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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ey Jan 28. 2020

#5. 역시 라면은 태평양 상공에서

[1일차_인천]

긴 여행의 준비 끝, 오늘 드디어 집을 떠났다. 평소 같으면 5분 간격으로 설정해 둔 알람을 다 듣고서야 '슬슬 일어나야겠다'하는 생각을 했을 텐데 오늘은 첫 알람이 울리는 그 순간 몸이 먼저 벌떡 일어섰다. 예정되어 있는 알람들을 모두 해제하고는 바로 씻고 준비를 마쳤다.


혹시나 무언가 두고 가는 물건이 있지는 않은지 다시 살피고 또 살폈다. 평소 같으면 '에이 깜빡한 게 있으면 가서 사면 되지' 라거나 '두고 간 거 없다고 뭐 별 일이야 있겠어'라는 태도로 떠났겠지만 멀리 떠나는 터라 되도록 철저하게 준비하고 싶었다.


오늘은 공항 가는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기에 터미널로 가 버스에 올랐다. 출발과 동시에 극심한 멀미가 찾아왔다. 평소에 멀미를 잘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너무나 심하게 멀미가 났다. 잠을 제대로 깊게 못 잔 탓인지,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손발이 저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다행스럽게도 금세 잠이 들어버려 멀미를 오래 느끼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공항에 도착하여 친구를 기다리며 가장 먼저 한 것은 눈에 보이는 카페에 가서 시원한 마실거리를 하나 주문하는 것이었다. 속이 더부룩하고 머리가 어지러운 상태여서 시원한 음료가 생각났다. 바로 밀크티를 한 잔 주문하여 벌컥벌컥 들이켰다. 조금은 속이 진정되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차멀미 때문이겠거니 하며 넘겨보려 했다.


라운지에 들러서도 아무것도 거의 먹지 못했다. 속도 메스껍고, 한 끼도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냥 음료 몇 잔을 홀짝이다가 탑승을 하게 되었다. 다행히 휴식을 좀 취해서인지 몸 상태는 많이 나아졌다. 사실 오늘 비행기를 탑승하면서 목표는 ‘푹 자기’였다. 비행기는 오후 2시에 인천 국제공항을 출발한다. 그리고 10시간 정도 뒤,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하게 되는데 그때가 오전 8시쯤이다. 바로 새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푹 잠을 자지 않으면 아침부터 졸음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비행기에 타서 바로 나누어주는 기내식을 먹고는 바로 잠을 자려했다. 안대를 쓰고 이어폰을 끼고 잠을 잤다. 정말로 잠을 자기는 잤다. 한 20분 정도. 그리고는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었다. 주변의 사람들 또한 같은 상황인 듯했다. 눈은 아프고 몸은 피곤한데도 잠은 오지 않았다. 안대를 쓰고 눈을 감았다가도 어느새 화면으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런 행동을 수십 번 정도 반복하며 비행시간은 조금씩 흘러갔다.


그러는 와중에 주변 사람들이 컵라면을 먹는 것 같았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앞 쪽 어딘가에서 라면 향이 퍼져왔다. 실행력 빠른 사람들이 이곳저곳에서 라면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라면 향은 점점 더 강해졌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나도 버튼을 눌러 승무원에게 라면을 하나 주문했다. 평소에 먹던 작은 컵라면이지만 왠지 더 맛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문득 화면에 나온 지도에 눈이 갔다. 나는 대한민국과 미국의 딱 중간,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것도 시속 1040 킬로미터의 속도로 고도 11킬로미터 상공을 지나가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와, 익숙하지 않은 속도를 느끼며 맛보는 익숙한 맛. 역시 라면은 태평양 상공에서 먹는 것이 제맛인가 보다. 5시간 후면 다시 오늘 아침이 된다. 알찬 첫날을 위하여 라면도 든든하게 먹었겠다, 지금이라도 한 숨 꿀잠을 노려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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