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gSoo Seo Jan 26. 2020

한 권의 책을 내려면, 분량은 얼마나 돼야 할까

퇴근 후 내 책을 출판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방법

퇴근 후 내 책을 출판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방법


“그래서 책 한 권이 나오려면 분량은 어느 정도를 생각해야 되는 거야?”

“어느 정도긴요 책 한 권 쓰려면 책 한 권 분량을 써야죠.”

“아오, 그래서 그게 어느 정도냐고. 막연해서 그렇지!”

“크크. 알겠어요. 형은 이렇게 화낼 때가 제일 재밌다니까.”


책 한 권 분량은 200자 원고지 600매 정도. 글자 수로 말하자면 약 12만 자 정도입니다. A4용지로는 약 70~80페이지가 됩니다. 이렇게 구성하면 우리가 흔히 서점에서 보는 일반적인 책 정도 사이즈와 두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 그 정도 분량은 필수로 써야 하겠네?”


물론 그렇지만, 흔한 얘기로 케이스 바이 케이스, 책 바이 책일 수 있습니다. 요즘엔 점점 글자 수가 줄어드는 추세이기도 하고 분량이 적다면 좀 작은 사이즈의 판형으로 찍어내기도 합니다(아래 판형 참고). 그렇지만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게다가 첫 작품에 도전하는 예비작가라면 뭔가 질러가는(?) 길을 찾기보다는 '정공법'을 택했으면 합니다.



그렇게 차분하게 12만 자 정도를 우선 써 보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래도 부담스러우니까 그렇지. 백지의 공포? 뭐 그런 말도 있잖아. 나는 입사할 때 자소서 항목에 1,200자짜리 있는 회사는 일단 좀 거르고 싶더라니까.”

“그래도 거르진 않았죠?”

“꾸역꾸역 썼지.”

“이번에도 꾸역꾸역 쓰면 되겠네. 하하. 농담이에요”




블록을 쌓는다는 마음으로



일단 그렇게 긴 글을 써보지 않은 초보 작가에게 앞서 말한 분량은 충분히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자 수가 주는 압도감이 있을 것 같고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였고 실은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책을 앉은자리에서 한 번에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철학 책을 쓰는 한 유명 교수님은 책 한 권을 그 자리에 앉아서 계속 쓰기도 했다지만 우리 같은 범인들은 따라 하다 숨 막혀 죽을 수도). 한 문장씩. 한문단씩. 그리고 한 챕터씩 완성해 간다고 생각하면 공포감이 좀 줄어들긴 합니다.


“그러니까 블록을 쌓아가는 느낌으로 말이죠! 하나씩 하나씩.”  


여기서 블록은 글자일 수 있고 문장일 수 있습니다. 그런 문장이 모여 문단이 되고 하나의 소제목으로 묶을 수 있는 챕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 에세이로 말하자면 하나의 에피소드에 해당될 수 있고요.


“제가 가장 최근에 쓴 책을 예로 들면요. 본문을 약 20개의 '장'으로 구성했어요.”


[단지 결혼은 하고 싶은 건데 이게 다 무슨 일이래요]라는 책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본문 20개 장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앞뒤로 붙어 있습니다.


한 장에 약 5,000~6,000자, A4용지 3~4장 정도 되는 분량을 썼습니다.

결국 책 한 권에 들어간 글자 수는 총 11~12만 자 정도, A4용지로 70~80 매였습니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책은 [국판] 288페이지 분량이 이었습니다.  




챕터별 분량? 읽고 쓰기의 리듬  



챕터별 분량은 각각 다를 수도 있겠지만 가급적 일관된 것이 좋습니다. 읽는 사람도 어느 정도 예상해서 읽을 수 있고. 글을 읽는 것도 일종의 리듬감 같은 게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리듬만 반복된다면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 리듬을 어떻게 만들어 갈지 고민하는 것도 작가의 즐거운 작업 중 하나라고 봅니다.  


