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빅뱅 (하)
‘인사(人事)’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무엇인가?
흔히 조직에서는 ‘관리’ ‘평가’라는 단어를 자연스레 연상하게 된다.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 볼 때, 인사는 ‘사람에 관한 일’이라는 뜻이지만 이제까지 조직에서 사람은 관리하고 생산성을 평가해야 하는 대상으로, 즉 인적 자원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삼성전자에서 인사 관련 부서 이름을 ‘피플팀’으로 바꿨다 한다. 피플(people)도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니 근본적인 의미에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조직 구성원을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를 주겠다는 기업의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글(오피스 빅뱅-上)에서 개인 차원에서 일어나는 오피스 빅뱅을 조명했다. 일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가치관을 가진 세대가 새로운 구성원으로 유입되면서 조직 차원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먼저 기업들의 변화는 ‘어떻게 좋은 인재를 데려올 것인가’ 혹은 '어떻게 인재들이 떠나지않게 할 것인가' 에 대한 노력에서 시작된다.
첫 번째 방법은 금전적 보상을 높여보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회사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연봉이 높으면 ‘금융치료’가 된다고 하듯이 이는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년동안 우수한 개발자를 데려오기 위해 한 게임사에서 높은 연봉을 내건 이후로 게임사 뿐만 아니라 타업종의 IT기업까지 연봉 경쟁이 확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전략은 기존 구성원과의 형평성 문제나 다른 직군의 사기 저하 문제를 고려해야 했고 장기적으로 기업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져 오래 갈 수 없었다.
대신 취하는 두 번째 방법은 복지를 향상하는 것이다. 임직원을 세심하게 챙기는 복지가 좋은 기업의 필수 요건처럼 여겨지면서 최근에는 ‘B2E’ 시장이 주목받고 있다. 기업이 기업을 상대로 하는 비즈니스를 ‘B2B(Business to Business)’, 개인 소비자를 대상으로 할 경우 ‘B2C(Business to Consumer)’라 부르듯이 기업이 내부고객, 즉 임직원에게 제공하는 상품 및 서비스를 ‘B2E(Business to Employee)’ 라 부른다.
B2E 서비스 기업인 ‘위펀’은 사무실 간식을 정기적으로 채워주는 구독서비스 ‘스낵24’, 임직원의 생일 등 기념일을 대신 챙겨주는 ‘생일·선물24’ 등을 운영한다. 위펀은 2021년 180억 원 매출을 올렸으며 2022년에는 1~3분기만으로도 매출액 330억 원으로 4분기까지 합산하면 2배 이상의 성장이 예상된다.
임직원의 정신건강을 챙겨주는 서비스도 있다. 멘털케어 구독서비스 ‘트로스트케어(Trost Care)’는 서비스를 신청한 고객사 임직원들에게 일대일 심리상담, AI(인공지능) 심리진단, 명상 콘텐츠 등 300여 편의 사운드세러피 등을 제공한다.
근무 형태의 변화도 구성원들의 복지 향상에 기여한다.
2022년 하반기부터 대부분의 기업이 재택근무, 원격근무 체제에서 다시 사무실 근무로 복귀했다. 하지만 일부 기업에서는 하이브리드 근무제도를 도입해 실험을 이어 나가고 있다. 네이버의 경우 지난해 7월부터 임직원들이 직접 본인의 근무형태를 선택할 수 있게 했다. ‘Type O(Office)’는 주3일 이상 사무실에 출근하는 근무형태이고 ‘Type R(Remote)’은 원격 기반 근무형태인데 직원들은 6개월에 한 번씩 근무형태를 선택하게 된다. 일하기 좋은 환경을 위해서라면 각자 더 적합한 근무형태를 정하는 자율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기업의 탈바꿈은 공간의 변화로도 나타난다. ‘배달의 민족’ 서비스를 운영하는 ‘우아한 형제들’의 신사옥 이야기가 흥미롭다. '더큰집'이라는 이름의 이 사옥에는 화상회의룸이 조성돼 있는데 화상회의할 때 화면에 비치는 모습까지 고려해 설계한 것이 특징이다. 얼굴에 그림자가 지지 않도록 천장에 직접 조명을 설치하지 않았고 화사한 분위기가 나도록 가구도 신경 썼다고 한다. 공간적 환경이 구성원 간 소통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구성원을 지향하는 조직문화가 떠오르면서 독특한 운영방식을 가진 조직문화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예를 들어 이름부터 젊은 문화를 풍기는 ‘대학내일’은 조직 구성원들이 직접 3년에 한 번 대표이사를 선출하며, 일정 기간 근무하면 회사의 주주가 될 수 있는 ‘사원 주주 제도’도 운영한다. 모든 구성원이 일개 직원이 아니라 회사의 주인이라는 '주인의식'을 말 그대로 보여준다 하겠다.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새로운 조직문화의 바람은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몸집이 큰 대기업에도 불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조직의 지향점 자체가 시스템에서 구성원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조직 제도에 중요한 것은 어떤 구성원이 들어와도 조직문화를 해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었다. 무게 중심이 개인보다 조직에 있었으며 개인이 조직에 맞추는 것이 당연했다. 반면 현재 시스템의 역할은 각기 다른 구성원들이 서로 조화되어 각자의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시스템 우선의 조직문화는 산업혁명 이래 지속되어 온 테일러리즘(Taylorism), 즉 표준화라는 시대 가치로부터 발원했다. 하지만 대량생산의 시대가 가고 맞춤화·개별화가 새로운 시장의 원칙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혁신이 가속화하며 생존을 위해서는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조직의 운영방식이 이전과 같을 수 없는 것이다.
오피스 빅뱅은 이제 막 시작됐다. 조직문화라는 것은 사람으로 치자면 ‘체질’과 같은 것이다. 몇 번의 식단 변화로 사람의 체질을 바꿀 수 없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일괄적인 처방도 존재하지 않기 마련이다. 조직도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어떤 제도를 시행하는 것'과 같이 피상적인 처방으로 당장 문화를 바꾸기는 어렵다. 또한 조직마다 다른 색깔을 갖고 있어 다른 조직의 성공사례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조직의 체질을 진단하고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한다면 어느샌가 유연하고 건강한 오피스로 거듭날 것이라 기대한다.
본 내용은 필자가 국방일보에서 연재하는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