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저는 제임스 존의 엄마입니다.

by 포사 이목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저는 제임스 존의 엄마입니다.


“후원자님, 안녕하세요? 저는 제임스 존(가명)의 엄마입니다. 제임스는 벌써 서고, 춤을 추고, 동요를 부르고 소리를 듣고 말을 할 수 있답니다. 제임스가 좋아하는 음식은 밥과 콩이고 제임스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초록색입니다. 제임스는 축구 하기를 좋아하고 친구들과 축구할 때 기뻐한답니다.”

며칠 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우간다의 제임스 존의 엄마가 후원자에게 보내온 편지였다. 편지에는 영문으로 쓴 손 편지와 함께 아버지와 제임스 존(가명)이 함께 찍은 사진도 보내주었다.

보내준 한글편지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영문을 번역해서 보내 준 것으로서 제임스 존의 가족관계도 자세히 적혀 있었다. 제임스 존 가족은 부모님과 4형제다. 농사를 지어 생계를 이어가고 있고, 주거형태는 반영구적인 주택에 산다고 되어 있었다. 반영구적인 주택이 어떤 것인지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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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준 글은 읽는 것만으로도 제임스 존 가정의 경제 상황과 형편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물론 우간다에 많은 국민들이 이렇게 원조를 받아 생활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역시 후진국일수록 출산율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계를 생각한다면 애 하나만 낳아야 되지만 생계하고는 별개로 출산은 많이 하고 있다. 의료체계가 열악하여 영아 사망자가 많아서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내가 어린 시절 겪었던 모습이 그대로 연상되었다.


나는 2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위로 누님 두 분, 바로 위에 형님이 있었다. 형님과 나이 터울이 6살이나 났다. 그 이유가 있었다. 형님과 나 사이에 두 아이가 태어났지만, 돌이 되기 전에 다 죽었다. 어머니는 내가 자랄 때 가끔씩 얘기를 하셨다. 그러면서 나도 돌 지나면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말도 했다. 그 당시 병원에 쉽게 갈 수 있는 형편이 안 되었다. 아이가 아프면 민간요법을 곁들이며 정한 수를 떠 놓고 신에게 비는 수준인 것 같았다. 어머니는 내가 아프지 말라고 보름달이 비치는 밤이 되면 정 한 수를 떠 놓고 신게 빌었다는 얘기도 자주 하셨다.

초등학교 다닐 때 이웃집에도 가끔씩 어린애가 죽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산골이다 보니 산후조리를 잘못해서 아기 엄마도 죽고 아니면 아이도 죽는 경우다. 대부분의 집안은 형제자매가 6~7명은 기본이었던 것 같다. 우리 집처럼 4남매는 적은 축에 속했다. 아마 우간다도 내가 어릴 때 겪었던 그런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그 당시 초등학교) 들어가기 한해 전인 1972년도다. 누님, 형님이 학교에서 받아온 빵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 빵은 미국으로부터 옥수수 곡물을 원조 받아 만든 옥수수빵이었다. 그 당시는 그 빵이 너무 맛이 있어서 보약처럼 느껴졌다. 학교에서 형님과 누님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부터는 무료로 제공되던 옥수수빵이 사라졌다.

아마 우간다의 환경이 ‘내가 자랐던 1970년대 모습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먹을 것, 입는 것, 거주하는 곳에 대한 기본부터 열악하다. 제임스 존의 가족에게는 그저 의식주만이라도 해결되는 것이 가장 큰 삶의 희망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주로 먹는 것이 밥과 콩이라는 말이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먹을 것이 절대 부족한 것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졌다.


나는 최근에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으로부터 그동안 오랫동안 후원해오던 A 군의 후원 종료와 함께 우간다의 제임스 존을 후원한다는 편지를 받았다. A 군은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바꾸었다는 설명이었다. A 군이 10년 이상 후원한 것 같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후원자로부터 온 편지가 오면 별 관심 없이 대충 읽고 버린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끔씩은 A 군으로부터 온 편지와 사진을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 주기도 했다. 뭔가 교육적으로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별로 동요되는 기색도 없고 무표정이었다. 뭔가 그래도 남는 것이 있을 것 같아서 최근 2~3년 동안은 애들에게 자주 보여준 것 같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매월 월급에서 일정액을 기부하여 온 지도 거의 30년이 다 되어 간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그 이듬해부터인가부터 후원을 한 것 같다. 아내도 직장 생활을 해 오며 나랑 똑같이 기부해 왔다. 아내를 사별하면서부터 아내가 기부해왔던 금액을 합해서 월 4만 원을 지금까지 후원해 오고 있다.

금액이 많지는 않지만 제임스 존과 같이 후원자로부터 편지를 받으면 마음이 훈훈해지고 보람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나의 원조가 ‘세상의 죽어가는 생명들에게 모세혈관 깊숙이 피를 원활하게 공급하여 생기를 주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면부지의 애들에게 원조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 본성인 이타심이 있기 때문이란 것을 잘 안다. 인간에게는 이기적인 본성, 이타적인 본성 두 본성이 공존한다. 나이가 들수록 이타심을 더 많이 실천해야겠다. 이것은 ‘의지적인 노력과 생각이 지속되면 호전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세상을 밝게 빛나게 해주는 것은 이타심이 전해주는 사랑의 손길이다. 사랑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그곳에 진정한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돈과, 명예 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 인생 후반기는 ‘이타심을 통해 더 많은 사랑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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