“에피소드 단위를 좀 더 짧게 가져가도 되는 거잖아?”

“당연하죠.”


정해진 룰은 없습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50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은 46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고요. 또 요즘 제가 재미있게 봤던 소설책을 예로 들어 보자면, [산자들]의 경우 단편 소설 10개로 구성돼 있습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은 역시 단편 소설 8개로 구성돼 있고요.


말씀드린 네 권의 책 모두 각 장들이 병렬식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이 장들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주제의식이 있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그게 단편소설 모음집이라 할 지라도 그런 일관성은 책 전체에 걸쳐 흐르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작가가 세상에 말하고 싶은 바일 것입니다.




글이 아니라 사진이나 그림으로 채우면 어떨까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근데 이렇게 분량을 꽉꽉 채우는 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  

“아, 음…… 개인적으로는 일단 책 한 권의 분량은 꼭 써 보는 걸 추천해요.”


사실 요즘엔 아예 그림으로만 된 책. 포토에세이라고 이름 붙인 사진집에 가까운 책도 많고 오히려 그런 책이 많이 팔리는 시대인 건 맞아 보입니다. 대형서점 종합 베스트셀러에 만화로 된 책이 상위권에 한동안 포진해 있기도 했고요. 그런 책들은 그런 책 나름대로 충분히 가치를 지난다고 생각합니다. 모 작가는 팬시용품적인 기능을 하는 책도 있다고 했는데요. 그런 기능을 하는 책은 또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만약에 형이 글 대신 그림이나 사진으로 차별화시킬 수 있다면 나는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건 나만의 차별각을 날카롭게 세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저 분량을 다 어떻게 다 채우지? 사진으로 대신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시작점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등 떠밀리 듯 글을 쓴다면?


“글세 그런 생각이라면. 하하. 독자들은 귀신같이 알지 않을까요? 아니 출판사 편집장을 설득시킬 수는 있을까요? 우선 내가 좋고 내가 만족해야 남들이 눈길이라도 한번 줄 것 같아서요. 현실적으로 말이에요.”


사진 한 장을 폰카로 찍긴 너무 쉽지만

돈 받고 팔릴만한 사진을 찍긴 어려운 일이니까요.


이게 바로 '글이 아닌 사진이나 그림으로 채운 책'을 고민하는 분들에 대한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12만 자 분량’은 노력의 나이테 같은 것 아닐까



그리고 ‘분량’의 의미는 고민의 깊이 또는 노력의 정도를 증명해 주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위에서 일관성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요. 하나의 주제로 글을 쓰다 보면 막히는 부분이 반드시 나옵니다. 더 이상 챕터를 이어가기 힘든 순간이 옵니다.


그걸 어떻게 풀어갈지. 작가는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씩 풀어 가는 것들이 엮여 마침내 한 권의 책이 완성되지 때문이지요. 생각해 보면 긴 글을 이어가는 시간 동안 글도 다듬어지지만 작가도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글과 작가는 한배를 탄 운명공동체라고나 할까요.


“형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만두에 대해서도 간단히 블로그에 올릴 수 있겠죠. 포스팅 용으로요. 막 헤시테크로 만두 맛집, 육즙어쩔, JMT, 사장님존잘 등을 걸어서 말이에요.”


그렇지만 만두 얘기로 책 한 권을 쓴다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입니다.


12만 자를 만두에 대해서만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단순히 리뷰만 써서는 어렵습니다. 또 그렇게 단순한 구성이라 할 지라도 책 한 권 분량을 채우려면, 하다못해 정말 많은 만두 집이라도 다녀야 합니다. 아니면 한 만두집을 정말 많이 방문하기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정도의 경지라면 온라인 포스팅용 글만 써본 사람과는 확실히 다른 ‘만두관’을 갖게 될 것 같고요.


결국, 12만 자라는 분량은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사색하고 더 많이 고민해야 써질 수 있는 노력의 나이테 같은 것 아닐까요.


그렇게 본다면 분량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다가올 것 같습니다.


