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팬심을 얻은 자가 살아남는 시대가 올 겁니다
혹시 라이크커머스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뽑은 10가지 트렌드 중 하나인데요. 개념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좋아하면 산다. 소비자가 직접 생산부터 판매까지의 유통과정을 주도하는데, 이와 같은 소비자 주도 유통과정이 동료 소비자들의 '좋아요 like'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로 만들어낸 용어라 합니다.
라이크커머스라는 말 자체는 이번에 등장했지만, 사실 이와 유사한 개념은 이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이미 서울대 소비 트렌드 분석센터는 2018년에는 세포마켓을, 2019년에는 팬슈머라는 키워드를 제시한 바 있는데요. 팬을 기반으로 1인 미디어가 판매 채널로 변화한다거나, 팬이 직접 상품의 기획부터 생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면에서 이미 라이크커머스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팬덤 기반의 커머스가 주요한 트렌드로 올라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더 이상 기능의 차별화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상품의 기능이 매우 중요한 구매 판단 기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생산기술의 발달은 이제 기능 만으로 상품 간 우위를 판단하기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인터넷을 통해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쉬워지면서, 똑똑한 소비자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과거에는 고가의 제품은 막연히 품질도 좋을 것 같다고 인식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원료까지 검색하면 다 나오기 때문에, 이들은 이제 속지 않습니다. 브랜드 자체로 가치를 주는 명품을 제외하면, 상호 평등한 세상이 열린 겁니다. 패션 시장이 완전 고가의 럭셔리 시장과 SPA가 주도하는 중저가 시장으로 양분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인데요. 애매한 브랜드 물건은 굳이 웃돈을 주고 사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제조 기업들이 우리 물건을 꼭 사야 한다고 소비자들을 설득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물론 그래서 우리는 광고를 만듭니다. 하지만 유명 연예인을 기용하고, TV와 같은 매체를 쓰는 건 일부 대기업에게나 가능한 일입니다. 대다수의 브랜드들이 절망에 빠져 있던 때에 등장한 것이 바로 팬을 보유한 셀럽들입니다. SNS와 같은 1인 미디어의 세상이 열리면서 전성기를 맞이한 이들은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활용 가능하면서 효과는 좋았습니다. 단지 이들이 사용하는 모습만 보여도 팬들이 구매하려 몰렸으니까요. 일부 인플루언서들은 물건을 공동 구매 형태로 판매하는 것을 넘어, 쇼핑몰이나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죠. 이렇게 인플루언서가 직접 셀러가 되어 판매하는 형태를 C2C(Customer To Customer) 모델이라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1세대 쇼핑몰들은 대부분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로레알에게 6,000억 원에 인수된 스타일난다는 이들의 성공 신화의 방점을 찍었지요. 하지만 인플루언서 기반의 커머스가 대박을 내는 사례는 이후 다시 나오지 못했습니다. 단기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들은 많았지만, 장기적으로 살아남지 못한 건 팬들이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팬들이 돌아선 이유는 크게 2가지였습니다. 우선 인플루언서의 인성 리스크가 터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람인 이상 실수를 하는 경우가 당연히 있었고, 매니지먼트 회사로부터 체계적으로 관리받는 연예인들과 달리, 이들은 리스크 대처가 서툴렀습니다.
또한 커머스 경쟁에서 살아남기엔 이들의 전문성이 부족했습니다. 그나마 품질 이슈가 덜한 패션 상품을 팔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요. 식품, 화장품 등 안전과 위생 등이 중요한 카테고리로 확장하면 꼭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여기에 이들의 서툰 대처가 더해지면서 작은 문제도 큰 불로 번지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보여준 가능성은 솔직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제조 기업들에게 새로운 활로를 보여주었으니 말입니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이들을 육성하고 관리하려는 시도가 나오니, 바로 MCN(Multi Channel Network)입니다. MCN은 일종의 매니지먼트 회사로 인플루언서들을 관리하고, 이들의 커머스 활동을 지원합니다. 개인적인 논란의 리스크와 부족한 전문성을 보완해줄 수 있었지요.
