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에 나는 처음으로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기능을 알게 되었다. 이어폰이나 헤드폰에 탑재되는 기술로 음악소리 이외의 바깥 소음을 들리지 않게 제거해주는 기술이라고 한다. 귀로 들어오는 소리의 파동과 정확하게 반대되는 파동을 들려주어 소음이 상쇄되어 사라지도록 하는 기술이라고만 이해하고 있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탑재한 이어폰이나 헤드셋은 대체로 가격이 비싸기에 직접 구매하여 사용해보지는 못했다. 다만 전시되어 있는 제품을 30초 정도 체험해보기만 했다.
노이즈 캔슬링이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그런 값비싼 제품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의 소음들과 여러 소리들이 마치 아무도 없는 듯 사라지는 그런 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주로 학교에서 그러한 기분이 종종 들곤 한다. 학교는 항상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상호작용을 하는 곳이다. 학생과 교사, 학부모와 여러 직원들이 함께 상호작용하면서 하루하루 지나 보내는 곳이다. 그러한 곳에서 근무하면서 아무도 없는 듯한 그러한 고요함을 원하는 나도 참 아이러니하기는 하다.
이러한 생각은 몸의 문제, 마음의 문제가 동시에 생겨버린 탓에 나타난 것 같다. 먼저 몸의 문제가 스스로 느껴질 만큼 크게 다가온다. 앞선 글에서도 이야기 한 적 있는 바로 청력 건강이다. 사실 청력 건강에 대해 인식하고 주의를 기울일 때만 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문제가 깊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조심해야겠다는 마음과 심각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을 한 지 두 달 정도 조금 넘었을 뿐인데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제는 더욱 깊고 폭넓은 문제 상황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음악을 들을 때 설정하는 볼륨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무언가를 질문할 때 “뭐라고?” 하며 되묻는 경우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전에도 종종 “응?”하며 되묻기는 했어도 대충의 내용을 파악하고 난 상태에서 정확한 디테일을 위해 물어보곤 했다. 요즘은 정말 전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알아듣기가 힘들어졌다. 이런저런 상황들이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겹쳐지다 보니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조만간 있을 건강검진에서 자세히 점검을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마음의 문제도 노이즈 캔슬링 생활을 원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곤 한다. 마음에는 여유가 없는데 수많은 소리들이 자꾸 들려오다 보니 곤란한 경우가 많아졌다. 조급해지고 답답해지고 마음속에서는 혼자 자꾸 싸우게 되었다. 그러한 마음의 문제는 몸의 문제로 드러나곤 하며, 가장 쉽게는 표정과 말투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드러낸 다음 바로 후회하게 될 나의 표정과 말투, 기분과 행동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마음의 여유를 찾을 때까지 복잡하고 번잡스러운 상황을 줄이고자 노이즈 캔슬링이 필요한 것 같다.
물론 학교에서 지내며 항상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착용한 채 수업을 할 수도, 회의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이 모두 떠나간 교실에서 방과 후에 혼자 마음을 정리하고 하루를 돌아볼 시간을 가지고 싶다. 그때만큼이라도 아무런 소음이 없는 텅 빈 우주와 같은 공간을 느끼고 싶다. 매일 소음 건강 기준치를 초과했다며 울려대는 알림 창을 마주하며 보낸 낮 시간을 조용하고 평온한 오후를 통해 다잡고 싶다. 노이즈 캔슬링이라는 새로 알게 된 낯선 기술 하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생활과 삶을 조금이나마 더 개선하고자 노력해보자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