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또다시 우유전쟁

by Trey

초등학교에 근무하다 보면 내가 초등학생이던 때부터 지금까지도 같은 모습으로 이루어지는 활동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이유 모를 흐뭇한 웃음이 나오곤 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우유급식이다. 매일 아침 우유 냉장고에 새 우유가 가득 채워지는 것부터, 당번을 정해 아이들이 우유를 낑낑거리며 들고 와야 하는 것과, 일주일에 한 번 초코우유나 검은콩 우유 같은 달콤한 우유가 나온다는 것까지 똑같다.


흐뭇함이 있음에도 사실 우유급식은 우유 전쟁이다. 우유를 먹고 싶지 않은 학생과, 아이가 우유를 마셨으면 하는 부모님들과, 교실까지 진격해 들어온 우유 군대를 어서 아이들이 먹어서 물리쳤으면 하는 교사 사이의 전쟁이다. 보이지 않지만 교실에서 일어나는 큰 전쟁 중 하나다. 1학기 초 우유급식 신청서를 받아보면 2~3명을 빼고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신청서를 가지고 온다. 대부분은 부모님의 의사가 많이 반영된 편이다. 아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가며 우유 마시기를 미룬다. 배가 아프다거나, 머리가 어지럽다거나, 속이 울렁거린다는 이유가 대표적이다.


2학기에도 다시 우유 신청을 받기로 한다. 그리고 영양 선생님은 진하고 굵은, 또 밑줄까지 그어진 글씨로 신청서에 한 줄 내용을 추가하셨다. “꼭 아이들과 상의하여 의견을 정해주세요”라고 말이다. 우유 급식 신청서를 제출하는 학생들이 확연히 줄었다. 물론 2학기에도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프고, 속이 울렁거리는 바람에 우유를 못 먹겠다고 이야기하는 학생들은 있다. 하지만 우유 바구니 속 우유들이 1학기 때보다는 확실히 빠르게 비어져 나갔다.


목요일. 초코우유가 나오는 날이다. 신기하게도 이 날은 우유 마시자는 이야기를 하기 전부터 우유 통이 가벼워진다. 1학기에는 우유를 신청했다가, 2학기에는 우유를 신청하지 않은 어떤 학생은 초코우유를 보자 잠시 착각을 했는지 우유를 가져가서 마셔버렸다. 나도 사실 초코우유가 누구보다도 반가운 사람이지만, 아이들한테 초코우유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 것 같기에 그날만큼은 내 우유를 조용히 양보해주었다.


사실 일괄적인 우유 급식이 정말로 필요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우유를 가지고 아이들과 입씨름하기 귀찮아서가 아니다. 과연 학교에서 우유급식을 10년 전, 20년 전과 똑같은 방법으로 실시해야 하는 필요성을 이제는 더 이상 못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유제품은 점심 급식을 이용하여 충분히 제공된다. 그리고 학생들이 가정에서도 유제품을 충분히 접하고 있다. 아이들이 싫어하는 흰 우유보다도 더 영양이 풍부한 다양한 맛의 우유도 출시되고 있다. 그러한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우유 급식은 단일 제품을 대량으로 일괄 구매하여 제공하는 학교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학교는 훨씬 더 많이 바뀌어야 한다. 우유 급식도 학교를 요즘 시대에 맞게 바꿀 수 있는 핵심 열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유는 영양섭취에 좋아. 학교에서는 항상 우유를 아침에 먹었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맛있는 우유 넣어주면 되지”라는 생각 자체를 살짝 뒤집어볼 수 있는 기회들이 점차 커졌으면 좋겠다.


글을 마무리하려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실현 가능성은 없을 것 같지만 적어보려고 한다. 대규모 학교에서 우유 자판기를 설치하면 어떨까. 따로 우유 급식 신청을 받지 않아도 교사, 학생, 학교에 방문하는 학부모 누구든 우유를 쉽게 싼 가격에 구매해서 원할 때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납품해야 하는 맛과 양을 정확이 파악하지 못하는 점과, 남은 우유를 처리해야 하는 업체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한 가지 가보지 않은 길 중 하나로 적어 본 것이다.


얘들아. 오늘은 우유 바로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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