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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윤 Jul 15. 2023

오프라인도 진화한다

트렌드코리아 2023 - 공간력 (상) 

최근 6개월에 걸쳐 전면 리뉴얼을 끝낸 이마트 연수점이 다시 문을 열었다. ‘미래형 대형마트’를 표방하는 이곳에는 갖가지 볼거리가 넘친다. 예를 들어 마트에 들어서면 양상추와 같은 채소를 재배 중인 스마트팜을 만날 수 있고, 수산 매장에서는 1m가 넘는 참치를 해체하는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소비자들은 원하는 형태로 손질해주는 ‘오더메이드(order-made)’로 수산물을 구매할 수 있다. 델리 코너에서는 조리로봇이 치킨을 튀기고 안내로봇이 매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소비자들을 맞이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대형마트에 마지막으로 장을 보러 간 것은 언제일까? 오프라인 대형마트는 근래 고전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지난 3월 발표한 ‘주요 유통업체 매출’ 자료에 따르면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경우 리오프닝과 봄나들이 시즌을 맞이하며 전년 동월 대비 전체 매출액이 6.6% 증가했다. 하지만 대형마트는 매출이 1.2% 증가하는 데 그쳤고 심지어 기업형슈퍼마켓(SSM)은 1.0% 감소를 기록했다. 지난해 코로나로 인한 매출 위축을 겪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저조한 수치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올 3월 대형마트 점포 수는 전년 동월 대비 1.3% 감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마트 연수점의 사례와 같이 대형마트의 오프라인 점포가 변신을 꾀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귀결인 것이다.



과거 유통업에서 핵심은 입지(location)라 할 만큼 오프라인 공간은 그 존재만으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래 온라인 커머스의 등장으로 유통의 패러다임이 바뀌었고, 코로나19는 심지어 오프라인 없이 생활하는 ‘언택트’의 가능성을 실감케 했다. 이제 생수나 세제와 같이 무거운 물건을 오프라인으로 사러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프라인은 온라인과 차별화해 실제 공간만이 갖는 힘을 활용해야 한다. 오프라인 공간이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머무르게 하는 고유한 힘, 바로 ‘공간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최근 소비 공간이 공간력을 갖기 위해 겪고 있는 변화를 세 가지 키워드를 통해 살펴보자.






첫 번째는 소비 공간의 ‘매거진(magazine)화’다. 

비유하자면, 이전의 소비 공간은 일종의 ‘카탈로그’였다. 카탈로그는 한정된 지면 안에 가능한 한 많은 상품 종류를 소개하고 가격과 구체적 상품정보를 제공해 구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과거 오프라인 소매공간의 역할이란 카탈로그처럼 ‘진열’과 ‘판매’라는 기능적 부분에 초점이 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카탈로그의 역할은 상당 부분 온라인 채널로 넘어갔다. 대신 오프라인 소비 공간은 실용적 목적보다 쾌락적 욕구를 충족하는 ‘매거진’에 가까워지고 있다. 상품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효율적인 정보 제공이나 판매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성을 자극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위한 경험을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가전제품을 판매하는 오프라인 매장의 변신이 눈에 띈다. 가전제품은 오프라인에서는 구경만 하고 구매는 온라인에서 하는 ‘쇼루밍(showrooming)’이 일어나기 쉬운 품목이다. 이 때문에 전자제품 매장들은 아예 구매보다 체험을 중심으로 하는 쇼룸의 형태로 매장을 탈바꿈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신제품 S23을 홍보하기 위해 2030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서울 성수·홍대·연남동에 ‘갤럭시 스튜디오’를 꾸몄다. 일반적인 매장과 달리 네온사인 조명과 컬러레이저를 쏘고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을 전시해 방문객으로 하여금 자발적인 ‘인증샷’을 유도했다. 최신 성능의 휴대폰 카메라를 사용할 때 얼마나 생생한 색감을 살릴 수 있는지 몸소 느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모바일 게임을 즐기는 소비자들을 위한 게임 전용관을 마련하는 등 공간을 다채로운 경험으로 채웠다.



의류나 식품처럼 일상적인 품목을 소비하는 공간의 경우, 예술을 결합함으로써 비일상적인 공간으로 승격시키는 사례가 관찰된다. ‘아더에러’라는 패션 브랜드는 매장 전체를 하나의 갤러리처럼 꾸며 상품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를 관람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매장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한다거나 영상과 소리로 우주 공간을 표현하기도 한다. 옷은 곳곳에 위치한 예술 작품과 어우러져 옷을 구경하는 것인지 감상하는 것인지 모호해진다.


식품도 마찬가지이다. 디저트 카페 ‘도식화’는 ‘그림 같은 마들렌을 먹는다’는 콘셉트로 공간을 꾸몄다. 카페에 들어설 때부터 눈에 띄는 것은 마들렌이 전시된 모습이다. 일반적인 카페처럼 계산대 옆 유리장 안에 판매용 마들렌이 진열된 것이 아니라, 크기를 확대해놓은 듯한 전시용 마들렌이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예술품처럼 한 점 한 점 조명 아래 놓여 있다. 전시된 마들렌 옆에는 작품설명처럼 재료와 단면도를 포함한 소개까지 적혀 있다. 이러한 일상적인 소비 공간의 비일상화는 단순히 먹는다는 경험을 넘어서서 공간 전체를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다.





소비 공간이 매거진화 된다는 의미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잡지는 대체로 정기발간되며 매번 새로운 내용을 담는다. 잡지를 구독하는 사람들은 이번 호에는 어떤 특집이 실렸을까 기대하며 잡지를 열어보기 마련이다. 소비 공간도 이와 마찬가지로 주기적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소개하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 오프라인 공간을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팝업스토어’가 이와 관련이 깊다.


예를 들어 ‘더현대서울’과 같은 백화점은 한 번 입점 계약을 하면 5~10년 동안 입점한 브랜드를 바꾸기 어렵다. 하지만 유행 주기가 짧아지는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이슈를 찾는 젊은 소비자들을 모으기 위해서는 주(週) 단위로 ‘핫한’ 브랜드를 선보일 수 있는 팝업스토어가 매우 효과적이다. 이러한 현상을 공간의 ‘플랫폼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과 기차가 오가는 플랫폼처럼 접근성 높은 물리적 공간에 수많은 브랜드가 들고 나는 것이다.


아예 ‘오프라인 콘셉트 매거진’을 표방하는 공간도 있다. ‘프로젝트 렌트’라는 공간은 개인 및 소규모 브랜드에 2주에서 3개월 정도 단기간으로 매장을 임대해준다. 입점하는 브랜드는 마음껏 각자 브랜드에 맞게 공간을 꾸밀 수도 있고 컨설팅 개념으로 공간 큐레이션을 서비스받을 수도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잡지를 구독하듯 또 어떤 새로운 브랜드가 들어왔는지 구경하기 위해 해당 공간을 주기적으로 방문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팝업이 열리는 '더현대서울' (왼쪽상단부터 스탠바이미-댄스가수 유랑단-마일드 무무X우주먼지-주먹감자라면 팝업스토어, 출처: @thehyundai_seoul)



본 내용은 필자가 국방일보에서 연재하는  <병영에서 만나는 트렌드>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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