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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y Feb 08. 2020

#35. 언덕 위의 예쁜 집, 페인티드 레이디스

[7일차_샌프란시스코]

지난 저녁으로 낙지볶음에 된장찌개를 만나 엄청나게 들떴었나 보다. 미국에서 소맥이라니, 참이슬에 오비 프리미어라니. 한국에서도 잘 먹지 못했던 조합을 샌프란시스코에서 맛보아서인지 말 그대로 훅 취해버렸다. 리프트를 불러 유니언 스퀘어에서 무사히 호텔까지 도착하였다. 원래는 10시까지 야외 모닥불을 운영한다고 했었는데 불금이라 그런지 연장을 쭈욱 이어나갔다. 덕분에 예정에도 없던 달콤한 칵테일 한잔과 함께 모닥불에 앉아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푹 잠을 잔 것 같다. 눈을 떠보니 이미 아침 해는 환하게 떠 있었다. 이제는 정말 돌아가야 하는 당일이 되어버렸다. 오늘 하루도 어떻게든 알차게 채워 넣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호텔을 나왔다. 호텔 주차비가 비싸기는 했지만, 투숙객에게는 체크아웃 후에도 주차를 허용해주는 점이 좋았다. 우선 짐을 모두 챙겨 트렁크에 옮겨 담고는 시동을 걸었다.

샌프란시스코는 길이 참 특이하고 복잡하다. 일방통행 도로도 엄청 많을뿐더러 가는 길 곳곳이 언덕이다. 그저 오르막 내리막이 아니라 정말 가파른 길이다. 가파른 길을 올라가다가도 'STOP'사인에서는 멈추어 가야 하고, 언덕 위가 잘 보이지 않는데도 어떻게 어떻게 알아서 잘 운전을 해야만 한다. 운전을 하며 다니기에는 사실 그리 좋은 동네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럼에도 언덕을 따라 오밀조밀 이어지는 독특한 집들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오히려 언덕이기에 나타낼 수 있는 분위기인 것 같았다. LA의 집들이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마당 딸린 한적한 집들이었다면, 샌프란시스코의 집들은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조금은 더 바쁜 도시의 느낌이었고, 조금은 치열한 삶이 그려지는 모습이었다.

Steiner St & Hayes StSan Francisco, CA 94117United States

그런 샌프란시스코만의 집 풍경을 정말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곳에 도착했다. 바로 페인티드 레이디스(Painted Ladies)였다. 여러 편의 미국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드라마에서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실제로 가서 보니 왜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지 알 것 같았다. 샌프란시스코의 분위기를 집약하여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비슷한 모양새의 집들이 여전히 다닥다닥 붙어 있고,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색으로 겹치지 않게 칠해져 있다. 그 뒤로는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뾰족뾰족한 고층 건물들이 배경으로 펼쳐지니 그 아름다움을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방문한 날에는 그중 한 집이 지붕 공사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아쉬웠다. 정말 남들이 찍는 것 같은 깔끔하고 멋진 사진을 찍고 싶었기에 아쉬움이 컸다. 그런데 몇 분을 지켜보다 보니 공사를 하는 저런 모습이 오히려 더 현장감 있고 사람 사는 동네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 보이는 얼마간의 시간을 위해 틈틈이 준비하고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연예인의 일상 모습을 보고 오히려 더 환호하는 팬들의 마음이 이런 걸까 싶었다.

페인티드 레이디스 맞은편에는 알라모 광장 공원(Alamo square park)이 위치하고 있다. 그리 높은 언덕은 아니지만 페인티드 레이디스와 뒷 배경을 한눈에 감상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저 집들 중 일부에는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중이라고 한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낮이고 밤이고 누군가가 집 앞 언덕에 올라 자신의 집을 바라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나라면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았다. 물론 집과 경치를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겠지만, 의도치 않게 집을 나서는 모습, 운전하는 모습, 무언가를 배달시키는 모습 등을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숙박 공유 서비스를 통해 페인티드 레이디스 집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에어비앤비에서 모두들 몇 달 전부터 예약을 위해 엄청 애를 쓸 것이다. 나 같아도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게 해 준다면 샌프란시스코에 언제든 다시 방문하게 될 것 같으니 말이다.

아쉽지만 다시 차에 올랐다. 이제는 내가 정말 기대했던 그곳으로 가보려고 한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했을 때부터 휴대폰과 컴퓨터 배경화면을 이곳 사진으로 바꾸어두었다. 개인적으로는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첫 번째 장소라고 생각하는 그곳이다.


골든 게이트 브릿지, 금문교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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