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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윤 Mar 19. 2023

'체리슈머'가 늘어나는 이유

체리슈머 (하)

경기가 안 좋아지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줄이는 지출이 무엇일까?


아마도 일단 지출 내역을 들여다 볼 것이다. 그리고 계획에 없었던 충동 소비를 줄이겠다 마음먹을 것이다. 이를 변동 지출 조정이라 부를 수 있다.

다음으로는 고정 지출을 검토한다. 이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구독 서비스다. 식비나 주거비는 생활에 꼭 필요하므로 줄이기 어렵지만,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꽃·그림 등 취향 관련 구독 서비스에 지출되는 비용은 다른 곳에 사용할 수 없을까 방도를 생각하게 된다.



지난번 글에서 체리슈머는 불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주어진 자원 내에서 알뜰살뜰 소비하려는 체리슈머들은 매달 구독 비용에 돈을 묶어두기보다 자유롭게 활용하기를 원한다. 어렵게 표현하자면, 구독이라는 계약을 유연화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첫 번째로 할 수 있는 것은 필요한 만큼만 서비스를 이용하며 구독 기간을 줄이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OTT 계정 공유’다. 이제까지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플러스 등 콘텐츠를 이용하려고 가입하는 서비스에서 구독비를 아끼기 위해 사람들이 취했던 방식은 하나의 계정을 여러 명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기에서 나아가 계정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원하는 기간 만큼만 구독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구독 서비스를 일 단위로 이용할 수 있도록 이용권을 재판매하는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러한 서비스에 대해 적법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 것은 유의할 점이다.



장기계약을 바라보는 소비자 시각이 변화하면서 장기 상품의 대표 격인 보험도 변화하고 있다. 먼 미래에 대비하기보다 지금 당장 예측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만 비용을 지불하고, 손에 잡히는 혜택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미니보험이 인기를 얻고 있다. 자동차를 탄 만큼만 보험료를 낸다는 개념의 ‘퍼마일 자동차 보험’이 인기를 끌면서 최근에는 주행할 시간만큼만 보험료를 낸다는 ‘퍼아워 자동차 보험’도 확대됐다.



취향형 구독 서비스에서는 소비자들에게 선택 재량을 주는 방식으로 계약을 유연화하고 있다. 술 구독 서비스인 ‘술담화’는 배송받기를 원하지 않을 때 ‘쉬어가기’를 매우 편하게 만들어둠으로써 심리적 부담을 덜어준다. 이것은 두 가지 효과가 있다. 처음 서비스에 가입할 때 부담 없이 가입할 수 있고, 잠시 이용을 중단하게 됐을 때는 쉽게 서비스로 돌아올 수 있다.



홈카페족이 많이 이용하는 원두 배송 서비스인 ‘브라운백 커피’는 구독인 듯 구독 아닌 쿠폰 서비스를 운영한다. 예를 들어 무료 배송 3회 쿠폰을 5000원에 판매하는데, 6개월이라는 유효기간 아무 때나 쓸 수 있다. 정기적으로 원두를 구매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건당 배송비를 33% 절약하는 효과가 있으면서도 일정한 주기에 맞춰 구독해야 한다는 부담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러한 체리슈머 트렌드를 이해하기 위해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거시·미시 환경이 다양하게 작용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불황이라는 경제환경의 변화다. 고금리와 고물가는 소비 심리 위축에 직접적으로 작용한다. 시장에 갔을 때 동일한 금액으로 장바구니에 담을 수 있는 물건이 적어졌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다.


그뿐만 아니라 체리슈머는 인구구조 변화와도 관련이 깊다. 1인 가구가 많아지면서 모든 소비의 단위가 작아지다 보니 수박도, 음료도 필요한 만큼만 적게 사야 한다. 더욱이 가구원 수가 적을수록 1인당 생활비는 올라가기 때문에 1인 소비자들이 쓸 수 있는 예산도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대와 세대의 변화일 것이다. 경제에는 주기가 존재해 다시 호황기가 돌아올 것이지만, 사회의 변화는 과거로 회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시대를 살펴보면 소비가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 매력적인 상품도 많고, 재미있는 콘텐츠도 많고, 한 끼를 사 먹을 때조차 탐나는 선택지가 넘쳐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욕망을 채우기에 자원이 항상 제한적이다. 더욱이 풍요 속에 성장한 사람들에게 소비를 무조건 절제하는 것도 정답이 아니다.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해 주어진 자원을 가능한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포착할 수 있는 변화는 고도화된 소비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변화다. 2022년 상반기에 ‘피자헛 공짜로 먹기’ 이벤트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해당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상화폐 거래소에 아이디가 있어야 하고, 구매할 수 있는 권한을 얻더라도 매장마다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이 달라 0원에 주문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성공했다며 인증샷과 함께 게임 공략집처럼 참여 노하우를 정리·공유했다. 넘처나는 정보와 갈수록 복잡해지는 소비 방법 속에서 소비는 하나의 게임이 되는 것이다.







체리슈머가 기업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체리슈머는 한정된 자원으로 슬기롭게 욕망과 충족이라는 퍼즐을 짜 맞추는 소비자들이다. 단순히 저렴한 상품을 찾는 것이 아니라 단위당 가격이 높은 사치품이더라도 그만한 가치를 얻을 수 있다면 규모를 줄여서라도 소비할 수 있다. 생산자와 판매자는 소비자들이 과거처럼 시장의 약자가 아니라 매우 똑똑해졌음을 받아들이고, 해당 구매가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 것인지 체리슈머를 설득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마케팅을 통해 혜택을 많이 주고,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를 열면 무조건 소비자들이 많이 찾아오는 만큼 매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도 유의해야 한다. 제대로 값어치를 소구하지 못하면 진짜 체리피커처럼 혜택은 챙겨가지만, 실제 구매로 이어가지 않는 소비자만 남을 것이다. 마케팅은 단순히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의 매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돼야 한다.



체리슈머들도 주의할 점이 있다. 똑똑한 소비는 어디까지나 소비자로서의 매너를 지키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소비라는 핑계로 취하는 우회 전략들이 때로는 생산자 또는 판매자에게 손실로 돌아간다. 그렇게 되면 결국 상품과 서비스 가격에 손실이 반영되어 소비자 모두의 비용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소비자의 힘이 강해지는 만큼 시장의 일원으로서 가져야 할 소비자의 책임 또한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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