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가 선생님이 되기까지

by Trey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항상 “장래희망이 뭐니?”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준비한 채로 살아가야 했다. 자기소개를 할 때 이름과 함께 장래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했으며, 선생님을 포함한 대부분의 어른들은 나의 장래희망을 묻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냈음에도, 되고 싶은 미래를 온전히 그려가면서 나의 진로를 탐색하여 정하고, 그렇게 꿈을 하나 하나 계획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기회는 딱히 없었던 듯싶다. 그럼에도 나의 장래희망, 부모님이 원하는 장래희망은 아직까지도 나의 학생생활기록부에 몇 년치의 자료로 남아있다.


그러한 질문이 계속될 때마다, 나는 선생님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딱히 별다른 계기가 있다거나 닮고 싶은 롤모델을 만난 것은 아니다. 그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이 초등학교 선생님인지, 중학교 선생님인지, 수학 선생님인지, 과학 선생님인지, 일본어 선생님인지는 전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렇게 나는 막연하게나마 꿈을 멋대로 정해놓은 채 차분히 단계를 밟았다.


나는 수능에 전혀 자신이 없었다. 특히나 수리영역에는 전혀 소질이 없다고 느낄 정도로 처참했다. 반면 내신 시험에서는 꽤 좋은 성적을 꾸준히 얻었던 것 같다. 교과 선생님들이 알려주는 출제범위를 보고 나름대로 종이에 예상 문제를 만들어보곤 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나누어 푸는 데 재미를 느끼곤 했다. 내가 그런 식으로 만들어 낸 시험지를 보고 어떤 선생님은 “이거 어디서 났어?” 하면서 당황스러워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을 보았을 때, 나는 수시 전형을 통해 대학을 가야 하는 학생이었다. 참 다행히도 내가 대학 입시에 참여하는 그 해까지만 해도 수시모집 지원에 제한이 없었다. 말 그대로 응시료만 낸다면 원하는 학교, 원하는 전형에 얼마든 원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나는 총 11개의 학교에 수시모집 입학 원서를 제출했다. 그중에 교대는 두 군데였다. 그리고 사범대는 없었다. 나머지는 모두 일반 대학교의 일반 학과였다. 이때 나는 내가 정말 교사라는 직업을 크게 염두 해 두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또한 나는 문득 느꼈던 것 같다. 내가 남들처럼 넓디넓은 대학교에 가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영어를 공부하고, 법학을 공부하고, 인문학을 공부해서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보고 남들이 원하는 기업에 떡하니 붙는 그런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될 것이라고 철석같이 나 자신을 믿고 있었다는 것을.


이 학교, 저 학교에 면접을 보러 다녔다. 정말 진심으로 나는 모든 학교의 면접에 진심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그러한 노력에 비해 결과는 애매했다. 열 한 곳의 학교에 지원하여 다섯 군데의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몇 군데의 학교에 합격했다는 숫자 자체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중에는 교대 초등교육과, 법학과, 영미어문학과, 인문학과, 경영학과가 있었다. 끝까지 고민했던 과는 교대와 영미어문학과였다. 여러모로 비교해보고 판단한 뒤 비로소 결심을 하게 된 것 같다. 나를 이리저리 살펴봤고, 부모님의 의견도 여러모로 들었다. 그렇게 나는 교대생이 되었다.


모든 면에서 나는 무난한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남들에게 무난하게 보이는 것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대학교 생활을 무난하게 보이기 위해 얼마나 적극적으로, 또 열심히 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남들한테 좋은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모른다. 마치 교대 생활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선생님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나의 대학교 1학년을 떠올리면 아직도 기억나는 모습이 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친했던, 지금까지도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저런 하소연 하는 기억이다. 교대를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정말 많이 했다. 내 적성이 아닌 것 같다는 말도 많이 했다. 하다못해 아이들이 너무 싫어질 것 같다는 말도 수 없이 털어냈다. 나는 교사가 내 적성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 년을 잘 지내는 척하면서도, 친구에게는 징징거림만 쏟아냈던 내가 2학년 때 처음으로 교생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11살짜리 4학년 학생들이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정말로 뿌듯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일 년 반을 징징거렸던 것이 무안할 정도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이런 아이들을 꼭 교실에서, 학교에서 다시 마주하고 싶었다. 그때부터는 의미 없던 징징거림 대신에 어떻게든 시험에 합격해서 아이들을 만나야겠다는 그런 다짐만 늘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나는 그렇게 해야만 합격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휴일까지 반납해가며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보고 그 누군가 보이지 않는 힘으로라도 도와주지 않겠냐고 생각해봤다. 사명감이 생겨서인지 쉴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재수 없는 소리로 들릴까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정말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기까지 했다. 주말도, 방학도, 공휴일도, 명절도 없었다. 대학을 먼 타지로 진학한 덕분에 주말도, 방학도, 공휴일도, 명절도 친구들과 스터디 모임을 하거나, 혼자 복습하는 그런 뻔한 시간으로 채워 보냈다.


결국은 그렇게 임용시험을 봤다. 정말 보이지 않는 힘의 도움이었는지 모든 운이 맞아 들어간 느낌이었다. 시험장은 내가 졸업한 나의 모교, 내가 사용했던 교실이었고, 문제들은 내가 주의 깊게 봐 왔던 내용들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아이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첫 출근. 그 날의 들뜬 마음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너무 행복하고 너무 기대가 됐다. 그렇게 나는 한 해를 보내고, 군대를 다녀왔다. 그리고 아이들 앞에 또 한번 새롭게 다가갔다. 그리고 지금. 나는 갓 신입의 티를 벗었다고 여기는 1급 정교사 연수를 마쳤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 나는 우리 아이들을 다시 한 번 마주한 채로 글을 쓴다.


나는 지난 나의 걱정과 망설임을 후회한다. 나는 지난날의 투덜거림에 스스로 너무 속상하다. 그렇기에 나는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그러려고 노력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나는 이제야 진심으로 선생님이 되고 싶어 졌다. 직업으로서의 선생님이 아닌, 아이들의 ‘우리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러니 잔말 말고 힘내서 더 노력하자고, 그 방법밖에는 없다고 스스로 또 중얼거리면서 나는 일어선다. 아이들을 만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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