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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렌드인사이트 Jul 09. 2019

외식업의 미래를 엿보다, 레귤러 식스 탐방기

로봇이 커피셔틀과 빵셔틀이 되어준다면?

 “나 때는 말이야~ 사람이 커피를 내렸다고~” 


    소위 말하는 ‘꼰대’ 같은 표현에 허언까지 더해져 불편하다고 느끼셨을 수 있겠다. 그럼 커피를 사람이 내리지 누가 내린단 말이야? 놀랍게도, 감히 이런 농담을 해볼 수 있는 공간이 국내에 생겼다.

레귤러 식스 내 까페 라운지 엑스의 전경

   강남 한복판에 미래형 레스토랑을 지향하는 공간 '레귤러 식스'가 오픈했다. 축산 유통 스타트업 '육그램'과 동명의 식당으로도 유명한 외식 기업 '월향'이 합작하여 먹거리가 모인 공간을 만들어냈다. 크게 한식을 기반으로 한 식당 4가지와 정육점, 커피를 판매하는 까페로 이뤄져 식사와 함께 담소까지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남N타워 지하 2층에 위치한 이 공간은 자그마치 '퓨처 레스토랑'을 지향한다. 이 공간이 ‘미래’형 공간으로 자신을 규정 지은 이유는, 각 공간과 기능에 최근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기술을 접목시켰기 때문이다.

    레귤러 식스는 외식업의 미래는 ‘테크’, 즉 기술에 있다는 슬로건을 전면에 내걸고 있다. 사람의 기술과 노동력이 주가 되던 식당이라는 공간에 기술을 접목시켰으니 자신들을 외식업의 미래로 규정지었을 만하다. 이 슬로건을 스스로 입증하기 위해 전체 공간과 식당 곳곳에는 미래 기술들이 자리잡고 있어,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간략하게 소개해보자면,

레귤러 식스 내부 안내도

결제에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했다. 레귤러 식스 내 모든 매장 결제는 암호 화폐를 통해 가능하다. 가상 화폐를 실제 현실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맛있게 밥을 먹고 난 후 순간 카드 결제는 안 받는게 아닐까 걱정했으나 기본적으로 현금 카드 결제로 가능하다. 겁먹지 않아도 된다.)

더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요즘 핫한 인공지능(AI) 기술을 도입했다. 식당 '산방돼지' 전면에는 전면이 유리로 된 저장고가 있다. 그 안에서는 AI가 고기를 숙성하고, 상추를 기른다.

이 구역에 단연 돋보이는 시그니처 기술은 로봇 바리스타이다. 라운지 엑스 카운터 전면에는 공장에서나 볼 법한 로봇 팔이 한 대 서있다. 커피로봇 ‘바리스’는 핸드 드립 커피를 내리는 로봇이다. 3가지 종류의 원두 중 하나를 선택해 주문하면, 해당 원두의 맛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제조한다.

오픈형 까페 ‘라운지 엑스’에서는 빵과 커피를 서빙 하는 귀여운 로봇 ‘빵셔틀’을 운영한다.


    이렇게 글로 나열만 해봐도 굉장히 멋있는 공간으로 느껴진다. 미래 과학 상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사람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아무래도 눈 앞으로 보이는 ‘로봇’의 존재인 것 같다. 바리스타 로봇에 대한 체험기를 들려주자, 주변에서는 놀랍다는 반응과 함께 반 농담조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그럼 정말 사람 일자리는 없어지는게 아냐?”

산방돼지 매장 앞에 위치한 저장고. AI가 고기를 숙성하고, 상추를 기른다

아쉽게도 레귤러 식스가 말하고자 하는 미래의 주연으로는 '사람'이 등장한다.

   레귤러 식스는 외식업의 모든 부분에 기술을 접목시키기보다, 사람이 하는 일과 기술이 하는 일을 구분하여 분류했다. 식당에서 행해지는 일 중 현장에서 고객에게 서비스하는 일 부분만을 떼어내고 바라보자.

              식재료의 수급/관리 –- 고객 접객  –-  주문 접수  –-  음식의 조리  –-  음식 서빙  –-  결제

라운지 엑스 내 바리스타 로봇 '바리스'

    이 중 레귤러 식스는 기술이 하는 영역을 식재료와 서빙, 결제 영역에 한정해 적용했다. 사실상 결제도 사람 직원을 통해 가능하다는 점으로 생각해본다면, 기술은 고객이 볼 수 없는 영역에 집중된 셈이다. 기술은 단지 인간을 보조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까페 라운지 엑스에 근무하고 있는 바리스타 로봇 ‘바리스’가 일하는 환경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바리스는 스스로 주문을 받지 않는다. 결제 카운터에서 사람 직원이 음료 주문과 원두의 추천을 진행한다. 바리스는 직원이 전달(입력)하는 주문 내역과 원두에 따라 일을 시작한다. 또한 바리스는 모든 커피를 제조하지 않는다. 에스프레소를 사용한 메뉴는 직원이 담당하며, 바리스는 드립 커피만을 담당한다.


