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전부터 선생님 하면 생각나는 것이 바로 도장이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선생님들은 일기장에, 수학익힘책에, 방학숙제에 푸른색 도장을 쾅 찍어주곤 하셨다. 그 당시에는 도장 디자인도 많지 않았다. “참 잘했어요”라거나 “검”이라고 딱딱한 기본 글씨체로 쓰인 도장뿐이었다. 그 도장이 찍혀 나에게 다시 돌아온 일기장과 숙제를 바라보면 큰 일을 해낸 것처럼 뿌듯하고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발령을 기다릴 때 그 도장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디에 발령을 받게 될지, 어떤 학년을 맡게 될지, 하다 못해 담임을 맡게 될지 교과 전담을 맡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어찌 됐건 초등학교 교사이기 때문에 도장 하나쯤은 미리 준비해서 나쁠 게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터넷에 도장을 검색해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더 이상 “검”이라던가 “참 잘했어요”라는 글자가 덩그러니 쓰여있는 차가운 느낌의 도장은 인기가 없었다.
여기저기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살펴본 후에 나는 하나의 도장을 주문하였다. 나를 많이 닮지는 않았지만 가장 비슷한 캐릭터가 활짝 웃으며 두 팔을 쫙 펴고 있는 도장이었다. 캐릭터 위쪽으로는 “참! 잘했어요”라는 문구가 둥그렇게 들어가 있고, 아래쪽에는 내 이름을 이용하여 “OOO 선생님”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도장이다. 도장을 배송받고서 혼자 뿌듯한 마음에 여기저기 찍어보며 기분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이 도장을 받고 나서 바로 학교에서 사용할 기회는 없었다. 첫 해에 교과 전담을 맡게 되었는데 실과와 도덕이었다. 사실 숙제도 별로 없는 과목이고, 실습과 활동 위주의 수업이라 도장을 사용할 일이 정말 없었다. 그 해가 지난 후에는 군대에 가기 위해 휴직을 하였고, 복직을 해서도 몇 달 동안 체육 전담을 맡았다. 더욱 도장을 사용할 기회가 없어진 것이다. 그다음 해 처음으로 담임을 맡게 된 후에야 도장을 실제로 찍어 볼 기회가 생겼다. 아이들이 일기를 써 올 때, 수학 익힘책을 풀어서 나올 때, 함께 해결하는 학습지를 완성하여 가지고 올 때 등, 정말 도장을 찍을 수 있는 때면 어김없이 쾅쾅 찍고는 했다.
그러던 중 또 한 가지의 도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사용하는 도장이 아니라 선생님들에게 사용하는 도장이다. 아이들이 가정에서 체험학습을 다녀오겠다는 신청서와 보고서를 낼 때, 결석을 한 뒤에 결석계를 낼 때, 아이들의 학년 말 생활기록부를 마무리하여 작성할 때 등 은근히 나의 서명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매번 이름을 써서 결재를 할 수도 있지만 공식적인 문서인 데다가 학부모들에게 배부되는 경우도 많아 도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또다시 인터넷 도장 업체들을 군데군데 들여다보았다. 동그란 빨간 테두리가 있고, 그 안에 ‘OOO인’이라고 딱딱하지도, 너무 자유롭지도 않은 서체로 새겨진 도장을 선택했다. 그 후로 이 도장을 정말 많이 사용했다. 아이들이 조퇴를 할 때 학교보안관 선생님께 드릴 확인서에, 결석계에, 현장체험학습 신청서와 보고서에, 학기말 통지표에, 아이들 생활기록부에 찍었다. 서명이나 도장이나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마음만큼은 더 뿌듯했다.
마지막 도장은 꼭 필요해서 구매했다기보다는 보는 순간 혹하는 마음에 구매하였다. 바로 감정 도장이다. 머리카락, 얼굴형, 어깨까지의 몸통만 그려진 도장이며 눈과 입 등 얼굴 표정은 텅 비어있다. 즉 도장을 찍고 눈과 입을 마음대로 그려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주로 일기장을 보며 아이들의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구매하였다. 보통은 아이들이 일기에 신나거나 즐거웠던 이야기를 적기 때문에 그 도장도 웃는 얼굴로 완성될 때가 많다. 나는 주로 도장을 찍고 표정을 그린 후에 옆에 말 풍선이나 생각 풍선을 그리곤 한다. 거기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생각을 적어서 표현하면 그냥 일기에 한 줄 코멘트를 다는 것보다 조금은 따뜻하게 전달되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나는 세 가지의 도장을 요리조리 잘 사용하고 있다. 이제 도장은 편리하면서도 따뜻하게 감정을 전해주는 역할까지 하는 것 같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차가운 느낌으로 찍힌 도장을 보면서도 뿌듯함과 성취감을 느꼈으니, 지금의 아이들은 조금 더 따뜻해진 도장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도장을 통해 진심이 전달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