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소중한 것을 빼놓고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다

by Trey


사람들은 저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대부분 지극히 개인적인 다양한 이유로 정해지는 것들이지만 힘닿는 데까지 지키고 싶은 것이라는 것만큼은 같을 것이다. 평소에도 문득문득 나에게 있어 소중한 것을 되돌아보려는 노력을 하곤 한다. 오늘은 학교에서 내가 소중하게 지키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보게 되었다.


나는 가장 소중한 것이 관계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장소인 만큼 학교에서는 모든 것이 관계로 구성된다. 우리 반 학생들과 나의 관계, 나와 학부모의 관계, 나와 동료 선생님들의 관계, 그리고 나와 관리자의 관계. 이밖에도 행정실과의 관계, 일을 하며 마주하는 여러 업체들과의 관계, 교육청과의 관계, 연구회에서의 관계 등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러니 관계를 소중히 하지 않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긴 하다.


이런 이유도 물론 무시할 수 없지만, 나는 그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이유로 누군가와의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곤 한다. 솔직히 그 이유를 정확하게 표현하라고 한다면 못할 것 같다. 드러나는 이유도 아니고 논리적인 이유도 아니다. 그냥 나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되도록 내가 마주하게 되는, 마주하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관계를 쌓아갈 토대를 만들고 싶어 한다. 아이들과 일 년 보내고 그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기회가 닿을 때까지 좋은 기억으로, 좋은 관계로 남아있고 싶은 그런 욕심이 있다. 함께 근무했던 선생님들과도 학교를 옮기면서 그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다시 만나 함께 근무할 때까지 좋은 기억과 돈독한 관계로 남아있고 싶은 그런 욕심이 든다.


관계라는 것이 소중하면 소중한 만큼 지키기에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관계를 쌓아가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관계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여차하면 흔들리고, 기울어지다가 멀어져 간다. 나는 지금 근무하는 이 학교에서 정말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온갖 추억을 몇 년째 함께 하는 아이들, 그 모든 순간에 힘이 되어주고 활력이 되어주었던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여차하면 흔들리고 기울어지다가 멀어지는 관계가 되기 싫어서 걱정이 많이 된다. 언제까지나 서로 좋은 추억을 되돌아볼 수 있는, 그러면서도 여전히 서로에게 힘이 되는 그런 관계로 이어지고 싶다.


반면 정 반대인 경우도 있다. 정말 속상하게 하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어떤 때보다 가까워지는 경우다. 지칠 만큼 지쳐서 그냥 흘려보내야겠다며 다짐했던 누군가와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변곡점으로 인해 급격히 회복되곤 한다. 그럴 때 이전에는 바라보지 못했던 그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의 새로운 모습 또한 함께 보게 되겠지만 말이다.


관계라는 것은 참 어렵다. 혼자서 잘하고 싶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싫다고 무작정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학교처럼 수많은 관계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공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몇 해 학교를 다니며 느낀 점은 그 어떤 사람과의 관계일지라도, 언젠가 그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볼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다.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는 신호탄이 되기도 하며, 둘 사이의 관계에 커다란 변곡이 일어나는 정점이 되기도 한다.


오늘 쉬는 시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연구실로 터덜터덜 향하고 있었다. 수업 시간 내내 큰 소리로 떠들기만 하고, 전혀 집중하지 않아서 속을 상하게 하는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이 걸어가는 내 손을 살포시 잡아주며 웃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오늘 또 하나의 관계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그 아이의 새로운 모습, 그리고 나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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