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은 일 년에 몇 차례에 걸쳐서 자신의 수업을 공개해야 한다. 보통은 학부모들을 초대하여 교사의 수업과 아이들의 활동을 공개하는 학부모 공개수업을 한 차례 하고, 동료 교사들과 함께 수업을 서로 공개하고 연구하는 동료장학 공개수업을 한 두 차례 추가로 실시한다. 학교마다 실시하는 횟수가 다르긴 하지만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이상의 공개수업은 꼭 하게 된다고 보면 될 것이다.
나는 다음 주 금요일에 동료장학 공개수업이 예정되어 있다. 그래서 동료장학 공개수업에 대해 이야기를 조금 해 볼까 한다. 처음 내가 발령을 받았을 때 우리 학교는 조금은 특이한 방법으로 공개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모든 교사들이 2~3명씩 팀을 이루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그 팀마다 한 시간 분량의 수업을 공동으로 연구하여 결과를 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팀에서 대표 교사 한 명이 수업을 실제로 진행하는 것이다. 물론 사전, 사후 협의는 팀 이외에도 다양한 선생님들이 함께 참여하도록 하였다.
학년에서는 인접한 두 반씩 팀을 이루도록 하였다. 그리고 나는 담임이 아닌 교과전담 교사였기에 같은 교과 전담 선생님과 팀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누가 실제로 수업을 할지는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수업은 한 명이 하지만 공동으로 연구하고 준비하고 협의하는 과정이 있기에 팀원 모두가 수업을 하는 것으로 인정을 받았다. 따라서 암묵적인 규칙으로 저 경력 교사가 주로 공개수업을 진행했다. 물론 공개수업을 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듣고,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새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갈 수 있었지만, 더 노련한 선배 교사들의 수업을 보고 배울 기회 자체가 없다는 점은 조금은 불만스러웠다.
몇 해가 지나고서는 제도가 더욱 이상해졌다. 전 교사들 중 2급 정교사 자격을 가진 사람만 수업을 공개하라는 것이다. 교대를 졸업하고 임용시험을 통과하여 발령을 받으면 2급 정교사 자격증이 주어진다. 그리고 지역마다 다르지만 만 3년 이상을 근무하는 경우에 1급 정교사 자격을 받을 수 있다. 2급 정교사들은 아직 미숙하다는 이유로 수업을 공개해야 했다. 2급 정교사, 즉 저 경력 교사들이 교사로서의 경험을 쌓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필요하며, 수업을 운영하면서도 부족한 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형평성에서 큰 오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년 말에 교사들은 자신의 실적, 즉 교육활동을 평가한다. 정확한 수치를 통해 평가하기 때문에 공개수업 한 번, 두 번의 차이가 참 크다. 이 평가의 결과는 다음 해 초에 받게 될 성과상여급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다. 만약 2급 정교사만 한 번의 공개수업을 하고, 1급 정교사는 공개수업을 하지 않는다면 2급 정교사가 훨씬 높은 점수를 받게 될 것이다. 정말 그렇게 운영이 되었다면 대다수를 차지하는 1급 정교사들의 불만이 매우 컸을 것이다. 당연히 제도를 만들고 규칙을 정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것까지 생각을 해 두었던 것 같다. 2급 정교사가 학년의 모든 교사들, 교감, 교장을 비롯한 관리자들까지 지켜보는 와중에 수업을 한 번 하는 동안 1급 정교사는 원할 때 수업을 캠코더로 한 시간 촬영만 하면 됐다. 그것을 한 번의 공개수업으로 인정해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몇 해가 지나, 올해는 동료장학 공개수업 자체가 사실상 사라졌다. 모든 교사가 그냥 한 번의 수업을 캠코더로 스스로 촬영하여 보관하면 인정해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편하다. 몸도 편하고 마음도 편하다. 그냥 하던 수업을 그대로 이어서 하면 된다. 녹화한 자료를 어딘가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공개적으로 올려두는 것도 아니고, 행여나 올려둔다고 하더라도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수업을 찾아 볼만큼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며 깨닫고 배우고 더욱 성장하는 것처럼, 경력이 아주 많은 교사들도 경력이 적은 교사를 보며 배운다고 한다. 사람은 누군가를 보면 어떻게든 배울 점을 찾아 성장하는 것 같다. 그러한 기대로 동료장학 공개수업이라는 제도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수업을 보며 나를 한 번 돌아보고 반성하고 성장하도록 말이다. 이제는 틀어지고 틀어지고, 마지막 남은 부분까지도 전부 틀어져서 동료장학의 이름만 유지한 이상한 제도가 되었다. 적어도 우리 학교에서 말이다. 엄청나게 가슴 졸여가며 긴장하는 수업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이래도 되나 하는 찝찝함이 동시에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