“한 가지만 더 궁금한 게, 12만 자를 내가 채우면 그게 출판이 되는 거야? 아님 12만 자로 출판하려면 그보다 훨씬 많이 써서 편집 될것 까지 예상해야 하는 거야?”

“오 좋은 질문이네요.”


내용이 알차고 잘 정제된 글이라면 딱 12만 자만 채워도 될 것 같습니다. 길다고 좋은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스스로 보기에 좀 줄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최대한 응축해서 12만 자에 맞춰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손미나 작가가 처음 책을 썼을 때 책 한 권 분량보다 훨씬 많은 분량을 썼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일단 많은 글을 쓰고 그걸 줄여 나간 방식을 택한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는 처음부터 거의 책 한 권 분량에 맞춰서 글을 썼습니다. 자연히 줄여 나간 부분은 거의 없었고요. 처음부터 출판을 목적으로 하신다면. 위에서 말씀드린 분량을 고려해 스스로 하고 싶은 말들을 응축해 나가는 게 어떨까요. 물론 자기 스타일을 찾는 게 제일 중요하겠지만요.




한 편의 글을 쓰긴 쉽다. 그러나 계속 써 나가긴 어렵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소설 한 편을 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뛰어난 소설 한편을 써내는 것도 사람에 따라서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바로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라는 책에서 말입니다. 작가라는 직업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원로작가가 던지는 통찰이 담긴 말 입니다만 저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하나의 SNS 포스팅을 올리는 건 쉽다. 그러나 그것들을 차곡차곡 모아 하나의 챕터를 만들고 그렇게 20개의 챕터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긴 쉽지 않다.’라고 말이죠.


“작가와 예비작가를 구별하는 기준이 뭘까요?”

“글세. 등단? 문학상을 타본 사람?”


제가 좋아하는 장강명 작가는 단행본의 책을 출판했느냐 안 했느냐를 기준으로 보겠다고 합니다. 물론 아주 사적인 기준입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주제로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써낸 사람이라면 작가로서 자격을 갖췄다'라고 생각하는 그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막히는 부분을 뚫어 가며 그리고 백지의 공포를 떨쳐가며 연결하고 이어 붙여 12만 자라는 블록을 쌓아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형. 책 한 권 분량. 나는 이거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12만 자를 완성해 가는 시간 동안 늘어가는 건 단순히 글쓰기 실력이 아닙니다.


하얀 모니터 화면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은 마주하는 마음.

백지의 공포를 묵묵히 감내하며 오늘도 한 문장을 완성해 가는 마음.

그건 어쩌면 구도자의 마음과 닮아 있지 않을까요.


선배 K가 하얀 모니터 화면을 어떤 글자들로 채워 나갈지 저는 무척이나 궁금해졌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보며 남몰래 품어온 책 쓰기라는 꿈을 여러분들이 어떻게 실현해 나갈지 무척이나 궁금해졌습니다. 빈 모니터 화면을 자기만의 세상으로 한 글자씩 만들어갈 선배 K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 시간 속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성장해 나갈 여러분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오늘도 내 책을 꿈꾸는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One Point Lesson

책 한권을 완성하려면 약 12만자는 써야 합니다. 하나의 커다란 주제를 정하고 메모를 해 나가듯 짧은 글을 하나씩 완성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블록을 쌓아가듯 차근 차근 말이지요. 무슨 주제가 됐든, 그 주제로 12만자를 풀어 가다 보면 그 전과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그렇게 글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작가를 성장시킵니다.  



P.S. 지금 이 글이 약 5천 자 정도 됩니다. 이런 분량의 글이 20개 있다면 10만 자, 24개 있다면 12만 자입니다. 책 한 권 분량인 것이죠.




도움이 되셨다면
좋아요! 댓글! 구독하기! 부탁드려요~







* 글쓴이의 신간 둘러보기


* 글쓴이의 출간제안서 둘러보기




이전 04화 출판이 되는 글과 아닌 글은 어떻게 다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