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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y Feb 10. 2020

#40. 마지막 만찬, 대망의 오이스터 바

[7일차_샌프란시스코]

이제 비행기 시간까지는 다섯 시간 남짓, 시내 외곽에 있는 공항까지 이동하려면 늦어도 두 시간 안에는 저녁을 먹고 샌프란시스코 도심에서 떠나야 했다. 항상 시작보다 마무리에 더 많은 의미가 생겨나는 것 같다. 마지막 날이자, 마지막 저녁식사를 위해 조금은 무리하기로 했다. 평소에 너무나도 먹어보고 싶었던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오이스터 바에 가보기로 한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항구 쪽에 식당이 위치하고 있었다. 덕분에 도심 속 항구 주차장에 차를 대고 5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번쩍이는 도시 속을 제대로 못 본 것이 아쉬웠었는데 잠깐이나마, 다운타운에서 아주 약간 떨어진 곳이긴 하지만 대리 만족하기에는 충분했다.


페리 빌딩이라는 건물 내부에 위치한 식당으로 향했다. 페리 빌딩은 말 그대로 원래의 기능인 페리 선착장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식당들, 사무실들, 카페들로 가득 찬 곳이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사실은 내가 지난밤 묵었던 숙소도 이 페리 빌딩 근처였는데, 시간 관계상 들러보지 못했었다. 우연히 마지막 날 돌아가는 길에 이 곳을 들를 수 있어 참 좋았다.

1 Ferry BuildingSan Francisco, CA 94111United States

바다 쪽 해안가를 따라서 PIER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다. 각각의 번호가 붙어져 있고, 깔끔하면서도 웅장한 모습으로 줄지어 있어서 샌프란시스코의 규모를 대신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마음은 급하고 갈 길은 먼데도 신호가 잘 따라주질 않았다. 차선이 굉장히 넓어서 신호가 꽤 오래 빨간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신호등을 한참 기다리고 드디어 페리 빌딩에 들어갔을 때 다시 한번 조마조마한 순간이 다가왔다. 바로 그 오이스터 바에 들어가기 위한 줄이 꽤 길게 늘어섰기 때문이다. 결정을 해야 했다. 대기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데 무작정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주변에 그냥 아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안전하게 공항으로 시간을 맞추어 이동해야 할지 말이다.


우선 고민을 하더라도 줄을 서서 고민하기로 했다. 고민을 얼마 하지도 않았는데 줄이 금세 빠졌다. 오이스터 바의 특성상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가는 손님들이 많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고민할 필요 없이 꼭 먹고 싶었던 식당, 그리고 안전한 공항 이동까지 동시에 잡을 수 있었다.

내부와 외부에 각각 테이블이 많이 있었다. 둘 중에 선택할 수 있었는데 밤의 바닷바람이 쌀쌀하여 실내를 선택했다. 마지막 식사인 만큼 푸짐하고 만족스러울 만큼 주문해서 먹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총 세 개의 메뉴를 주문했다.

우선 오이스터 바에 온 목적, 바로 굴이다. 한 더즌짜리 세트를 주문했다. 여섯 품종의 굴을 두 개씩 나누어 먹기 좋게 가져다주었다. 피스모 비치에서 갔던 작은 굴 식당에 비하면 굴의 품종이 다양해서 좋았다. 하지만 곁들여 먹을 소스는 종류가 많지 않았다. 고수가 들어간 듯한 새콤한 소스 한 개와, 핫소스가 있었다. 나는 새콤한 소스의 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레몬즙을 살짝 뿌린 뒤, 핫소스를 조금 뿌려 먹었다. 생 굴의 맛과 새콤하면서도 매콤한 뒷 맛이 잘 어우러져서 정말 맛있었다.

다음은 조리한 굴이다. 구운 굴인데 소스나 조리 방식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바비큐 소스와 비슷한 맛이 나는 달짝지근한 요리를 주문했다. 생 굴에만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조리된 굴 또한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너무나도 만족스러운 나머지 천천히 아껴먹으려고 일부러 다른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기도 했다.

마지막 음식은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스튜다. 토마토를 바탕으로 하는 매콤한 국물이 정말 일품이었다. 해산물 해장국 같은 느낌이었다. 새우, 조개, 홍합, 오징어 등의 다양한 해산물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먹어도 먹어도 해산물들이 계속 생겨나는 듯했다.


세 가지 음식을 참 잘 주문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 굴도, 구운 굴도, 해산물 스튜도 전부 만족스러웠다. 미국에서 맛보는 최후의 만찬으로 충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마음을 완전히 편하게 한 채로 식사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혹시라도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을까 하는 마음에 시계를 계속 확인해야 했으니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식당에 가면 기다리는 시간이 가장 길고, 먹는 시간은 순식간이다. 맛있는 음식일수록 더더욱.

얼른 서둘러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눈에 들어온 것은 아주 작은 블루보틀 카페였다. 시간이 부족할지는 몰라도 최후의 만찬을 장식하는데 커피가 빠질 수 없었다. 따뜻한 윈터 라테를 한 잔 주문했다. 달콤하고 향이 좋은 라테였다. 조금은 쌀쌀하게 느껴지는 바닷바람에 딱 어울리는 맛이었다.

7일간의 여행, 그 모든 일정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공항 근처에 위치한 렌터카 반납 지점까지 운전하기, 공항에 가서 체크인하고 짐 부치기, 탑승 시간 기다리기, 비행기 타고 13시간 버티기만 남았다. 여행은 점점 끝나가고 있었고 솔직히 아쉬움보다는 피곤함이 컸던 것 같다. '한 일주일만 더 있었다면...' 하는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집에 가서 편하게 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슬슬 커져가고 있었다.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이런 마음이 들 때야말로 여행을 즐겁게 마무리하는 좋은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아쉬움과 후련함, 서운함과 기대감이 한껏 섞여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운전을 하고 캄캄한 고속도로를 따라 공항 쪽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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