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적 대응기술
첫 문장 쓰기 어려우시죠?
글을 쓸 일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길이 갈 만한 문구다.
위 문구는 글 쓰는 일이 잦은 마케터를 타깃팅한 광고문구였다. 주제어만 입력하면 매력적인 첫 문장을 제안해주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작문 서비스를 홍보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인공지능이라 해도 명확한 지시가 있어야 프로그래밍된 작업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현재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먼저 제안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인류는 글쓰는 것만이 아니라, 일상의 많은 것을 대행하도록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예를 들어, 빨래라는 노동을 대신하기 위해 세탁기를 개발했고, 이후에는 세탁한 빨랫감을 꺼내서 널어주는 노동을 줄이기 위해 건조기가 발전했다. 이제 사람들은 ‘건조된 빨랫감을 서랍에 알아서 정리해주는 로봇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한다. 인간을 둘러싼 기술환경은 점차 많은 것을 ‘알아서’ 처리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바로 ‘선제적 대응기술(proactive technology)’의 등장이다.
‘선제적 대응기술’은 이름 그대로,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기에 앞서서 적극적으로 조치가 일어나는 기술이다. 기술이란 전등과 같이 단순한 것부터 스마트폰처럼 첨단기술에 이르기까지 사용자가 필요성을 ‘인지’하고 기술 혹은 도구를 ‘작동’시키는 행위를 취해야 그 ‘결과’로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술의 프로세스는 이제 사용자가 행동을 취하기 전에 필요를 감지하여 자동실행 된다거나, 심지어 사용자가 필요성조차 인지하기도 전에 사전적으로 필요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선제적 대응기술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진행돼 온 기술발달의 연장 선상에 있다. 예를 들어 센서가 고도화되고 사물인터넷(IoT)이 생겨난 후로 사람의 행동이나 환경 변화의 빅데이터가 축적됐으며 이를 분석·활용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며 최근의 생성현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맥락을 분석 및 예측할 수 있게 됐다. 결국 선제적 대응기술이란 용어는 이미 현존하는 기술이 소비자에게 어떠한 가치를 선사하는지를 중심으로 재정의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선제적 대응기술은 우리 삶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까?
먼저 첫 번째는 일상에서 ‘불편함 제거하기’다. 일상에서 선제적 대응기술을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분야는 가전제품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오븐으로 요리할 때 적정한 시점을 놓쳐 음식을 태우곤 한다. 이러한 불편을 제거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비스포크 오븐’은 음식이 조리되는 과정을 감지해 음식이 탈 것 같으면 미리 알림을 준다. 세탁기도 알아서 작동한다. 누구나 세탁물의 옷감을 고려해 물의 온도를 바꾸지 않았다가 옷을 망치거나 세탁물 양에 따라 세제 용량을 가늠하는 것이 어려웠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AI가 탑재된 요즘의 세탁기들은 알아서 세탁 코스를 정하고 세제 양을 조절해준다.
두 번째 역할은 개인이나 기업의 업무 처리에서 ‘성과 높이기’다. 도입부에서 예를 든 것처럼 대표적인 선제적 대응기술이라 할 수 있는 인공지능 서비스가 업무 과정에서 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이 커지고 있다. 최근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한 ‘챗GPT’의 경우, 프로그램 코드를 짜는 일에 상당히 특화돼 있어서 인간보다 훨씬 높은 정확성으로 단시간 내에 코딩 작업을 대신 수행해준다고 한다. 이 뿐만 아니라 문서 내용을 보고서나 PPT, 그림 등 다른 포맷으로 알아서 표현하는 인공지능 서비스들도 도입되고 있다. 부수적인 작업은 로봇에 맡기고 인간은 핵심이 되는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일에 집중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다.
세 번째로 확인할 수 있는 선제적 대응기술의 역할은 주로 공공 분야에서 나타나는 ‘위험을 방지하기’다. 보건·의료라거나 금융·자연재해 등 분야에서는 위험신호를 빠르게 감지하지 못하면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표현 그대로 선제적인 대응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주식시장의 경우 실시간으로 금융 거래 데이터를 분석해 부정 거래 행위로 인한 대규모 금융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불·지진·홍수 등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막는 데에도 선제적 대응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이미 활약 중인 인공지능 예방 시스템 사례를 자주 확인할 수 있다. ‘얼러트 와일드파이어(ALERT Wildfire)’는 캘리포니아·오리건·네바다 3개 주에서 운영하는 산불 예측 시스템이다. 산불이 발생할 경우 확산되기 전에 조기 탐지하기 위해 실시간으로 연기를 감시하고 AI로 분석하는 카메라 네트워크를 구축해놓은 것이다.
미국 캐리(Cary) 지역의 사례도 유명하다. 홍수가 일어날 때마다 큰 피해를 겪었던 캐리 지역을 위해 IT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와 SAS, 지역 행정기관이 협업해 홍수 예측 솔루션을 개발했다. 이전에는 폭풍우가 칠 때 시민들의 제보에 의존해 상황을 파악했기에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었지만 실시간으로 하천의 수위를 모니터링하고 예측 모델을 개발해 상황이 위험수준으로 판단되면 자동으로 대응 조치가 작동된다. 시민들 또한 이러한 상황을 언제든 확인할 수 있도록 온라인으로 시각화 솔루션도 제공하고 있다.
선제적 대응 기술은 우리 삶 속에 광범위하게 스며들고 있다. 위와 같은 사례를 보고 있자면 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삶을 극적으로 개선시킬 듯하지만, 사실 낙관할 수만은 없다. 첫 번째 이유는 인간을 완전히 예측한다는 것이 현재로서는 요원하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원치 않는 선제적 대응이 일어났을 경우 기술은 오히려 장해로 작용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인간을 오도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챗GPT는 아직 학습이 충분하지 않아 거짓 답변을 내놓기도 한다. 무엇이든 일단 답변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실재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도 마치 사실인 듯 유창하게 답변하는데 이에 대해 경각심이 없는 사용자라면 그 답변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이미지를 인식하는 AI가 흑인 사진을 보고 고릴라로 판별했다는 이야기도 널리 알려져 있다. 기술이 학습하는 자료가 인종차별적인 성격을 담고 있을 경우 결과까지 오염되는 것이다.
선제적 대응기술은 인간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는 기술이지만 기술이 인간의 역할을 더 많이 대체할수록 인류에 미치는 파급력이 더 커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시에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은 물론, 사회 전체가 다각도로 접근하고 적극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다.
본 내용은 필자가 국방일보에서 연재하는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글을 수정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