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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정윤 Oct 20. 2022

언택트? 아니, 언맨드(Unmanned)

없어서 못먹는다, 사람이 없어서...

“지속적인 구인난으로 불가피하게 메뉴 일부를 축소하여 운영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서울 시내 어느 맛집 앞에 붙어 있는 안내문이다. 음식점에서 재료 수급의 어려움으로 인해 메뉴를 축소 운영하는 경우는 과거에도 종종 볼 수 있었다. 최근에는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 메뉴나 영업시간을 축소 운영하게 되었다는 풍경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인력(人力)이 점차 귀해지는 것이다.


사람 보기가 어려워지는 것과 반대로 점차 자주 접하는 것들이 있다. 키오스크, 안내 로봇, 인공지능(AI) 서비스 등 인간을 대체하는 무인화 기술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무인화 기술은 공룡 로봇이 프런트에서 손님을 맞이한다는 일본의 ‘헨나(이상한) 호텔’처럼 해외 토픽으로 다루어지거나 제조 공정에 투입된 산업용 로봇처럼 소비자들의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았던 주제였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사람 간 접촉이 줄어드는 ‘언택트(un+contact)’ 바람이 불었고, 이제는 사람과의 대면 접촉을 비대면으로 바꾸는 것을 넘어서, 아예 사람의 개입을 줄이고 있다.  언택트를 이어 무인화를 뜻하는 ‘언맨드(unmanned)’ 트렌드가 외식·유통·금융·의료 등 전 산업 분야에서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물결로 다가오고 있다.




 일상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무인화 현상은 최근 2~3년 사이에 부쩍 늘어난 키오스크가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키오스크 시장 규모는 2017년 65억 원에서 2020년에는 220억 원으로 대폭 성장했다. 설치 대수로 보면 2021년 민간 분야 2만6574대, 공공 분야 18만3459대 수준이다(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 추정치). 먼저 도입을 시작했던 패스트푸드 업계에서는 매장별 키오스크 도입률이 적게는 60%에서 높게 잡으면 90%에 달한다고 한다(3대 브랜드인 롯데리아·버거킹·맥도날드 기준). 이제 키오스크는 식당이나 카페를 넘어서 독서실·주차장·미용실 등 무척 다양한 곳에서 볼 수 있다.


키오스크가 주문·결제 단계를 대신해왔다면 최근 외식업을 보면 제조(조리)·서빙·배달 등 소비의 전 단계로 무인화가 확장되고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로봇의 발달이다. 로보아르테에서 만든 ‘롸버트치킨’에서는 조리사 대신 조리 로봇이 닭을 튀긴다. 닭고기에 튀김 반죽을 묻히는 것부터 덩어리가 서로 붙지 않도록 튀김 망을 흔드는 것까지 몇 단계의 연속 동작을 사람 대신 해낸다.


조리가 다 되면 소비자에게 서빙과 배달하는 일도 로봇의 몫이 된다. 배달의 민족에서 운영하는 배달 로봇 ‘딜리’는 정확히 주문자의 위치를 인식해 음식물을 싣고 바로 앞까지 배달을 간다. 아직 서빙과 배달에 있어서 음식을 넣고 빼는 것은 사람이 직접 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점차 기능을 추가해가며 대중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배달 로봇 '딜리' (출처: 우아한 형제들)


배달까지 로봇이 한다면 ‘판매’ 단계는 무인화의 원조, ‘자판기(자동판매기)’가 담당한다. 유통업이 발달하며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자판기가 사물인터넷(IoT) 및 AI 기술을 만나면서 스마트 자판기로 진화하고 있다. 정육자판기 ‘프레시스토어’는 돼지고기, 소고기 등 다양한 육류를 부위별로 한 번 먹을 만큼의 소용량씩 판매한다.이러한 스마트 자판기는 여러 센서로 정보를 수집하고 AI 분석을 통해 자동으로 온도를 조절하며 재고를 관리한다. 예전에는 사람이 돌아다니며 일일이 관리해야 했기에 유통기한이 긴 캔 음료 같은 것만 취급했지만, 신선식품으로도 확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선식품 자판기 '프레시스토어' (출처: 프레시스토어 홈페이지)



취향을 고려한 판매도 가능하다. 편의점 브랜드 GS25에서 운영하는 ‘DX랩’의 와인 자판기는 소비자가 선택한 와인의 생산국가와 양조장, 알코올 도수·당도·어울리는 안주까지 자세한 설명을 제공한다. 나아가 스마트 자판기와 무인 매장은 이용자의 동선, 고민하는 시간과 같은 행태 데이터를 분석해 추후 상품 진열이나 추천에 반영한다.


