스노볼을 닦아내는 과정은 번거로웠지만, 나는 짜증스럽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아쉽다거나 하는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저 안 쓰는 수건에 그 잔해들을 담에 분리해 버리면서 후련한 마음이 들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 스노볼을 지금까지 이고 지고 살았던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는 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해외에 다녀온 멋진 흔적이기 때문에.

아니면, 어떻게 다른 것도 아닌 스노볼을 버릴 수 있어, 하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나는 선물 가게의 유리장 안, 스노볼을 감탄하며 바라보던 어린이였으니까.


이렇게 오늘도 실수에 의해, 우연에 의해.

나의 집은 조금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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