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세대 (상)
2018년 영국에서는 생후 18개월 된 아기가 말을 배우는 시점에서 ‘엄마’보다 ‘알렉사’라는 단어를 먼저 익혔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다. ‘알렉사’는 다름 아닌 인공지능(AI) 스피커의 이름이다.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겨우 말을 뗀 어린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지니야, TV 틀어 줘!”라며 AI 스피커를 호출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음성형 AI와 어색함 없이 대화하는 아이들, 바로 ‘알파세대’의 등장이다.
알파세대는 2010년 이후 출생자를 이르는 말로, 그 세대의 경계는 아직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으나 현재 초등학생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중심층이다. 이들의 전(前) 세대는 Z세대인데 ‘X세대-Y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로 세대 명칭에서 알파벳 순서가 끝났다. 이에 따라 다음 세대는 그리스 알파벳의 첫 자모인 알파(α)로 명명됐다.
이뿐만 아니라 알파는 알파걸·알파맘·알파메일 등 ‘탁월함’을 의미할 때 사용한다. 알파세대의 정보기술 활용력과 다양한 교육에 힘입은 유능함을 고려한다면 잘 어울리는 세대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세대 특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정체성과 세계관이 어느 정도 굳어지는 청년기 이후 가능한 일이다. 현 알파세대도 코로나19 사태를 비롯해 성장과정에서 겪는 경험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장시간이 흐른 후 파악이 가능할 것이며, 세대 경계 또한 한 번 더 세분화될 가능성도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알파세대에 주목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로는 시대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알파세대는 부모조차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매우 다른 성장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이 태어난 시점만 봐도 알 수 있다. 2010년은 스마트폰이 급속히 확산될 무렵이다. 알파세대 아이들은 아날로그를 경험하지 못한 첫 세대로 전화의 수화기 모양을 낯설어한다. 이러한 미래 세대가 살아갈 사회를 준비한다는 의미에서 알파세대를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뿐만 아니라 알파세대는 굉장히 이른 나이에 소비 주체화될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으로 구매력을 갖게 되는 것은 소득이 생기는 20대 중반부터이고, 소비자로서의 주체성이 뚜렷해지는 시기는 자아정체성이 강해지는 청소년기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알파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고도화된 소비사회를 경험하고 자녀의 의사를 최우선시하는 부모 아래 가정에서 소비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이 대단하다.
시장에서 주목하는 알파세대 소비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특성을 지녔을까? 알파세대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특성은 이들이 ‘주인공 정체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지금의 기성세대라면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라는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TV에 출연한다는 것은 상상 속 일이었고, 당시 아이들은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것보다는 시청자에 해당했다. 하지만 알파세대는 실제로 화면 속 주인공이 된다. 틱톡을 켜고 자신을 뽐내는 영상을 촬영하고 유튜브 채널의 주인이 돼 구독자를 모으기도 한다. 주변에서 사진을 찍자며 카메라를 들이대면 스스럼없이 포즈를 취할 만큼 촬영에도 익숙하다.
무엇보다 가족 환경이 알파세대를 주인공으로 만든다. 이들은 말 그대로 집에서 ‘귀한 자식'이다. 흔히 ‘MZ세대’로 부르는 현재 청년층도 비교적 풍족해진 한국 사회에서 귀하게 자랐으나 인구수를 비교해 보면 알파세대를 향한 주목도가 남다르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90년의 경우 한 해 65만 명에 조금 못 미치는 수의 아이가 태어났고, 2000년의 경우엔 큰 차이 없이 약 64만 명이 태어났다. 반면 알파세대의 문을 여는 2010년생은 47만 명이 태어났고, 이후 출생아 수가 급격히 감소해 2020년생의 경우 27만 명이 태어났다.
이처럼 자녀 수가 줄어들면서 온 집안 어른이 아이 1명만 바라보고 있는 것을 ‘식스포켓(6 pockets)’, 나아가 ‘에잇(8)포켓’ ‘텐(10)포켓’이라고 표현한다. 부모와 친조부모, 외조부모까지 6명의 주머니가 한 아이에게 열리고, 여기에 자녀가 없는 이모·삼촌들이 가세하면 주머니가 8개, 10개가 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유아·아동 인구를 타깃으로 하는 시장은 구조적 변화를 겪고 있다. 인구는 줄어들지만 1인당 소비금액이 증가하면서 상품과 서비스가 프리미엄화되는 것이다.
두 번째 특성은 알파세대가 ‘디지털 아키텍트’라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알파세대는 태어난 이래 자연스럽게 스마트기기를 다루다 보니 ‘디지털 네이티브(natives·원주민)’인 건 물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주어진 걸 활용하는 것을 넘어 참여하고 직접 세계를 만들어 가는 ‘아키텍트(architect·건축가)’가 된다.
그 중심에는 코딩 교육의 영향이 있다. 알파세대의 기본 과목은 ‘국·영·수’에서 나아가 ‘국·영·수-코’가 됐다고 할 정도로 코딩 교육에 대한 열기가 뜨거운 상태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2022 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내년부터 초등학교 1, 2학년을 시작으로 소프트웨어(SW)·AI 교육을 필수화했고 이를 포함한 ‘정보’ 교과의 시수를 현행 대비 2배 이상으로 늘렸다.
메타버스 플랫폼 ‘로블록스’의 사용자 50% 이상이 알파세대라는 조사 결과도 알파세대의 디지털 아키텍트로서의 면모를 드러낸다. 로블록스는 직접 게임세상을 만들고 친구를 초대하거나 친구가 만든 게임세계에 놀러가 함께 플레이할 수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알파세대는 게임을 스스로 설계한다는 점에서 로블록스에 흥미를 느끼는데, 알파세대의 부모 또한 이를 단순한 게임으로 보지 않고 교육적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편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알파세대에 가상공간이 갖는 의미로 이어진다. 상당수의 아이가 처음 가정을 떠나 학교에 입학하는 시점에 줌으로 수업을 들었고 메타버스에서 친구들을 사귀었다. 마치 동네 놀이터에서 처음 보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과 같이 알파세대 아이들은 온라인 친구와 오프라인 친구를 구분 짓지 않고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세계를 경험한다.
항상 현실세계에 대비해 가상공간이 갖는 경쟁력이나 대체 가능성을 논하는 어른들과 달리 자연스럽게 메타버스를 확장된 세계로 인식하는 알파세대가 성장함에 따라 메타버스 시장은 필연적으로 우리 삶 속에서 커질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도 있다.
- 알파세대 (하) 편에서 이어집니다.
본 내용은 필자가 국방일보에서 연재하는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글을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