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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윤 Mar 06. 2023

불황을 '관리'하는 소비자들

체리슈머 (상)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서 한동안 인기를 끈 품목이 있다. 

그것은 바로 ‘명품 빈티지 단추’이다. 

샤넬, 루이비통 등 누구나 들으면 아는 고가 브랜드 옷의 오래된 단추나 여분 단추를 직접 거래하기도 하고 리폼해서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로 만들어 팔기도 한다. 


이러한 빈티지 단추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낸다. 몇백만 원에 달하는 브랜드 정품 액세서리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명품의 브랜드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세상에 몇 개 없는 특별한 물건이라는 점, 게다가 ‘업사이클링(업+리사이클링)’이라는 의미도 있다.


소비자들은 흔히 자원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기만족을 누리고 싶을 때 작은 사치, 즉 ‘스몰 럭셔리’를 추구한다. 명품 가방이나 명품 옷을 사고 싶지만 여의치않으면 명품 지갑이나 명품 립스틱과 같이 규모를 줄여 가용한 예산 안에서 사치를 누리는 것이다. 명품 단추는 이러한 스몰 럭셔리에서 나아간, ‘타이니 럭셔리(tiny luxury)’라 부를 수 있다. 요즘의 소비자들은 이미 존재하는 제품을 고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필요한 만큼만 더 작은 단위로 쪼개어 효용을 취한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4분기 우리나라 민간 소비는 직전 분기보다 0.4% 감소했다. 가파르게 치솟은 금리와 물가의 영향으로 소비 심리가 급속도로 얼어붙은 것이다. 작은 사치는 바로 이러한 경기 침체 국면의 대표적인 양상이다. 경제 환경의 변화는 소비자들의 행동 패턴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최근 소비자들이 불황에 대처하는 구체적인 양상이 이전과는 달라졌다. 무조건 아끼고 싼 것을 고르며 상황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소비의 전략을 통해 상황을 극복한다.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이처럼 불황적응형이 아니라 불황관리형 소비자로 거듭난 소비자들을 ‘체리슈머(Cherry-sumer)’라 명명했다.


체리슈머라는 명칭은 ‘체리피커’에서 기원한다. 체리피커(cherry-picker)는 말 그대로 케이크 위에 올려진 하나뿐인 체리를 쏙 빼 먹는, 얌체 같은 사람을 의미한다. 소비자로 말하자면 가입 혜택만 챙기고 실제 구매 없이 사라지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런데 올해처럼 경기가 좋지 않은 시기에는 ‘체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체리는 결국 우리가 소비를 통해 얻고자 열망하는 알짜배기 효용을 의미한다. 현재 쓸 수 있는 자원이 줄어들고 미래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전략적으로  ‘체리’만 소비하는 소비자, ‘체리슈머(체리+컨슈머)’로 거듭난다.




체리슈머의 첫 번째 전략은 필요한 만큼만 양을 쪼개서 소비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채소를 필요한 만큼만 소분해 구매하는 것인데 흔히 마트에 가면 수박을 반으로 잘라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더 잘게 쪼개 판매한다. 한 번 먹을 분량 만큼만 잘라 판매하는 ‘나 혼자 수박’ 같은 상품도 등장했다. 아예 품종의 사이즈를 줄이기도 하는데 스낵 오이, 방울 양배추, 미니 단호박 등 미니 사이즈 상품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


빠른 시간 내에 소비해야 하는 신선식품만이 아니다. 편의점 브랜드 CU는 ‘와인 반병 까쇼’라는 소주병 사이즈 와인을 출시했고, 하이트진로는 기존 350mL 제품보다 작은 240mL ‘하이트제로 0.00’ 제품을 출시했다. 밥에서는 ‘쁘띠컵밥’이 등장했다. 기존 도시락 중량의 절반 정도로 줄이고 가격도 김밥 한 줄 정도로 저렴하게 만들어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콘셉트다. GS리테일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상품명에 ‘미니’ ‘쁘띠’가 들어간 상품 개수는 2020년 63종에서 2022년 99종으로 57% 증가했고 매출도 같은 기간 42% 증가했다고 한다.


이처럼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 있는 단위가 작아지는 것은 사람들의 식사량 자체가 줄고 남은 음식이나 폐기물을 줄이고자 하는 니즈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원을 쪼개어 사용함으로써 더욱 다양한 경험에 자원을 분산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지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대형마트에서는 대체로 병 단위로 와인을 판매해왔지만 최근에는 ‘보틀벙커’처럼 잔 단위로 원하는 만큼만 와인을 구매할 수 있는 곳도 생겼다. 이를 통해 다양한 와인을 조금씩 즐길 수도 있고 비싸서 한 병을 사기는 부담스러운 와인에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체리슈머의 두 번째 전략은 비용을 줄이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짠테크’가 다시 호응을 얻으면서 각종 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는 방법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유되고 있다. 그중 하나로 ‘가스앱’은 퀴즈를 풀거나 광고 시청 등으로 가스 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어 인기를 얻기도 했다.


비용을 아끼는 또 다른 방법으로 공동 구매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몇 개의 공동구매 플랫폼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올웨이즈’라는 앱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 콘셉트로 가격을 낮추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친구를 초대해 2인 이상 ‘팀구매’를 하면 최저가로 구매할 수 있다.



비용을 나눠 내는 방법도 있다. 배달비는 사람들이 가장 아끼고 싶어 하는 비용 중에 하나다. 지역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동네 주민끼리 공동구매를 해서 배송비를 아끼자는 글도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대학생들의 경우에는 배달음식을 시킬 때 1인당 배달비를 낮추기 위해 여러 명을 모아 주문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매번 사람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배달앱 ‘배달긱’은 이러한 니즈를 서비스화한 플랫폼이다. 학내에 음식 픽업 시간과 장소가 몇 개 정해져 있어 자신이 원하는 곳에 신청해 놓고 각자 음식을 찾아갈 수 있다. 메뉴를 통일할 필요도 없고 배달비를 아낄 수 있어 주머니 사정에 도움이 된다.



~ (하)편에서 이어집니다 ~



본 내용은 필자가 국방일보에서 연재하는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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