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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윤 Aug 17. 2023

초고령 사회를 맞이하는 우리의 자세

트렌드 코리아 2023 - 네버랜드 (하)

한국에서 중년층 이상에게 외모를 칭찬하는 최고의 찬사는 ‘아름답다’ 혹은 ‘잘생겼다’가 아니라
‘하나도 안 변했다’라고 한다. 여성 배우에게 흔히 붙는 수식어인 ‘방부제 미모’라는 표현을 보아도 우리 사회에서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단순히 외모가 젊어 보이는 것을 넘어 생활 전반에서 나이의 장벽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네버랜드 신드롬 속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마지막 징후는 ‘전 사회의 Z화’이다. 지난 몇 년간 ‘MZ세대’라는 말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이 생겼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MZ세대’로 불리는 2030 청년층에 주목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20대 초반에 해당하는 Z세대의 문화는 새로운 트렌드를 견인하는 가장 ‘힙’한 것으로 인식된다. 독특한 지점은 이들의 취향과 문화가 젊은이들의 하위문화로 치부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에게 있어 한 번쯤 경험해봄직한 '요즘 문화'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백화점의 변신을 꾀한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더현대 서울’의 경우, 타깃 고객을 2030 트렌디한 소비자로 잡았다. 통상 백화점의 실소비층이 중장년층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과감한 시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한 이유는 5060 소비자를 타깃으로 백화점을 만들면 2030이 가고 싶어 하지 않지만, 2030을 타깃으로 하면 5060까지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더현대 서울’에는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소비자가 모여든다.


미국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벌어진다. SNS 핀터레스트에서는 최근 사용자들이 올리는 사진과 키워드를 분석해 매해 트렌드를 발표한다. 그중 하나가 ‘욜로 이어(YOLO Year)’다. ‘YOLO’란 ‘유 온리 라이브 원스(You Only Live Once·한 번뿐인 인생)’의 약자로 우리나라에서는 현재에 충실한 젊은이들의 문화를 조명하면서 널리 알려진 용어다. 그런데 핀터레스트에서 새롭게 주목한 욜로 이어는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파티 사진이 게시돼 있는데 ‘50’ ‘80’과 같은 숫자가 눈에 띈다. 바로 결혼 50주년, 80세 생일을 뜻한다. 즉 욜로 이어는 흔히 '노년'하면 떠올리는 '은퇴', '여생'의 이미지 대신, 현재를 적극적으로 즐기는 요즘 시니어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중장년층의 소비문화로 여겨졌던 것들이 세련됨 혹은 발랄함의 옷으로 갈아입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표적으로 전통주와 위스키 소비를 들 수 있다. 전통주 패키지는 다채로운 색깔과 귀여운 그림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졌고, 위스키는 광고가 젊어지고 하이볼로 응용하여 재미있게 즐기는 문화가 생겨났다. 중후함이라거나, 범접하기 어려운 어른의 영역 같은 것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네버랜드 신드롬이 퍼지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SNS가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매체로 떠오르며 SNS상의 2030 중심의 청년문화가 문화적 핵심 코드로 자리잡은 것이 하나의 이유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건 생애주기가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전형적으로 생각하던 생애주기 단계는 ‘청년(부모로부터 독립 및 취업)’ ‘중년(결혼 및 출산, 양육, 노부모 부양)’ ‘노년(자녀 독립과 은퇴)’의 순서로 이뤄졌다. 대다수의 사회구성원이 이를 따랐기 때문에 특정 연령대에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일종의 문화적 규범이 존재했다.


그런데 의학의 발달과 생활환경 개선으로 사람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게 됐다. 현재의 60대는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단어가 적절했던 과거의 60대가 아니라 ‘아주머니’ ‘아저씨’가 더 어울리는 신중년층이 됐다. 이러한 상태를 반영하기 위해 학술연구에서는 노인을 하나의 집단으로 보지 않고 ‘연소노인’ ‘중기노인’ ‘고령노인’의 3단계로 세분화하기도 한다.


생물학적 변화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변화도 있다. 생애과업에 대한 개인의 선택권이 커졌다. 학업을 오래 이어가거나 결혼 및 출산에 대한 인식도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이에 따라 ‘~하기엔 너무 나이 들었다’거나 ‘너무 어리다’와 같은 연령과 관련된 인식이 희미해지고 법적 성년인 20세가 아니라 사회적 의미에서 ‘어른’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준은 모호해지고 있다.




그런데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러한 네버랜드 신드롬이 가져올지 모르는 부작용이다. 

우리와 유사하게 네버랜드 신드롬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는 몇 가지 사회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사회에 나가 자립하기를 거부하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청년들, 중년이 돼서도 부모의 용돈에 의존해 살아가는 ‘기생 독신’, 다른 아이들도 함께 생활하는 학교에서 자신의 아이만 챙겨 주기를 바라는 ‘괴물 부모’와 같은 현상이다. 일본 정신과 전문의 가타다 다마미는 이처럼 어른으로서의 책임이나 공동체의식을 갖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일본의 모습을 ‘전 국민의 철부지화’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성인 자녀의 문제는 일본만이 아니라 많은 선진국에서 겪는 문제이기도 하다. 영국에서는 ‘키퍼스(KIPPERS)’라는 말이 있는데 ‘부모님 연금을 축내는 자녀들’이라는 뜻이다. 한국의 맥락으로 보자면 ‘캥거루족’과 가깝다. 한국에서도 캥거루족의 규모가 작지 않다. 이는 경제적으로 독립이 쉽지 않다는 사회구조적 문제가 결부돼 있으나 단순히 경제적 문제가 아니라 쉽게 정서적·사회적 의존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현상은 아니다.


물론 모두가 젊게 사는 소비문화를 통해 사회문제까지 생각하는 것은 과도한 우려일 수 있다. 

‘나잇값’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초고령사회를 앞두고 사실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다. 인구가 고령화됨에 따라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게 아니라 얼마든지 우리 사회가 젊게 살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에 필요한 건 네버랜드의 밝은 면모를 지켜 가되, 새로운 ‘어른 됨’을 규정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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