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먹은 인형

손톱

by 민여름

"옆집인데요."


옆집에서 왔다는 사람의 목소리에는 불만을 잔뜩 품은 카랑카랑함이 깃들어 있었다. 여름은 긴장된 채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빼꼼히 문을 여니 여자가 문을 확 열어젖히며 따지기 시작했다.


"아니, 며칠 전부터 참다 참다가 말하는데, 도대체 방 안에서 뭐 하시길래 이렇게 기계 소음이 나는 거예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난데없이 불만을 듣게 된 여름은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겁을 잔뜩 집어먹은 염소 같은 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저, 제, 제가 아닌데요..."

"아니, 그럼 그 철커덕거리는 소리는 도대체 어디서 난단 말이에요?"

"저도 모르죠... 저는 그쪽이 내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요..."


옆집 여자는 여름의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허, 참 같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때 마침 타이밍 좋게 원룸 건물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저벅저벅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옆집 여자도 그 소리를 신경 썼는지, 뭐라고 더 하려는 듯하다가 멈추고는 톡 쏘아붙였다.


"아무튼, 앞으로 조심하세요."


그리고는 얼른 자신의 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여름도 얼른 문을 닫았다.


침대에 걸터앉은 여름은 왠지 열이 받았다. 일단 여름의 잘못도 아닌 걸로 시비가 걸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옆집 여자와의 소란이 있고 난 뒤 지잉 철커덕철커덕 딩동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기 때문에 옆집 여자는 분명 그 소음이 여름의 짓이라고 단정 짓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더더욱 억울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고 굳이 찾아가 해명하고 싶지도 않았다. 여름은 평소 잘 먹지도 않던 맥주를 들이켜고 잊어버리자 생각하며 편의점으로 갔다.


편의점에서 사과향이 나는 맥주와 짭짤한 과자를 사가지고 온 여름은 자신의 집 문 앞에서 약간의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외국의 마법학교에서 온 것만 같은 양피지 질감의 편지가 현관문에 꽂혀있었기 때문이다. 광고 전단지라기엔 너무 정성 들인 느낌이 있었다. 여름은 멀거니 몇 초 서 있다가 머뭇머뭇 봉투를 집어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침대에 기대어 앉아 옆에 맥주캔을 따고 과자봉지를 펼쳐놓고는 봉투를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봉투 앞면 중간에는 '민여름 님께'라고 검은색 잉크로 쓰여 있었다. 뒷면은 양피지 질감과 잘 어울리게 빨간 왁스실링이 붙어 있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쥐 캐릭터와 비슷한 문양이 찍혀있었다. 그 캐릭터보다 덜 동그랗고 야윈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이 편지는 뭘까? 누가 언제 꽂아놓고 간 걸까? 여름은 옆집 여자를 생각했다. 설마 그 짧은 사이에 사과편지를 써서 꽂아놓은 건가? 아주 잠깐 대화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 보자면,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 편지는 처음 본 인상 그대로 진짜 마법학교에서 온 걸지도 모르겠다고 여름은 생각했다. 여름은 사회적으로는 이런 유치한 생각을 할 만한 나잇대를 한참 벗어났지만, 늘 마음 한쪽 구석에는 힘들고 지긋지긋한 삶 속에서 본인을 구원해 줄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 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름은 그대로 상상의 나래를 더 펼치려다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런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날 확률은, 이 편지가 진짜로 옆집 여자가 써준 사과편지일 확률만큼이나 낮아 보였다. 여름은 천천히 실링왁스를 뜯어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반으로 접힌 편지와, 비슷한 크기의 작은 봉투가 들어있었다. 두 종이의 재질은 겉봉투와 완전히 같은 양피지 재질이었다. 여름은 조심스럽게 편지를 펼쳐 읽어 내려갔다.



민여름 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당신의 '바로' 옆에 있는 생명복제공방의 주인입니다. 우선 저희 공방의 방음장치가 미흡하여 이웃분과의 소음 트러블을 불러일으킨 점, 대단히 죄송합니다. 고개 숙여 깊이 사과를 드립니다.

그 대신이라기엔 미흡하나마 저희가 작은 선물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허락하신다면 동봉된 봉투에 깎은 손톱을 넣어 저희가 편지를 전해드린 방식과 같이 현관문에 꽂아주시겠습니까?

당신의 손톱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생명복제공방 주인장 올림.



여름은 놀랐다. 정말로 거짓말 같은 내용이었다. 자신의 집 '바로' 옆에 어떻게 공방이 있을 수 있고, 어떻게 공방이 생명복제를 한다는 거지? 실링왁스에 쥐 캐릭터 같은 게 있었는데, 혹시 그것과 상관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무슨 선물이길래 손톱을 달라고 하는 걸까? 편지 내용이 진짜인지 장난인지는 모르겠으나, 생명을 복제한다는 곳에서 손톱을 달라는 말은, 손톱에서 DNA를 채취한 다음, DNA로 복제품을 만들어 주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여름은 쥐 캐릭터와 손톱의 연관성을 생각하다가, 문득 어릴 때 전해 들었던 전래동화가 생각이 났다. 어떤 부잣집 도련님이 손톱을 아무 데나 깎아놓아 쥐가 와서 그걸 먹고는 똑같은 사람이 되어 진짜 행세를 했다는 그 이야기 말이다. 이 이야기와 편지 내용은 확실히 연관성이 있어 보였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여름은 봉투에 손톱을 잘라 넣어 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여름의 예상대로라면, 작은 선물이란 아마 자신의 복제품이 아닐까.


여름은 자신의 복제품이 생겼을 때를 상상해 보았다. 만약 전래동화대로 복제품이 진짜 행세를 한다 해도 여름이 잃을 것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여름은 퇴사 후 받은 퇴직금을 갉아먹으며 백수로 지낸 지 6개월이 넘어가고 있는 상태였다. 슬슬 돈이 떨어져 가고 있었다. 그렇다고 일이 하고 싶어지진 않았다. 여름에게 일이란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다. 만약 자신의 복제품이 생긴다면 대신 일하러 내보낼 수 있지 않을까? 여름의 마음은 마법학교에 가게 되는 것보다 더 설레기 시작했다.


여름은 손가락을 구부려서는, 마침 충분히 자라 깎을 때가 된 손톱을 바라보며 이성과 호기심 사이를 잠시 헤맸다. 말도 안 되는 일에 넘어가 볼 것인가, 말 것인가. 결국 여름은 손톱을 깎아 모아서 동봉되었던 봉투 안에 잘 넣었다. 그리고는 풀테이프로 붙여 봉했다.


다음 날, 정말 오랜만에 여름은 아침 일찍 산책을 나갔다. 손톱을 넣은 봉투를 현관문에 꽂아 두고서.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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