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비의 실패에서 배우는 교훈
그 누구보다 화려했던 시작
"Quibi is dead", 지난 10월 22일 들려온 충격적인 소식이었는데요. 퀴비가 사업을 종료하고 정식 매각절차에 나설 것을 발표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이 소식이 놀라웠던 이유는, 퀴비의 첫 등장이 그 누구보다 화려했었기 때문입니다. 퀴비는 시작하자마, 무려 20억 달러의 투자를 받았던 회사였습니다. 심지어 투자자의 면모도 화려했는데요. 알리바바, 골드만삭스, 디즈니 등 모두 내로라하는 기업들이었습니다.
신생기업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투자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설립자의 네임벨류 덕이 컸습니다.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맥 휘트먼은 이베이와 HP의 최고 경영자 출신이었고요. 또 다른 창업자인 제프리 카젠버그는 드림웍스의 공동 창업자이면서 디즈니의 회장을 역임했었던 거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스티븐 스필버그, 윌 스미스, 기예르모 델 토로 등 유명 인사가 파트너로 참여하기까지, 말 그대로, 드림팀 그 자체였죠. 하지만 그렇게 화려하게 시작했던 기업이 6개월 만에 문을 닫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시장은 정말 냉정하다
이처럼 화려한 이력을 지녔던 두 창업자는 이번 실패를 반성하며 직원과 투자자를 향해 사과 편지를 발송하였는데요. 이번 실패는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자체가 강력하지 않았거나,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고 자평하였습니다. 그리고 퀴비의 짧았던 역사를 되돌아보면, 아무래도 실패의 원인은 타이밍보다는 역시 핵심 전략 자체가 먹히지 않았던 영향이 컸던 것 같습니다.
사실 언뜻 보면, 퀴비의 아이디어는 정말 신박해 보였습니다. 많은 OTT들이 이미 시장에 존재하지만, 이들의 콘텐츠는 모바일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정말 모바일에 맞춰 만든 콘텐츠를 가진 플랫폼이 결국 시장을 뒤흔들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이 이들의 가설이었는데요. 말이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가설에 따라, 가로로 보든, 세로로 보든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한다는 턴스타일 방식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론칭 후 성과는 기대에 미치치 못했고, 평가는 좋지 않았습니다. 실제 다운 수는 디즈니플러스의 초기 실적의 7.5%에 불과하였는데요. 초기에는 코로나 이슈 때문 아닌가 하는 전망도 있긴 했지만요. 시간이 흘러도 상황은 반전되지 않았습니다. 고객들은 턴스타일 등의 핵심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확보한 콘텐츠 수가 너무 적어서 비싸게 느껴진다는 불만도 많았습니다. 결국 무료 90일 사용기간이 끝나자 고객 이탈은 심해졌고, 결국 서비스 종료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죠.
플랫폼을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처럼 후발주자로 플랫폼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기존 플랫폼의 고객을 빼앗아 와야 하는데, 그렇다면 무언가 차별적인 경쟁역량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죠. 근데 중요한 것은 그런 포인트를 찾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 퀴비는 나름의 차별점을 캐치하였고, 이를 훌륭히 구현하는 데까진 성공하였지만, 방향성 자체가 잘못되었었기 때문에 결국 넷플릭스의 대항마로 성장하지 못하고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플랫폼을 만들 때는 정말 고객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주어야 합니다. 넷플릭스의 핵심 아이디어는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가 평소 느끼던 불편에서 나왔습니다. 일반 고객들도 공감할 수 있던 불편을 해결해주었기에, 넷플릭스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고객이 원하는 건 시청 경험보다는 시청하는 콘텐츠에 있다는 것을 캐치하고 오리지널 콘텐츠에 집중 투자하여 압도적 1위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퀴비는 정말 고객이 불편해하는 요소에 집중하지 않았고, 오히려 본인들의 기술적인 우월함을 드러내는 데만 집중하였습니다. 그랬기에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포기가 너무 빨랐다는 겁니다. 든든한 투자와 경험 많은 선장이 있었으니, 새로운 가설로 도전해볼 만도 한데 말입니다. 다만 넷플릭스조차 고전할 정도로 코로나 특수는 끝난 데다가, 경쟁은 여전히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 이러한 결론을 재촉한 것으로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성공한 플랫폼의 미덕 중 하나가 인내라는 것이죠. 아마존만 해도 긴 적자의 늪을 견뎠기에 현재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6개월은 처음부터 퀴비가 플랫폼 비즈니스를 안이하게 생각하고 접근한 것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드네요.
아무튼 강력한 도전자 하나가 제 풀에 지쳐 떨어져 나가면서 글로벌 OTT 시장은 넷플릭스가 당분간은 계속 이끌어나갈 것으로 보이는데요. 국내 OTT 시장의 경우, 최근 모바일 최적화라는 유사한 전략으로 시장 공략에 나선 카카오TV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