    커피를 드립하는 방식 역시 바리스가 스스로 만들어낸 방식이 아니다. 사용하는 원두 종류에 따라 해당 원두의 맛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물의 온도, 양을 사람이 연구하여 고안했고, 그 방식을 알고리즘화 하여 바리스에게 학습시켰다. 바리스는 인간이 연구한 방법과 노하우를 그대로 재현하여, 생산하는 커피의 품질 차이가 나지 않도록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AI로 숙성하는 고기 역시 마찬가지로, 인간의 노하우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학습하고 있다. 이종근 육그램 대표 인터뷰에 따르면, AI는 실제 장인 여섯 명의 드라이 에이징 노하우를 학습했다고 한다. 목표는 실제 장인과 똑같은 수준으로 고기를 숙성 시키는 단계까지 끌어 올리는 것이라고 한다.

로봇 바리스타 '바리스'는 각 원두의 맛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드립 알고리즘을 학습하여 동작한다

    로봇이나 AI가 식당에 등장한 사례는 레귤러 식스의 사례가 처음이 아니다. 특히 중국에서는 접객, 서빙, 조리, 결제 영역에 이르기까지 로봇과 기술을 도입한 사례가 매년 쏟아지고 있다.

기존까지의 해외 사례들은 하나 같이 ‘생산성’에 집중해왔다. 더 정확하고 빠르게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거나, 많은 요리의 레시피를 기억하고 있다가 제한 시간 안에 더 많은 양의 주문을 처리할 수 있는 류의 로봇들 말이다. 이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접객을 더 많이 하고 사람보다 생산성을 높여 공급 단가를 낮추는 일이었다.


   ‘미래’를 지향하는 기업들이 하나같이 어느 한 구석이라도 사람보다 더 뛰어난 창조물을 등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레귤러 식스는 그런 사례들과는 접근을 달리 한다. 예를 들어, 앞서 자세히 소개한 바리스는 다양한 동작을 수행하며 커피를 한잔 내리는데 무려 4~5분이란 시간을 소요한다. 기존의 ‘기술’과 ‘로봇’에서 보는 패러다임에서 바리스를 본다면, 생산성이 떨어져 필요 없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심지어 라운지 엑스의 서빙 로봇은 빵셔틀은 무려 쉬는 시간까지 가지며 활동하지 않기도 한다.


   레귤러 식스에서 그리는 기술은 인간의 노하우를 오차 없이 복사하여 재생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도구의 역할을 한다. 사람이 아직 기술을 대면하기 불편한 영역인 접객이나, 손 맛, 즉 ‘노하우’가 필요한 조리의 영역에서는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역할을 다 한다. 기술과 사람이 함께 보조를 맞춰가며 전 서비스 영역을 연결해 나간다.

라운지 엑스 내 커피, 빵 서빙 로봇 '빵셔틀'. 당당하게 무려 휴식 중이라 한다

    그런 미래에서는 서비스의 어떤 단계에서 영역에서 기술이 도입되고, 사람이 도입되어야 하는지 판단과 설계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예를 들어, 까페 업종만을 두고 바라보자. 같은 까페 업종 내를 비교하여 보았을 때 사람들은 로봇 바리스타 바리스를 찾아 라운지 엑스를 찾아올까, 장인 정신을 내세워 사람이 하는 드립을 고집하는 블루보틀 커피를 찾아올까? 커피 맛에 대한 연구는 두 브랜드 모두 진행할 것이다. 어쩌면 제공되는 커피 양 전체를 보았을 때, 오차 없는 드립을 지향하는 바리스가 내리는 커피가 더 높은 품질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맛에 대한 연구’, ‘품질’ 이라는 포인트를 내걸었을 때 건조한 동작을 반복하는 로봇 바리스타를 사람보다 신뢰할 수 있을까?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어  산출된 결과물이 기존과 아주 뚜렷한 퀄리티의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면 이 신선한 충격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즉, 로봇 바리스타가  제 몫을 하기 위해선 ‘신기함’ 이라는 감정 이외 새로운 감정이나 가치를 불러 일으키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결국 생산성 면을 포기한다면, 기술이 주는 가치가 무엇일지 고민하고 어느 접점에서 고객과 어떤 모습으로 마주치게 할 지 고민하는, 고객 경험의 측면이 강하게 고민되어야할 것이다.


    분명 레귤러 식스는 외식업에서 기술이 적용되던 영역을 넓혀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 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과연 외식업의 미래는 생산성이나 품질보다 사람이 전면에서 우선되는 형태가 정답일까?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게 될 여지는 없을까? 미래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공간이었다. 필자가 경험한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싶다면, 실제로 방문하여 로봇이 대접하는 커피를 경험해 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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