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하며 캐릭터를 만들 때 여러가지 능력치를 잘 분배하여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체력과 정신력과 민첩성과 지혜라던지 하는 것들을 상황에 따라, 직업에 따라 균형있으면서도 강약이 드러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꼭 게임 속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직업을 가지고 생활하면서 해당 분야에 맞추어 개인의 여러 능력치가 이리 저리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경험을 몸소 느끼곤 한다. 나 또한 선생님으로 일을 하면서 개인적인 능력치가 변화했음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갖고나서 가장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체력이다. 친구들은 어린 아이들 가르치는 게 뭐가 그렇게 힘드냐고들 말한다. 초등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내용 수준이 사실 크게 어렵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 과정을 모두 거친 우리 어른들의 입장에서 말이다. 하지만 모든 개념과 원리, 용어 자체까지도 처음 접하는 아이들에게 그것을 설명하고 익숙하게 만드는 것은 참 어렵고 답답할 때가 많다. 이러한 과정을 매일같이 반복하면서, 앉을 시간 없이 계속 서서 돌아다니고, 수업 이외의 업무 때문에 5층짜리 건물을 등산하듯 매일 뛰어다니다보면 체력이 늘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체력보다도 더 급격하게 성장한 능력치가 있다. 바로 민첩성, 즉 임기응변의 능력이다. 선생님은 항상 임기응변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한 시간 수업단위로 짧게 생각해보아도 그렇다. 학생들과 주고 받는 수업 속의 모든 질문과 답변이 임기응변이다. 아이들이 대체로 물어볼만한 질문을 미리 준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질문은 허를 찌르는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터져나온다. 한 주를 보내면서도 계획과는 다른 일들 투성이다. 한 달도, 한 학기도, 크게는 한 해 역시 계획대로 되지 않는 임기응변의 연속이다. 이러한 뜬금 없는 수 많은 상황들을 겪으면서도 예상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포기하거나 슬그머니 없애버릴 수 없으니, 그것이 성장하게 된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수업 준비를 매번 꼼꼼하게 할 수는 없더라도 대략적인 계획을 해 두는 편이다. 난이도와 아이들의 흥미나 발달단계 등을 고려하여 특정 차시의 내용은 조금 더 신경써서 자세히 계획을 하는 경우도 있다. 계획을 제대로 하다보면 나의 질문에 대한 아이들의 예상 반응까지도 여러 갈래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모두 내 머릿속에서 아이들을 나름대로 그려보았을 때의 반응이다. 아니나다를까 현실은 정말 다르다. 예상치도 못한 대답이 이어지기도 하고 계획에도 없던 말을 내가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상상 수업 속에서는 수업 분위기에 반하는 행동이나 말을 하는 아이들이 이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오류일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한 시간 수업을 끝낸다. 다음 시간 다음 과목으로 넘어가면 또 다시 같은 상황의 연속이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아이들의 엉뚱하고도 허를 찌르는 질문에 더는 말문이 막혀 당황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아이들의 행동을 어떻게든 바로잡을 수 있는 정도의 유연성을 가지게 된 것 또한 다행이다. 아이들의 엉뚱한 질문을 받아 간단하게 답을 해주면서 관련된 여러 생각의 잔가지를 뻗어본다. 엉뚱한 질문과 수업 내용에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있다면 유연하게 관련지어 다시 수업 상황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임기응변 능력이 성장하면서 내심 혼자서 뿌듯한 경우도 많다.
학교의 일정 또한 시시각각 상황에 따라 변화한다. 갑자기 행사나 강의가 생기기도 하고, 있던 행사가 급작스레 미뤄지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사실 학교에서는 연간, 학기당 이수해야 하는 시간 수가 정해져있기에 매번 달라질 때마다 계산을 새로 해야한다. 과목별로 공부해야 하는 시간 또한 정해져 있는 관계로 매번 계산하기가 정말 골치아프다. 처음에는 어떻게 빈 수업시간을 대체해야 하고, 나중으로 미루어야 하는지 생각하다가 머리에 과부하가 온 적이 있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고, 그냥 가만히 여유를 되찾을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 또한 임기응변의 능력이 생겨나면서 잘 대처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여러 해에 걸친 경험을 통해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들을 미리 알았기에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부터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약간의 여지를 남겨두기도 한다. 사실 이번에도 고학년 운동회가 태풍으로 한 주 뒤로 연기되었다. 덕분에 6교시 수업이 갑자기 4교시로 바뀌어야 했다. 덕분에 내가 공식적인 일로 부득이하게 공가를 쓰고 다녀와야 했던 일정이 취소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제는 당황하지 않는다. 그러려니 하면서 다음 일정들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겨가며 조정하는 모습을 스스로 깨닫고는 한다.
이렇듯 학교는 그러려니 하며 대응하는 상황들의 연속이다. 당황하지 않는 것, 그 것이 어찌보면 선생님이 가져야 할 가장 큰 덕목이 아닐까 싶다. 당황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여유가 생기고, 그 여유에서 아이들을 대하는 너그러운 태도가 나올 것이며, 그러한 태도를 통해 아이들은 즐겁게 생활하고 부담감 없이 공부를 할 수 있다. 지금보다 더 당황하지 않는 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다. 오늘도 아이들이 하교하는 그 때까지 임기응변으로 잘 대처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