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정윤 Mar 29. 2023

요즘 사람들의 관계 관리

인덱스 관계

‘페친’ ‘인친’ ‘트친’. 이러한 단어는 이제 낯설지 않은 줄임말이 됐다. 각각 ‘페이스북 친구’ ‘인스타그램 친구’ ‘트위터 친구’를 의미하는데 이런 온라인 상의 친구가 많아지다 보니 이에 대비한 ‘실친’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실제 (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는) 친구’를 뜻한다.



생각해 보면 SNS는 오프라인에서 맺은 관계의 소통을 확장하거나 관계를 지속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존재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오프라인의 관계, 즉 실친과는 무관하게 SNS에서 처음 알게 돼 친구가 되기도 하고 SNS 친구 중에 정말 마음이 잘 맞는 사람이 있다면 그 관계를 오프라인으로 확장한다. 또한 페친·인친·트친은 각기 다른 목적으로 관계가 형성된다. 예를 들어 페친은 최신 뉴스를 알기 위해 맺는 친구, 인친은 요즘 유행하는 맛집이나 여행지 등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는 식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사회적 관계는 색색의 인덱스(index·색인)를 붙여 분류할 만큼 다양하게 분화되고 인덱스를 떼었다 붙었다 하듯이 내 마음대로 관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변화된 관계의 양상을 ‘인덱스 관계’라 명명할 수 있겠다. 인덱스 관계의 특성을 크게 3가지 단계, 관계 맺기-관계 관리하기-관계 정리하기 순으로 살펴보자.

 



먼저, 관계 맺기 단계에서는 필요에 따라 관계를 취사선택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오랫동안 인간관계는 동네 친구, 같은 학급 친구, 입사 동기 등 처한 환경에서 우연히 인연이 된 사람들로 이뤄졌다. 또한 한 번 관계가 형성된 사람들과 학업·업무·식사·여가 활동까지 많은 것을 함께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같은 반 친구라도 각자 좋아하는 아이돌이 다르고 직장에서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라도 업무와 관련된 생활을 공유할 뿐 사생활을 공개하는 것에 조심스럽다. 대신 온라인을 통해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익명을 기반으로 자기 생각을 온전히 드러낸다.


특정 주제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오픈채팅방을 사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카카오톡이 제공하는 오픈채팅방 기능을 살펴보면 현재 사용자들에게 인기 있는 키워드가 표시된다. 예를 들어 ‘일타스캔들’ 같은 최근 인기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나 ‘대입 공채’ 같은 관심 주제, 혹은 ‘20대’처럼 연령대가 채팅방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한 기사에서는 이 목록에 ‘60대’가 등장한 것을 조명하기도 했는데, 오픈채팅방 참여자의 신상 정보를 알 수는 없지만 60대를 위한 채팅방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용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것이다. 관심사 기반의 온라인 커뮤니티가 이미 전 세대 문화로 확산됐음을 알 수 있다.


관계의 취사선택은 데이팅 시장에서도 나타난다. 일명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에 대비되는 ‘인만추(인위적인 만남 추구)’로도 나타난다. 예전부터 소개팅이라는 인만추는 존재했지만 최근에는 주선자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원하는 이성의 특성을 고를 수 있는 데이팅 앱이 인기를 얻고 있다. 외모·취향·학력·자산 등 서비스마다 내세우는 매칭 기준도 가지각색이다. 




두 번째, 관계 관리 단계에서는 명확한 거리 설정이 특징적이다. 과거에는 상대방과 내가 친한지, 안 친한지 정도는 본인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모호한 것이었다. 얼마나 자주 만나는지, 혹은 경조사가 생겼을 때 축의금을 얼마 내는지 정도가 서로의 거리를 확인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심리적 거리에 따라 상대에게 노출하는 나의 얼굴을 결정할 수 있다. SNS 게시물에 공개 범위를 설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카카오톡에서도 멀티 프로필 기능을 설정하면 된다. 프로필 사진과 상태 메시지를 여러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 가장 친한 집단부터 나의 상태를 알리고 싶지 않은 집단까지 각기 다른 프로필을 보여주는 것이다.


Z세대 사이에서 한동안 유행했다는 SNS 앱을 살펴보면 가장 친한 관계에서 주고받는 상호작용도 다르다. 함께하는 시간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도 실시간으로 나의 상태를 공유한다. 위치 공유 서비스 ‘젠리’의 경우, 지도상에 친구들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표시된다. 나를 제외하고 다른 친구들끼리 모여 있다면 불꽃으로 표현되는데 내 집단으로부터 소외되는 공포, 즉 ‘FOMO(Fear of Missing Out·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를 저격한 서비스라고도 할 수 있다.

 



관계의 거리 설정은 자연스럽게 인덱스 관계에서 나타나는 세 번째 특징, 관계 정리하기 단계로 이어진다. 개인차는 있지만 SNS에서는 수백에서 수천 명까지 팔로잉 관계를 맺는다. 그렇다 보니 때로는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고 친구 목록을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됐던 ‘본디’라는 서비스는 과도한 SNS 관계 맺기에 대한 반작용에 해당한다. 본디는 메타버스 공간에서 나를 표현하는 아바타를 만들고 나만의 방을 꾸밀 수 있는 서비스이다. 독특한 점은 여기에 초대할 수 있는 사람이 최대 50명으로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기존의 관계들을 끊기는 어렵지만 나를 드러내고 싶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차별화된 관계를 더하는 모습이다.



 
인덱스 관계 키워드를 통해 살펴본 우리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변화는 여러 시사점을 던진다. 


먼저 산업적으로 적용해 볼 점이 있다. 관심사 기반의 온라인 소통이 더욱 중요해지면서 취향·취미 관련 서비스 영역에서는 비슷한 소비자들 간에 소통할 수 있는 기능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스포츠 중계를 시청하거나 뉴스를 확인할 수 있는 네이버 스포츠 서비스에서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함께 경기를 시청하며 실시간 댓글로 소통하는 것을 즐긴다는 점에 착안해 최대 1000명까지 입장 가능한 팀별 채팅 서비스 ‘오픈톡’을 시작했다.


나아가 세대 간 소통의 문제는 주목해봐야 할 부분이다. SNS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온 지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사회의 관계가 인덱스 관계로 질적인 변화를 겪은 것에는 코로나19가 중요한 계기가 됐다. 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오프라인 관계가 제한되다 보니 온라인상의 소통이 더욱 중요해진 것이다.


특히 ‘코로나 세대’ 또는 ‘코로나 학번’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이때 학교생활 혹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형태의 관계 맺기를 받아들인 편이다.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변화한 것이지만 사회적 관계에 대한 태도나 소통 문화 자체에 조금씩 차이가 발생한다. 이제 다양한 세대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세대 간 소통 방식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적 과제가 됐다.




본 내용은 필자가 국방일보에서 연재하는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체리슈머'가 늘어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