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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한 Mar 05. 2022

이번 생에 장문은 처음이라...

결국 마케팅 기획하던 버릇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구슬이 서말이었습니다


 뉴스나 트렌드 콘텐츠를 다루는 창작자들은 아마 공감하실 텐데요. 콘텐츠의 수명이 정말 짧습니다. 모두 내 자식과 같은 글들인데, 짧으면 하루 이틀, 길어야 1~2주면 먼지 속에 쌓이고 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브런치 작가라면 누구나 꿈꾸는 출판에 시선이 가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종이 책은 일단 책장에 남으니 조금 더 오래도록 사랑받지 않을까라는 마음에서 말이에요. 때마침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도 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으니, 이건 뭐 망설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브런치 작가님들 모두가 꿈꾼다는 바로 그 프로젝트, 저도 한번 참여해보았습니다 (출처: 브런치)


 그렇다면 무엇을 써야 할까요? 사실 브런치를 시작한 지 반년 정도 지나자, 꽤나 글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여기에 매주 쓰던 2개씩 뽑아내던 뉴스레터 아티클까지 있었으니, 정말 재료는 충분했었습니다. 지금은 또 연차가 꽤나 쌓였지만, 당시는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엔 솔직히 주저함이 조금 있었습니다. 래서 선택한 것은 가장 잘하자는 것을 조금 더 확장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트렌드계의 영원한 클래식, 트렌드 코리아의 이커머스판을 만들어보자고 말입니다. 길면 2주짜리 내 글의 수명을 1년 정도를 늘려보자, 시작은 자신 있었습니다.



12만 자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시간을 앞으로 돌려, 한창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논술을 준비하던 전, 개요 쓰기를 참 싫어했습니다. 지금도 아마 그럴 텐데, 논술 수업에서는 개요의 중요성을 참으로 강조했습니다. 사실 긴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고, 개요 없이 쓰다 보면 논점이 흐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꿋꿋이 일필휘지 작성법을 고집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도, 충분히 잘 채워 나갔거든요.


 하지만 브런치 북 마저 그렇게 준비할 순 없었습니다. 책을 쓰기로 하자마자 제가 가장 먼저 한건 도대체 책 1권을 쓰려면 글의 분량은 얼마나 되어야 할까 였습니다. 그리고 구글에서 찾은 답은 명쾌했습니다. 200자 원고지 600매, A4 용지로는 7~80 페이지, 그리고 글자 수로는 12만 자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자, 12만 자 정도면 개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일단 저는 그간 제가 써왔던 브런치 글과 뉴스레터들, 그리고 평소 아카이빙해오던 여러 아티클들을 두루 보며 키워드들을 뽑아보았습니다. 그렇게 총 9개의 키워드를 뽑았고요. 제가 생각한 차세대 기업들의 이야기까지 다루는 걸로 계획을 짜서 총 12,800자짜리 거창한 개요를 완성시켰습니다.


늘 그렇듯 계획은 원대했습니다 (출처: 필자)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요? 늘 그렇듯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당시 코로나로 인해 집콕이 되어버린 휴가를 다 쏟았지만 12만 자의 벽을 넘진 못했습니다. 아마 7~8만 자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요. 글의 수도 필요했던 10개를 겨우 채웠습니다. 정말 간신히 브런치북을 발행하고, 기한이 끝나기 직전에 겨우 응모하였습니다. 결과는 뭐 역시나 탈락이었고요. 그래도 완성한 브런치북 [내일의 커머스] 정말 저에게 다른 내일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다행히 출판사로부터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역시 출판의 벽은 높구나를 실감하려던 찰나, 설레게 하는 알림이 왔습니다. 브런치로 제안이 왔다는 소식이었는데요! 놀랍게도 기고도 아닌 출간 제안이었습니다. [내일의 커머스]를 보고 이커머스 트렌드 책을 써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크으 원하던 바를 이렇게 읽어주시다니! 저는 일사천리로 계약까지 진행했습니다.


 물론 그 사이에 출판업계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조언도 구했고요. 나름 표준 계약서도 받아서 공부해보기도 했습니다. 계약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초짜 작가였고, 출판사도 신생 임프린트였습니다. 그래서 나름 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요. 물론 나중에 다루겠지만, 다 장단점이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마케터 하던 버릇 어디 가겠습니까?


 처음 브런치북을 준비하던 때 가장 먼저 찾아본 게 글자 수였다면, 진짜 출판을 준비하면서는 시장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근데 근처 대형서점에서 본 풍경은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경제경영 베스트셀러 순위를 주식과 부동산이 모두 점령하고 있더라고요.


