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 중 우렁각시 이야기가 있다. 우렁이에서 나온 한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몰래 밥을 해 주고 간 이야기에서 비롯된 말이다. 아무도 모르게 좋은 일을 해 주는 사람을 우렁각시에 빗대어 표현하곤 한다. 이러한 우렁각시가 우리 반에도 있는 것 같다. 누군가를 위해서, 우리 반 전체를 위해서 누군가 좋은 일을 해 주고 있다.
나는 올해 3학년 담임을 하고 있는데 이 시기의 아이들은 대부분 인정받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들이 특별히 관심을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이 시기의 발달 단계를 살아가기에 원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자기가 어떤 좋은 행동을 하면 “선생님~ 제가 이거 했어요!”라며 칭찬을 바라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정말 기뻐하며 칭찬을 해 준다. 그래야만 아이들이 만족하고 본인이 한 행동에 대해 긍정적인 기억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점차 그러한 행동이 습관이 되고 더욱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아이들 사이에 우렁각시와 같은 도움의 손길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순서가 뒤죽박죽 섞여있던 클리어 파일들이 어느 한순간 번호순으로 주르륵 정리가 된다거나, 들쑥날쑥 꽂혀있던 학급문고 책들이 가지런히 정리되는 날이 있다. 칠판이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해지는 날이 있고, 내가 아니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분리수거함이 가벼워지는 날도 있다. 누군가 점차 이런 일들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행동을 보여주는 아이들은 두 가지 경우 중 하나일 것이다. 교실을 위해,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는 우리 공간을 위해 의도를 가지고 정리를 한 경우.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의도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무심결에 정리를 하게 된 경우다. 아이들은 무심결에 정말 많은 행동들을 한다. 책을 책꽂이에 가져다 놓다가 문득 선반 위에 얹혀있는 책 두 권을 보고는 끼워넣기로 한다. 별생각 없이 끼워 넣다 보니 뒤집혀 끼워진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온다. 그 책을 다시 뒤집어 넣으니 책들끼리 위치를 옮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몇 분 뒤 책꽂이의 책들은 높이별로, 색깔별로 가지런하게 정리가 된다.
그 순간 그 행동은 아이들이 “에휴. 책꽂이가 왜 이렇게 정리가 안 되어 있어. 내가 우리 반을 위해서 희생해야지 뭐. 정리 좀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며 한 것이 결코 아니다. 작은 행동이 이어지고, 또 다른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무심코 일어난 결과다. 그 순간 아이들은 책을 정리하는 그 과정을 하나의 놀이로, 미션으로, 퀘스트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하고 나면 뿌듯하다는 것 또한 스스로 느꼈을 것이다.
아이들이 정리하는 일을 놀이 삼아 느낄 수 있게 하려면 가장 쉬운 방법은 미션을 달성했을 때 보상을 제공하는 일이다. 하지만 매번 보상을 제공하고 대가를 주며 정리하도록 하는 것은 크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가장 만족스러운 정리의 대가로 다가오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그러한 보상 없이도 스스로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가끔은 나도 보면서 지나치는 것들이 많은데 우리 반의 누군가가 손수 정리를 하고 귀찮은 일을 맡아서 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교육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아이들의 발달 단계가 무슨 단계에서 무슨 단계로 올라갔다는 분석을 내어 줄 것이다. 나는 그냥 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고 표현하고 싶다. 3월 초에는 기대할 수 없었던 현상들이 학년 말이 다가오면서 서서히 드러난다. 함께 지내며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만큼 뿌듯하고 보람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성장하도록, 더 많은 아이들이 다음 학년을 준비하도록 나는 내 할 일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