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입법예고
지난 9월 28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온라인 플랫폼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표하였다. 조성욱 공정위 위원장이 취임 직후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것 중 하나가 온라인 플랫폼 산업에 대한 규제안이었는데. 드디어 그 윤곽을 드러낸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입법예고 보러 가기]
우리는 그동안 규제가 시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여러 사례들을 통해 충분히 경험해왔다. 대형마트는 규제의 늪에 빠지고, 온라인 쇼핑에 치이면서 적자 사업으로 전락하였고, 한 때 모빌리티 시장을 선도하던 타다는 서비스가 아예 사라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번에 발표된 규제 법안도 과연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먼저 이번 법안의 대상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번 규제의 대상은 2가지 조건 중 하나를 충족시키는 사업자에게 적용된다. 그 조건은 다음과 같다. 매출액 100억 또는 거래액 1,000억 이상.
정확히는 이내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액의 이상이니, 최대 기준이 매출액 100억 / 거래액 1,000억이다. 일단 생각보다 허들이 낮다는 느낌이 든다. 매출액 100억은 쉽지 않을 수 있으나, 최근 시장 성장률을 고려하면 거래액 1,000억은 결코 어려워 보이는 기준은 아니다. 일단 우리가 익히 이름을 들어본 플랫폼들은 대부분 기준을 넘어간다고 보면 된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네이버, 쿠팡 같은 거대 플랫폼들을 견제하려다 자라나는 새싹마저 죽일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일단 공정위가 밝힌 적용 대상은 오픈마켓 최소 8곳 이상, 숙박앱 2곳 이상, 배달앱 최소 4곳이다. 오픈마켓은 네이버, 쿠팡, G마켓, 옥션, 위메프, 티몬, 인터파크. 숙박앱은 야놀자, 여기어때, 배달앱은 배달의 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배달통으로 예상된다. 거의 시장에 존재하는 주요 플레이어들은 싹 다 규제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 업체들은 어떤 규칙을 앞으로 지켜야 할까? 공정위에 따르면, 이번에 제정된 규제 내용은 매우 일반적인 것으로, 혁신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플랫폼의 불공정 행위는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온라인 중개 플랫폼이 꼭 준수해야 할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반드시 계약서를 작성/교부하고, 주요 항목은 계약서 내에 명시되어야 한다.
- 계약서 내용이 변경되는 경우, 최소 15일 내에 사전통지되어야 한다.
- 불공정 행위를 강요하거나, 보복조치를 하는 것은 금지한다.
얼핏 보면 꽤나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계약서 필수 작성부터가 너무 오프라인식 사고방식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특히 입점업체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 셀러의 경우 계약서 작성 자체가 매우 부담스러운 행위일 수밖에 없다. 다만 플랫폼 입장에서 최악은 피한 것은 수수료율에 대한 직접적인 가이드는 빠졌다는 것이다. 또한 규제를 어길 시에도 형벌은 부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신 다른 업종의 2배에 해당되는 과장금이 부과되게 된다. 과징금 책정은 위반 금액의 최대 2배까지 가능하며, 정액 과징금도 10억 원으로 규정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번 법안 제정은 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될까? 개인적으로 이번 법안이 다소 이르게 도입된 것이 아닌가 여겨지긴 하는데, 그 이유는 온라인 플랫폼 시장 내 주요 플레이어들이 대부분 적자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갑질로 여겨지는 플랫폼의 행동들은 물론 갑의 횡포일 때가 많지만,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일 때도 종종 있다. 그렇기에 이번 규제는 크게 2가지 관점에서 시장 내 옥석 고르기를 가속화하여, 소수의 플랫폼만 살아남는 생존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우선 플랫폼 시장의 진입 장벽을 높일 것이다. 이번에 같이 발표된 계약서 내 필수 기재사항 항목을 보면, 10번과 12번 항목에서 보듯이 상품 노출 순서나 플랫폼 내 데이터를 적절하게 제공할 의무를 플랫폼이 가지게 된다. 그동안 플랫폼들은 노출 순서 등의 로직을 어뷰징 회피 등의 이유로 공개하기를 꺼려했었다. 또한 압도적인 정보 우위를 바탕으로 입점 업체들을 통제해왔다. 하지만 앞으로 이러한 것들은 규제로 인해 점차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로직에 의한 기준을 세울 수 있고, 양질의 데이터를 적정하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역량은 모든 플랫폼이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운영 역량이 탁월하고, IT 인프라를 잘 갖춘 소수의 선도 플랫폼들이 가진 상대적인 우위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온라인 플랫폼들의 아킬레스 건인 적자 문제는 극복하기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플랫폼이 적자를 해결하는 방법은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반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하거나 자체 PB를 늘려 이익액을 키우는 방법 2가지 밖에 없다. 하지만 이번 규제 때문에 독점상품을 확보하거나(6번 항목), PB를 플랫폼의 지위를 활용하여 의도적으로 키우는 행위가 어려워지게 되었다. (11번 항목) 따라서 거래액을 크게 가져가는 1,2등 플랫폼을 제외한 나머지 플랫폼들이 수익구조를 만들고 생존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이처럼 플랫폼들의 경영환경은 악화되는 반면에 법안의 실효성이나 형평성과 관련된 반발도 터져 나오고 있다. 우선 앞서 말한 것처럼 너무 공정위가 오프라인에 옛날 방식에 갇혀 있다는 비판이 있다. 기명날인을 필수로 하는 규정 같은 것이 특히 그러하다. 언제든 필요하면 온라인으로 바로 수정하고 실시간 발급도 가능한 시대에, 꼭 계약서를 교부하고 기명으로 날인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무엇보다 공정위 입장에서 뼈아픈 비판은 해외 업체와 형평성이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갑질의 끝판왕, 인앱 결제 수수료는 이번 규제로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크리티컬 하다. 더욱이 구글은 최근 내년부터 모든 앱에 수수료 30%를 부과한다고 발표하기까지 했다. 안 그래도 갑작스러운 규제로 불만이 많은 국내 업체들은 정말 복창이 터지지 않았을까? 앞으로도 이러한 글로벌 플랫폼의 갑질을 견제하지 못한다며, 플랫폼 공정화법은 반쪽 자리일 수밖에 없다.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대형마트들은 최근 계속 적자를 내고 있다. 이렇듯 포식자에서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여전히 추석 기간에도 대형마트들은 의무 휴업을 지켜야 한다. 결국 규제는 전통시장을 살리지도 못했고, 대형마트만 죽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규제의 필요성을 아예 무시하는 건 아니다. 분명 규제는 필요하며, 특히 온라인 대형 플랫폼은 그 지배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견제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다만 이번에 발표된 법안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 많다. 규제는 만들긴 쉬워도 없애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보다 세심히 여러 가지 사항들을 고려하여 다듬어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