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학습준비물을 신청합니다.

by Trey

예전에 내가 초등학생이었던 때를 생각해보면 가장 기다려지던 날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서 수업을 했었으니, 바로 토요일 마지막 시간이다. 그 시간 수업을 마칠 때쯤이면 선생님이 다음 주 수업 내용과 준비물이 적힌 주간학습안내를 나누어주셨다. 다음 주 수업이 기대되서가 아니라, 다음 주 공부할 내용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주간학습안내의 또 다른 쓰임새 때문에 기다렸던 것 같다.


수업 종이 땡 치고 나면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각자 집으로 향한다. 집에 가는 길에는 항상 학교 주변 동네 문구사가 있었다. 문구사 아저씨는 매주 토요일 1학년 1반부터 6학년 6반까지 모든 반의 주간학습안내를 딱 한 장씩만 복사하셨다. 그렇기에 각 반에서 가장 첫 번째로 문구사에 가는 사람만 복사를 할 수 있는 영광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복사를 하게 된 학생은 문구사에 파는 불량식품을 어느 정도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었던 특권이 있었다. 그 당시 그 문구사 아저씨는 학습준비물을 준비해주고, 우리에게 판매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다음 주 수업에 어떤 준비물이 필요한지, 어떤 재료를 미리 주문해 두어야 할지를 조사하셨던 것이다.


요즘 학교에서는 대부분 준비물을 챙겨 오라고 하지 않는다. 이 또한 교육청마다의 차이가 있을 것이고, 학교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며, 사용처에 대해서는 각 담임 선생님마다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근무하는 교육청과 학교에서는 매우 큰 규모의 학교임에도 아주 넉넉한 준비물 예산을 운영하고 있다. 연간 학생 1인당 4만 원씩 지원을 해 주는데, 27명인 우리 반으로 생각을 해 보면 연간 총 108만 원 이상의 준비물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때때로 예산이 늘었다며 준비물을 추가로 구입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기도 한다.


주로 교과활동을 진행하면서 꼭 필요한 준비물들을 우선적으로 구매한다. 각도기라던지, 컴퍼스라던지, 먹물과 붓이라던지, 리코더 같은 것들을 주문한다. 그러고 나서는 담임선생님들마다 각자의 교실 특색에 맞추어 자유롭게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름방학이 다가올 때는 부채 DIY 세트를 구매한다던지, 향초 만들기, 비누 만들기 체험 키트를 주문한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시기별, 계절별로 특색 있게 운영할 수 있다.


요즘에도 주간학습안내를 통해 다음 주의 수업 내용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예전에는 준비물이 적혀 있는 칸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미술 수업이 한 번 들은 날에는 도화지부터 시작해서 크레파스, 색연필, 사인펜, 물감, 물통, 붓, 수건까지 모든 것을 별도의 가방에 준비해서 가야 할 정도로 양이 많았다. 등교하는 도중 친구와 장난을 치다가, 아니면 가방에 넣다가, 가방에서 꺼내다가 도화지가 구겨지거나 찢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음부터는 도화지를 두 장씩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고, 깨끗한 종이를 구하지 못해서 선생님께 혼날까 걱정하는 때도 많았다.


내가 학습준비물을 신청하면서 가장 많이 주문하는 것은 다양한 사이즈의 도화지다. 유독 도화지가 준비물일 때 당황스러운 일을 많이 겪었던 나는 도화지만큼은 아이들이 깨끗한 상태로 언제든 원하는 수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교실이 그렇겠지만 도화지, 색연필, 사인펜, 매직, 풀, 가위 같은 기본적인 학용품들 뿐 아니라 물감, 물통, 팔레트까지 준비되어 있는 교실이 많다.


이렇게 학교에서 준비물을 최대한 지원해주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해당 수업을 진행하고 활동을 이어나가는데 필요한 적정 수준의 도구와 준비물들을 기본적으로 제공해주어, 모두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수업 시작의 필수 조건이라 생각한다. 색연필을 준비하라고 안내했을 때 준비해 오는 색연필의 차이는 상상 이상으로 다양하다. 5색 미니 색연필을 준비해오는 학생들도, 12색 기본 색연필을 준비해오는 학생들도, 36색 색연필을 준비해오는 학생들도, 100색 전문가용 색연필을 준비해오는 학생들도 있다. 학생들 각자의 취미나 관심에 따라 다양하게 준비해오겠지만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정도의 준비물은 학교에서 준비해주고, 추가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것들은 학생들이 가지고 와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는 방향이 아닐까 싶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또 한 번 학습준비물을 대량으로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민이 한가득이다. 최선의 선택으로, 최고의 학습효과를 낼 수 있도록 충분히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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