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상벌제? 다들 겪어보셨잖아요

by Trey

여러 명의 학생을 동시에 지도해야 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을 형성하기 위해서 많은 선생님들이 상벌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학교뿐 아니라 각 가정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는 방법일 것이다. 아이들이 규칙과 약속을 이해하고 지키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점에서 효과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과 벌로 행동을 조정하려는 권위적인 시스템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이가 어릴 수록 상벌제를 운영하면서 얻게되는 교육적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 크지 않은 상벌점 시스템만 가지고도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그 안에 빠져든다. 어른인 우리의 생각에는 별거 아닌 상과 별거 아닌 벌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을 걸고 지켜낼만큼 소중한 법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그러나 이 것도 잠시, 어느덧 아이들이 익숙해져서 규칙을 잘 지켜가며 분위기가 형성되고 이른바 ‘잘 굴러가는’ 반이 되었다고 생각할때 쯤 항상 문제는 생겨난다. 몇몇 아이들은 이제 그런 상벌제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만만하게 생각을 한다. 잘해도 별거 없고, 못해도 별거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애써 쌓아온 시스템과 분위기를 모두 망가뜨릴 것 같은 걱정에 선생님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권위적인 규칙을 없애야 한다고, 교사와 학생간의 위계를 형성할 수 있는 상벌 시스템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연수를 들은 적이 있다. 한 두번이 아니라 요즘 듣는 연수에서는 매번 그런 이야기를 듣곤 한다. 몇 년 전부터 권위적이고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규칙은 없앴다. 아이들과 처음 한 달을 규칙 없이 지내보며 스스로 불편한 점을 깨닫고 꼭 있어야 할 규칙을 생각해내도록 한다. 규칙이라기보다는 함께 합의한 약속에 가깝다. 그러한 약속도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른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했다. 떠들었기 때문에 청소를 하고, 싸웠기 때문에 반성문을 쓰고, 숙제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일 도우미가 된다는 식의 대가 치르기, 즉 징벌적인 규칙을 없앴다.


함께 정한 약속을 지키기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벌제는 아직 교실에서 완전히 없애지 못했다. 교육 서비스 업체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주로 알림장이나 게시판을 통해 학생, 학부모들과 학교의 일상을 공유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그런 시스템인데, 수업 시간에 활용할 수 있는 상벌 시스템이 포함되어 있다. 무언가 약속을 잘 지키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행동할 때 “으쓱 카드”를 준다.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행동을 할 때는 “머쓱 카드”를 준다. 카드를 주는 그 순간 학생과 학부모의 휴대폰에 깔린 해당 앱을 통해 알림이 간다.


방금 1교시 수업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수업에 방해되는 이야기를 큰소리로 하는 학생이 있어서 잠시 수업을 멈추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듣게된 소리는 나를 조금 멍하게 만들었다. “이제 안그럴게요. 머쓱카드는 안주시면 안돼요? 엄마한테 집에 가면 더 혼난단 말이에요..” 나는 우리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 교실에서 충분히 해결하고 수정하여 더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학습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 으쓱카드와 머쓱카드를 주었다. 학부모에게 알림이 가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저 안내하는 정도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의 최대한 많은 것을 공유하고 개방해야지만 소통이 이루어지고, 협력이 이루어지고, 보다 더 나은 교육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내가 지금까지 머쓱카드를 주면서 책임을 전가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은 머쓱카드를 받으면서 집에 가서 부모님께 크게 혼날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수많은 연수에서 했던 말들이 다 맞는 말이긴 하다. 학급 운영을 잘 하는 것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는 여러 선생님들의 교실에서는 상벌제를 찾아보기 힘들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스스로 약속을 잘 지키고, 매일 매일 행복하게 운영되는지, 그 처음 출발점을 무엇으로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아직은 감이 오지 않는다.


교사가 이러면서 배우고, 이러면서 발전하고 성장한다고는 하지만 반복되는 이런 부딪힘과 곤란함 때문에 이제는 가끔 무기력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교사도 사람이라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완성되어 간다고는 하지만, 조금 더 완성된 상태로 교직생활을 출발 했더라면 아이들도, 나도 한참 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가졌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것 같다.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조금은 미안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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