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과는 일기 쓰기였다. 나는 일기 쓰기를 참 싫어했던 것 같다. 매일 쓸 말도 없는데 한 장을 꽉 채워 써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보통 “나는 오늘 일어나서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친구랑 놀다가 학원에 갔다가 저녁으로 뭐를 먹고 집에 왔다.”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일기를 쓰곤 했다. 마지막은 항상 이랬다. “참 재미있었다.”
그럼에도 가끔 일기 쓰기의 중요성을 느끼는 때가 있다. 종종 집에 있는 책꽂이나 방을 정리하다가 보면 예전에 쓰던 일기장을 훑어보게 될 때가 있다. 이제야 보면 굉장히 재미있다. 이런 일이 있었구나 싶으면서도 일기를 쓰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선생님들이 일기를 괜히 쓰라고 한 게 아니었구나 싶은 마음도 들긴 한다.
이제 내가 그 선생님이 되었기에 아이들에게 일기를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쓰도록 해야 할지를 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담임을 맡은 첫 해부터 지금까지 쭉 해 오고 있는 방식이 있다. 아이들이 매일매일 지겨워하지 않아도 되고, 쓸데없이 반복되는 말을 매일같이 적지 않아도 되는, 그리고 나중에 언젠가 글을 읽어볼 때 무언가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나는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서를 생각해보았다. 아이들에게 있었던 중요한 일을 느낌과 함께 분량 걱정 없이 적어보라고 했다. 한 줄을 적고 싶은 날은 한 줄을 적고, 네 줄을 적고 싶은 날은 네 줄을 적으면 된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한 장을 꽉 채우고 싶은 날에는 한 장을 꽉 채워 써도 된다. 따라서 기존의 방식처럼 한 페이지에 한 편의 일기를 쓰는 방식을 버렸다. 모든 일기는 줄 글로 이어서 쓴다. 대신 날짜를 구분하기 위해서 매일 일기를 시작할 때 (9월 28일)처럼 날짜를 쓰고 시작하도록 했다. 정 쓸 말이 없는 날이 분명히 있을 것인데, 그런 날에는 일기를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매일 쓸 말이 없다고 일기를 쓰지 않으면 내가 계획한 의미가 사라진다. 그래서 일주일의 자기 이야기를 모아서 공책 한쪽을 채워오기로 했다. 하루에 한 줄에서 네 줄 정도 쓰다 보면 한쪽을 채우기란 정말 쉬운 일이다. 매일매일 크게 부담 갖지 않는 선에서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모든 아이들이 한쪽을 전부 채워오는 것은 아니었다. 쓸 말이 정말 없었다며 반을 채워오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래서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아야 했다.
매주 금요일에 나누어주는 주간학습안내 상단에 “이번 주 글쓰기 주제”라는 칸을 만들어 한 줄짜리 주제를 소개했다. 대단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면서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주제들을 적어주고 있다. “갑자기 내가 투명인간이 된다면? 교실에 매점이 생긴다면? 자기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어본다면? 내가 원하는 일주일 치 급식 식단표를 짜 보면?”과 같이 재미있으면서 부담 없는 주제를 매주 제시하고 있다. 때로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활동과 관련하여 주제를 제시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일 년이 지나고 나면 공책이 꽉 차지는 않겠지만 여러분의 하루하루가 담긴 역사책이 완성될 것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이제 일 년 가까이 이러한 일기 쓰기를 이어나가고 있는 우리 반 아이들은 정말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쓰고 싶은 말이, 소개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매주 2~3장을 줄 글로 이어서 써오는 학생도 있고, 글쓰기 주제까지 포함해도 반을 간신히 넘기는 학생들도 있다. 분량을 내가 정해주기는 했지만 분량을 넘기거나 부족한 것 가지고 한 번도 이야기해 본 적은 없다. 그 아이도 사실 그만큼을 써가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생각을 했겠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나도 매년 종이에, 컴퓨터에, 태블릿에 일기를 써 보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참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나도 한 줄씩 매일 기록을 남기자고 계획을 변경하였는데도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아이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순순히 나의 일기 쓰기 방식에 따라주고 열심히 쓰고 있는 아이들에게 갑자기 굉장히 고마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