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시공간 벗어나 ‘비일상’ 찾기
2022년을 돌아보는 네 번째 주제는 ‘휴식과 행복’이다.
팬데믹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사람들은 코로나19가 종식되는 것 대신 풍토병화 되는 ‘엔데믹(endemic)’ 시대로 접어들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일상에 서서히 적응해나가는 시간을 겪었다. 한 명 두 명,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SNS에 올린 사진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점차 열기가 가라앉는 투자 시장에 마음도 가라앉았으며 고금리·고물가의 여파로 소비도 줄였다. 완연한 회복 국면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2022년은 지난한 적응의 한해였다.
첫 번째 회고의 주제가 일상을 잘 살아내는 힘, ‘일상력’이었다면 마지막 주제는 사람들이 일상의 시공간을 탈피해 어떻게 휴식을 취하고 행복을 얻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말하자면, ‘일상 속 비일상 찾기’다. 우리의 일상을 크게 두 축으로 나눠 시간과 공간, 각각에서 소비자들이 어떻게 비일상을 발견했는지 1년을 돌아보자.
먼저 일상의 시간, ‘현재’를 탈피해 ‘과거’로부터 새로움을 찾는 ‘뉴트로(New-tro)’가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현재 3040 세대가 어린 시절 인기 높았던 만화 영화의 캐릭터들이 여러 가지 상품으로 재탄생해 등장했다. 그 대표 주자는 ‘돌아온 포켓몬스터’ 빵이었고 이어서 디지몬빵, 케로로빵 등 여러 인기 만화 캐릭터와 콜라보한 제품이 출시돼 소비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캐릭터만이 아니라 90년대 감성을 나타낼 수 있는 소재들이 다양하게 활용됐다. 대표적으로 식품기업 ‘팔도’에서는 복고풍에 잘 어울리는 ‘도시락’ 라면에 학습지 ‘빨간펜’과 협업해 ‘인생고사’ 이벤트를 진행했다. 어린 시절 빨간펜·눈높이·구몬 등 학습지를 한 번쯤 풀어본 경험이 있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이러한 이벤트는 반가우면서도 이색적인 시도로 느껴졌을 것이다.
식품뿐만 아니라 게임 영역에서도 옛 IP(지식재산권) 부활이 화두였다. 대표적으로 30주년을 맞이한 ‘대항해시대’ 시리즈, 온라인 버전 20주년을 맞이한 ‘라그나로크’와 같은 오래된 게임이 재탄생했다. 1990년대 크게 인기를 끌었던 ‘대항해시대’ 시리즈를 기반으로 만든 ‘대항해시대 오리진’은 원작의 느낌을 이어가면서도 모바일과 PC 간 교차 플레이를 지원한다거나 3D 그래픽 등을 활용해 이전보다 실감 나는 경험을 구현하는 등 시대변화에 맞춰 재해석됐다. 3040 세대의 관심에 힘입어 출시 당일에는 애플 앱스토어에서 인기 게임 순위 1위를, 출시 다음 날에는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인기 게임 순위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음원 시장 역시 복고 열풍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2012년 발표된 가수 성시경의 ‘너의 모든 순간’, 2013년 발표된 밴드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올해 다시 100위권 차트에 올랐는데, 두 곡 모두 2022년 상반기 동안만 1억 원 이상의 음원 수익을 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나아가 리메이크곡도 다수 인기차트에 등장했다. 멜론·지니·바이브 등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 8곳에서 상반기 동안 가장 많이 소비된 노래 톱100을 보면, 1위는 ‘취중고백(멜로망스 김민석)’으로 2005년 발표된 곡을 리메이크한 곡이었다. 3위에 오른 ‘사랑은 늘 도망가(임영웅)’ 역시 리메이크곡이다.
소비자들이 이처럼 과거의 감성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주요한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 변화가 극심하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나 팬데믹처럼 혼란 및 불안이 커지는 상황이 오면 사람들은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익숙하고 편안한 것, 즉 과거를 찾게 된다. 하지만 최근 뉴트로 트렌드에서 중요한 것은 그저 단순히 과거의 재현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존의 복고가 중·장년층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을 지칭했다면,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라는 다소 모순적인 단어의 조합이 뜻하는 바처럼 신선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예전 그대로가 아니라 요즘 감성을 곁들여 창의적인 해석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뉴트로는 편안함과 신선함이라는 모순된 욕망을 절묘하게 모두 충족시킬 수 있기에 상당히 오래 지속되는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일상 속 비일상을 찾는 두 번째 방법은 공간적 탈피다. 2022년 트렌드로 제안된 ‘러스틱 라이프’는 ‘rustic(시골풍의)’이라는 이름처럼 도시를 떠나 시골풍 라이프 스타일을 찾는 도시인들의 변화를 나타낸 키워드였다. 이 트렌드의 도화선이 된 것은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였다. 답답한 도시 공간을 벗어나 자연 공간을 찾거나 인적 드문 시골을 찾았던 사람들이 거리 두기가 끝난 이후에도 공간적 비일상을 찾아 수도권 근교, 지방 소도시, 자연과 맞닿은 산과 바닷가 등 다양한 공간적 경험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최근 수도권 근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초대형 카페는 사람들이 원하는 공간과 휴식을 반영하고 있다. 남한강 강변, 북한산 자락 등 도심에서 멀지 않지만 푸른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에 카페들이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여가 공간으로서 주는 경험도 중요해지면서 근교 지역에는 도심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탁 트인 공간에 더불어 갤러리를 함께 운영하거나 사진이 잘 나올 법한 독특한 식음료 메뉴를 시그니처로 밀고 있는 곳도 많아지고 있다.
더욱 본격적인 러스틱 라이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은 휴양지에서 근무를 이어가는 ‘워케이션(work+vacation)’을 즐기거나 특정 지역에서 장기간 머무르는 한 달 살기를 경험한다. 이러한 머물기형 러스틱 라이프에서도 새로운 경험을 찾는 소비자들의 변화가 나타났다. 멀티미디어 정보검색 시스템 개발회사 코난테크놀로지가 ‘워케이션’ 및 ‘한달살기’와 관련해 SNS 상의 주요 이슈어를 분석한 결과, 2021년 10월부터 2022년 6월 사이에 전년 대비 ‘남원’ ‘남해 ’ ‘양양’ 등 주요 관광 도시가 아닌 지역명이 20위권 내에 새롭게 등장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지방의 소도시에서 생활하며 일상적이지 않은 경험을 구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찾는 여가 생활, 그리고 소비가 집중되는 곳은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어줄 수 있는 ‘비일상’의 키워드로 귀결된다. 과거에는 일상으로부터 탈피한다는 것이 대단히 어렵게 마음먹고 벌여야 하는 일이었다. 예를 들자면 일 년 동안 준비해서 온갖 휴가를 그러모아 길게 떠나는 유럽 여행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여가에서 소비자들은 ‘일상화된 비일상’을 원한다. 먼 이국땅을 밟지 않고도 서울 시내 오래된 골목길을 찾아다니며 낯선 한국을 경험하고, 유튜브에서 간단히 '손품'을 팔아 지구 반대편의 생활을 간접 체험한다. 결국 일상과 비일상 간의 매끄러운 전환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본 내용은 국방일보 <병영에서 만나는 2022 트렌드>에 연재된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