품목도 먹는 것을 넘어 생화 및 드라이 플라워 자판기, 독립서점 자판기, 중고물품 자판기 등 제한이 없다. 정부 기관에서는 재활용 사업에 인공지능을 적용한 자판기를 활용한다. 예를 들어, 서울특별시 중구에서 운영하는 재활용 쓰레기 자판기는 깨끗하게 씻은 캔이나 페트병을 투입하면 등록한 휴대전화번호로 포인트를 적립해주는 식이다.




앞서 ‘언맨드’ 트렌드의 선행 트렌드로 언급한 ‘언택트’ 트렌드는 사실 코로나19 발발 이후 처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필자가 함께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진들이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제안한 트렌드 키워드이다. ‘접촉(contact)을 거부한다(un-)’는 의미의 언택트는 당시 젊은 소비자들이 점원의 응대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현상에서 착안하여 탄생하였다. 소비자의 가치 변화에 무게를 두고 무인화 트렌드를 제안한 것이다. 이후 팬데믹을 거치며 작은 불씨에 가까웠던 언택트 트렌드는 걷잡을 수 없는 불길로 번졌다. 만일 소비자들의 내적 변화를 통한 트렌드 확산을 기다렸다면 오래 걸렸을 것인데 거리두기가 강제된 환경으로 인해 가속화된 것이다. 


이어지는 언맨드 트렌드도 마찬가지이다. 무인화의 움직임에는 개인이 피하기 어려운 사회 구조적 변화가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본국으로 돌아간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시 한국의 일터를 채우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되며, 청년 노동력은 기존의 저숙련 일자리보다 새로 생겨난 긱(gig) 노동이나 창업을 더 선호한다. (*긱 노동은 배달기사와 같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일거리를 얻는 임시직 노동을 말한다.) 노동강도가 센 분야에서는 최저임금보다 훨씬 더 높은 임금을 책정해도 일하려는 사람이 없다 보니 고용주는 인건비가 부담되는 실정이다. 여기에 인공지능의 급격한 진보는 각종 무인 기술에 적용되어 인간의 부재를 메꾸는 것을 넘어 인간보다 뛰어나기까지 한 능력을 선보이고 있다.



언맨드 트렌드는 당장 일손 부족을 해소하는 것을 넘어서, 소비자들에게도 기술적 혜택도 가져다준다. 하지만 부정적 측면도 분명하다. 대표적인 것은 사람의 일자리가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로봇이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지만 단순 작업에 대해서는 로봇이 실수도 없고, 지치지도 않기 때문에 사람보다 효율성이 높다. 무인화의 파장은 비숙련 노동부터 전문직까지 퍼져 나갈 것이기 때문에 모든 직업에서 인간의 역할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해진다. 


소비자 또한 영향을 받는다. 무인화로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저렴해지는 효과보다는, 반대로 사람 손을 탄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더 높은 비용을 지급해야 할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점은 고령층을 중심으로 한 디지털 소외이다. 젊은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낯선 키오스크 앞에서 긴장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2021년 서울시민 디지털 역량 실태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 응답자 중 키오스크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45.8%밖에 되지 않았다. 이용하지 않은 이유로는 ‘사용 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33.8%)가 가장 주요했으며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17.8%),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거부감이 있어서’(12.3%) 등 무인화 기술에 대한 심리적 어려움이 나타났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변화에 직면한 지금, 어떻게 적응 과정의 마찰을 줄일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본 내용은 국방일보  <병영에서 만나는 2022 트렌드>에 연재한 내용을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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