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생활하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일, 기분이 상하는 일이 수도 없이 교차하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즐거움에 흐뭇해하며 뿌듯해지는 일도 많지만, 그만큼 감정을 소모하고 혼자 속상해하는 시간도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과의 관계나 생활 전반에서 지나치게 감정을 소모하거나, 상처 받지 말라는 선배 교사들의 조언도 있지만 그게 마음처럼 딱딱 끊어지지는 않는 터라 어려움이 상당히 있다.
대부분의 학급에는 말썽꾸러기도 있고, 정말 모범생인 아이도 있고, 친구들을 잘 이끄는 아이도 있고, 친구와 틈만 나면 싸우고 화를 내는 아이도 있다. 대부분 선생님들은, 마음속으로는 어떠한지 몰라도 적어도 겉으로는 모두에게 차별 없는 사랑을 주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누구에게나 같은 기회를 주고, 같은 만큼의 마음을 주고자 하는데도 솔직히 말하면 마음이 조금 더 가는 학생이 있기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첫 반응은 “그럴 수 있지”다. 나는 사실 속으로 깜짝 놀랐다. “선생님이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라는 반응이 대부분일 줄 알았는데 아직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 선생님들도 사람이기에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는 것에 다들 이해를 하는 것 같다. 다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 마음이 행동이나 반응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행동으로 이어지는 그 순간 ‘편애’, ‘차별’ 등의 마음 아픈 낱말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럴 수 있지”에 이은 다음 반응은 “말 안 듣는 애들한테 제일 마음이 안 가지?”식의 반응이다. 말썽을 매일 일으키고 친구와 싸우기만 하는 학생들에게 교사의 마음이 제일 안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반대로 공부를 잘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는 학생들에게 더 마음이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내 경우에 반은 맞고 반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오히려 장난꾸러기들에게 마음을 더 쓰곤 하는 것 같다. 마음으로, 사랑으로 아이의 문제가 되는 행동을 바로잡도록 도와주어야겠다는 그런 마음까지는 아니지만 조금은 더 챙겨주고, 조금은 더 이야기를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이렇게 아이들과 지내면서 나의 에너지를, 나의 마음을, 나의 감정을 자유자재로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긍정적인 감정뿐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까지도 말이다. 나는 한 가지 신기한 조건을 찾아냈다. 아이들 중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항상 긍정적인 마음이 뿜어져 나오는 경우다. 그 학생이 좀 전까지 친구를 때리고, 싸우고, 욕하고, 수업에 부정적으로 참여하며 아무것도 열심히 하려고 하지 않는 아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바로 학교 밖에서 만나는 경우다. 학교 바깥에서는 그 어떤 아이들을 만나더라도 너무 반갑고, 너무 귀엽고,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학교에서 있었던 그러한 여러 감정의 연결선과 상황의 복잡함을 모두 떼어내고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노련한 교사라면, 조금 더 성숙한 교사라면 학교에서도 교실에서도 그러한 상태로 아이들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감정을 최소한으로 관여시키면서 아이들을 항상 긍정적이고 발전할 수 있는 존재들로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노련함과 성숙함을 가지고 싶다.
오늘 3교시에 화재대피훈련을 했다. 나는 방송업무를 맡아 여러 가지 방송 준비를 하러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 대신 체육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대피하고 여러 가지 교육을 해 주셨다. 방송실 큰 창문으로 우리 반 아이들이 대피하는 모습, 앉아서 여러 설명을 들으려 집중하는 모습을 보는데 뭔가 짠한 기분이 들었다. 좀 전까지 감정을 소모하게 했던 아이들이 맞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아이들이 정말 사랑스럽고 귀여웠다. 아 참, 그 당시 체육 선생님은 말을 안 듣고 여기저기 관련 없는 질문을 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려고 하는 아이들 때문에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고 한다.
정확히 의미를 나타내는 비유는 아니겠지만 문득 이 말이 생각났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찰리 채플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