그리고 새로운 팬덤을 모으는 대상으로 캐릭터가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카카오프렌즈의 라이언과 펭수는 인기가 절정일 때는 어떤 상품에 들어가도 대박을 낼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웹툰 등을 기반으로 새로운 IP들이 대거 등장하고, 이들과 콜라보를 하여 광고 효과를 누리는 경우가 많아지자 이를 노리고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생겨나고, 대기업들까지 진출하기 시작합니다.
아예 가상 인플루언서를 통해 리스크 없는 셀럽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시도가 늘어나기 시작한 건데요. 가장 유명한 가상 인플루언서 로지의 경우 올해만 10억 원 이상의 모델료를 벌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로지를 통해 이 시장을 개척한 로커스는 네이버 웹툰에 인수되기도 합니다. 재밌는 건 로지는 정말 철저한 기획 아래 성공을 거두었다는 겁니다. 외모는 물론, 포즈, 취미, 심지어 태깅된 장소까지 Z세대가 열광하는 기준에 맞추어 설정되었습니다. 그랬기에 가상의 존재라는 걸 숨기고 운영했던 3개월 만에 1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상 인플루언서나 캐릭터를 이용하는 걸 넘어서 브랜드에 결합한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경우까지 등장합니다. 작년 인스타그램을 뜨겁게 달궜던 빙그레의 빙그레우스는 브랜드를 기반으로 아예 새로운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들었는데요. 빙그레는 어떤 TV광고보다 더 큰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었고, 올드했던 브랜드 이미지도 개선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기업화된 인플루언서들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된 걸까요? 아닙니다. 과거보다 개인 인플루언서들이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도 점차 마련되고 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과 ODM을 통한 생산이 용이해지면서 과거와 달리 전문성은 극복하지 못할 장애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은 제조 부담을 덜어주면서 일정한 수량을 보장해주기 때문에 생산에 더욱 쉽게 도전하게 해 줍니다. 또한 제조 공장과 개인을 이어주는 플랫폼들이 등장하면서 ODM 업체와 협업이 쉬워진 것도 인플루언서 브랜드 전성시대를 다시 열리게 하고 있습니다.
과거 골드러시 때 막상 광부들보다, 이들에게 청바지를 팔던 이들이 성공했다는 이야기 혹시 아시나요? 라이크커머스가 뜨면서 청바지를 파는 이들의 몸값이 덩달아 오르고 있습니다. 우선 패션에서는 인플루언서들의 세포마켓을 모은 플랫폼인 지그재그, 에이블리, 브랜디 등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고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와디즈는 차세대 유니콘 후보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기업과 기관의 돈도 이들에게 몰리고 있습니다. 지그재그는 카카오에게 인수되었고, 브랜디는 네이버가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화장품 ODM 업체들의 주가는 뛰고 있고, 아모레퍼시픽 같은 제조사들은 이들을 인수하며 품고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라이크커머스의 미래는 어디로 흘러갈까요? 개인 인플루언서 중심에서 더욱 지속 가능한 캐릭터나 가상 인플루언서, 그리고 이들을 포괄하는 세계관까지 만드는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는 건 앞에서 이미 설명드린 바 있는데요. 결국 팬들을 모으는 건 개인이든 기업이든 콘텐츠입니다. 그리고 콘텐츠의 힘은 결국 누가 더 좋은 IP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좌우되게 됩니다.
그래서 라이크커머스 트렌드가 지속되면 될수록 IP를 확보하고자 하는 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IP야 말로 팬들을 확보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팬들을 거느린 콘텐츠 회사가 역으로 커머스로 진출하는 경우도 많아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미 넷플릭스가 쇼핑몰을 만들면서 커머스로 진출한 바 있고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등도 커머스로 영역을 확장 중입니다. 이미 유료 콘텐츠의 시대가 열리면서 IP는 금값이 되어가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커머스를 하기 위해서도 이들을 품어야 하니, 더욱더 가치가 올라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