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는 게 최악, 적어도 최악은 벗어난 롯데
아래 글은 2021년 09월 15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그동안 M&A 시장에서 변죽만 울리던 롯데가 드디어 큰 건을 하나 터트렸습니다. 지난 9월 9일 롯데가 사모펀드 IMM PE와 손잡고 가구업계 1위 한샘을 인수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IMM PE는 약 1조 3천억 원을 지불하고 한샘의 지분 30%를 사들일 예정이고요. 롯데는 이중 약 3천억 원을 분담한다고 합니다.
SK와이번스, W컨셉, 이베이코리아, 스타벅스 등 공격적인 M&A 행보를 보이던 라이벌 신세계와 비록 대규모 투자 소식은 없었지만, 더 현대 서울이라는 히트상품을 내놓은 현대에 비해 존재감이 옅어지던 유통 공룡 롯데가 다시 기지개를 피기 시작한 건데요. 이러한 롯데의 선택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한마디로 애매합니다. 주가는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고요. 전문가들의 평가도 엇갈리고 있습니다.
다만 롯데의 당면과제인 온라인 대전환에 어울리는 투자는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데요. 경쟁자 신세계의 경우, 부동산을 현금화하고, 이를 이커머스 역량으로 재투자한다는 뚜렷한 방향성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기에 비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롯데의 이번 배팅은 성공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을까요?
우선 적어도 시장의 반응이 부정적으로 흐르진 않는 이유는, 홈 인테리어 시장에 대한 투자 필요성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롯데의 이번 인수는 늦은 감도 있는데요. 이미 빅3 백화점이라고 묶이는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는 각각 리바트와 까사미아라는 업체를 진작에 품었기 때문입니다.
현대백화점은 무려 2012년에 리바트를 인수하였고요. 뒤이어 2018년에 신세계가 까사미아를 인수하였습니다. 이렇게 앞다투어 홈 인테리어 시장에 직접 진출했던 것은,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망은 현실이 되었는데요. 특히 코로나 팬데믹은 이를 가속화시켰습니다.
물론 인수한다고 다 잘되는 건 아닙니다. 단돈 500억 원에 사들인 현대 리바트는 작년 매출 1조 4천억 원의 업계 2위 기업으로 성장한 반면, 까사미아는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아픈 손가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샘은 현재 압도적인 1위 사업자이기 때문에. 가장 늦게 진출하는 셈이긴 하지만 파급력은 작지 않을 걸로 보입니다.
다만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쪽에서는 인수 가격이 너무 비싸서, 승자의 저주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합니다. 인수가가 주가의 2배 이상이었고요. 비싼 가격에 IMM PE가 인수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자, 전략적 투자자를 찾으면서 롯데가 참여하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거품이 잔뜩 낀 가격에 품게 된 데다가, 온라인 전환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다 보니, 아무리 성장성이 훌륭한 시장이라도, 진출하는 게 맞냐라는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의 이번 선택은 최선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차악은 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이제 롯데에게는 플랫폼보다는 콘텐츠 공급자로써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 시기가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사실 앞서 신세계나 현대백화점이 홈 인테리어 시장에 진출하는 동안 롯데가 놀고만 있었던 건 압니다. 알고 보면 업계 1위 답게,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트렌드를 읽고 여러 액션들을 해왔습니다. 먼저 이케아의 국내 진출 시 비공식적 제휴 관계를 맺고, 시너지를 낸 바가 있고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무인양품을 국내에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 콘텐츠들이 롯데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롯데는 직접 인수를 하거나, 론칭을 하는 대신에 제휴 또는 합작 법인을 세우는 방식을 통해 콘텐츠를 수혈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케아, 무인양품은 물론이고 유니클로, 자라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들여온 콘텐츠는 롯데의 통제권 밖에 있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오프라인의 위기 때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반면 현대백화점은 리바트나 한섬 같은 콘텐츠들을 완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커머스의 공습 속에서도 나름의 영역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상품을 쥐고 있었기에 일단 협상력을 가지고 있었고요. D2C를 강화를 통해 온라인 역량도 건실하게 키울 수 있었습니다. 신세계가 스타벅스 코리아의 지분을 추가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의 일이었습니다. 과거 오프라인 유통 업체들의 핵심 역량 기반이 부동산에 있었다면, 이제는 콘텐츠가 중요해진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물론 이번 인수 하나 만으로 침체되어 가던 롯데쇼핑이 한 방에 반등하진 못할 겁니다. 여전히 롯데의 갈 길이 멀기 때문입니다. 다만 올해 7월 롯데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신동빈 회장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최악"이라고 말했다고 하는데요. 적어도 이번 한샘 인수로 롯데는 최악의 상황에선 벗어난 듯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