본격적으로 책을 준비하던 당시는 모두가 재테크에만 관심이 있던 때였습니다 (출처: 교보문고)


 이야, 마케팅이나 기업 분석 등과 관련된 경영서적은 정말 하나도 찾을 수 없어서, 솔직히 조금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이왕 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당연히 베스트셀러 란에 오르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은데,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고 주식 투자자 입장의 책을 쓰고 싶지도, 쓸 자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장 조사 자체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트렌드 자체를 다루기보다는, 투자의 시대인 만큼, 더 중요해진 시장 이해에 대한 책을 써보자는 것으로 방향을 틀게 되었거든요.


사실 현재 다시 돌아보면, 당시 세운 원칙대로 책을 쓰진 못했던 것 같지만, 의미는 있었습니다 (출처: 필자)


 마케터 경력이 어디 가는 게 아니라고, 컨셉이 정해지자마자 STP 전략을 짜보았습니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책을 쓸 순 없지만, 적어도 타깃 독자들에겐 오래도록 도움이 되는 책을 쓰고 싶었거든요. 제가 꿈꾸는 이커머스 책의 목표는 이커머스 지식을 담은 뉴닉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빠르게 변하는 이커머스 시장을 이해하고 앞으로를 전망할 수 있는 기초 체력을 기르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STP 전략이 궁금하다면 아래 글을 읽어보세요)


 솔직히 처음 세웠던 작성 원칙과 타깃 전략을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관적으로 지켰냐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짜고 나니, 어투부터 내용 구성까지 헤매지 않고, 쭉 진도를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책이 나온 지금, 서평에서 제가 의도했던 것들을 느낀 독자 분들이 간혹 계신데 그럴 때마다 큰 희열을 느끼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번엔 12만 자, 이겨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글을 써야겠지요. 처음 브런치북을 썼을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거의 글을 다시 써야 했습니다. 기존 글들은 참고 자료로 사용하고, 일부는 그대로 넣기도 했지만, 방향을 바꾼 만큼 대부분은 새로이 썼어야 했거든요. 


 이번에는 개요도 상당히 구체적으로 썼습니다. 과거 키워드랑 분량만 정해놨던 때와 달리, 절반 정도는 참고할 수 있는 기존 브런치북도 있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계약의 힘이 컸습니다. 마감일자가 있고, 계약을 맺은 이상 이거 뭐 안 쓸 수 없지 않았겠습니까?


애당초 쓰고 싶었던 분량에 살짝 미달하긴 했지만, 그래도 거진 채웠습니다 (출처: 필자)


 처음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땐, 글을 꽤나 빨리 쓰던 저였기에 자신감이 넘쳤습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까 12만 자의 벽은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브런치북을 쓰는 과정을 중간에 거쳤기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낼 수 있었다는 겁니다. 정말 7~8만 자라도 꽤 긴 장문을 썼던 경험을 가졌다는 건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더해 컨셉부터 개요까지, 상세히 계획하고 그간 뉴스레터를 보내며 쌓아왔던 인사이트들이 더해지니, 중간중간 위기도 있었지만, 그래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한 개요에 따라, 여러 아티클들을 쓴다는 관점에서 접근했던 것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위의 목차 기획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소설 등의 글과 달리 각각의 챕터들이 독립적인 글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그간 뉴스레터, 그리고 브런치 글들을 쓰면서 수천 자 정도를 쓰는 건 꽤나 훈련이 되어 있었거든요. 순차적으로 하나하나 돌파하다 보니, 어느새 초고가 완성이 되어 있더군요. 이번에는 12만 자를 무난히 넘어, 무려 15만 정도나 되는 글이 제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초고 탈고를 하던 그 순간의 성취감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초고를 탈고하고 나니, 사실 이후부터는 크게 어려운 점이 없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원고를 수정해주고, 저는 그것을 확인하고요. 물론 그 사이에도 계속 큰 이슈들이 일어나서 일부 내용들을 끊임없이 고쳐야 했지만요. 곧 표지 디자인이 나오고 연말 즈음에 드디어 전 제 책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가 문제였습니다. 책을 이왕 만든 김에 잘 팔아야 할 텐데, 명색이 그로스 마케터 출신인데, 뭔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커머스 다루는 창작자답게 진짜 커머스에 전 이제 도전하게 됩니다. 다음 편부터는 책을 한 권이라도 더 팔기 위한 저의 고군분투기를 들려드리도록 할게요.






[오늘도 뉴레 시즌2] - 뉴스레터를 통해 출판에 도전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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