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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한 Nov 09. 2020

노동자냐, 사업자냐 그것이 문제로다

AB5법안 주민발의로 급제동 걸리다

 연일 미국 대선이 화제이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을 향후 4년간 이끌 선장을 뽑는 일이다 보니, 당연히 전 세계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또 다른 중요한 선거가 캘리포니아에서 치러졌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현지 시간으로 지난 3일 캘리포니아에선 대통령 선거 투표와 함께 주민 발의 법안 22호(Prop 22)에 대한 투표가 함께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 법안은 77%의 투표율 중 58.3%가 찬성하여 통과되고 만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주민 발의 법안 22호가 뭐길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이 법안은 지난해 9월 통과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 AB5 법안을 무력화시키려고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AB5법안은 또 무엇이냐고? 아마 공유경제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익숙할 것이다. 2-3년 전부터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단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유경제에 대해 조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법안 이름은 아니더라도 작년에 캘리포니아에서 이와 관련된 중요한 법 하나가 통과되었다는 걸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AB5법안은 그동안 사업자로 정의되던 이른바 긱노동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전 세계 최초로 명문화한 법이었다. 리고 1년 뒤 주민발의 법안 22호로 다시 긱노동자들은 개인 사업자로 되돌아간 게 된 것이다.


01 긱이코노미가 뭔가요?

 이번 주민 발의 법안이 가진 파급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공유경제, 그중에서도 긱이코노미에 대해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긱이코노미란 기업들이 단기 계약직이나, 임시직으로 인력을 충원하는 모델을 말한다. 긱(Gig)의 어원은 1920년대 미국 재즈클럽에서 고용하는 임시 연주자를 일컫는 말로, 일시적인 일을 뜻하는 단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러한 긱이코노미는 차량 공유 플랫폼 우버의 등장 이후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운전기사는 일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일할 수 있고, 회사는 그때그때 맞춰 일감을 주면 되는 형태이니 인건비 부담을 덜 수 있다. 또한 소비자 입장에서도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라 정해진 합리적인 비용으로 승차 서비스를 누릴 수 있으니 나쁘지 않은 모델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비즈니스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다. 긱이코노미 모델도 곧 문제점이 드러난다. 특히 지적받았던 문제는 노동차 처우 문제였다. 이러한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정규직이 받아야 할 보호를 받지 못한다. 모두 개인 사업자와 같은 형태로 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특히 우버나 리프트의 경우 기사들의 안전 문제도 걸려 있었기 때문에 더 큰 논란이 되었다. 따라서 이들 우버 기사들은 단체행동에 나섰고, 정치권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02 ABC테스트, 통과할 수 있겠니?

 이와 같은 논란에 가장 발 빠르게 나선 곳은 긱이코노미가 탄생한 캘리포니아 법원이었다. 캘리포니아 법원은 기존의 판례보다 근로자성의 기준을 확대 적용한 이른바 'ABC테스트'를 판결에 도입하면서, 긱노동자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ABC테스트는 아래와 같은 3가지 질문에 대해 회사 측이 증명하지 못한다면, 근로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A. 노무제공자는 계약상으로나 실제로 업무 수행과 관련된 지휘 감독을 받지 아니함 (the worker is free from the control and direction of the hirer in connection with the performance of the work, both under the contract for the performance of such work and in fact)
B. 노무제공자는 사용자의 통상적인 사업 범위 외의 업무를 수행하여야 함 (the worker performs work that is outside the usual course of the hiring entity's business)
C. 노무제공자는 사용자로부터 독립적으로 형성된 거래, 직업 또는 사업적 본질을 갖춘 업무에 관례적으로 종사하고 있어야 함 (the worker is customarily engaged in an independently established trade, occupation, or business of the same nature as the work performed for the hiring entity)


 다소 정의만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조금 더 쉽게 풀어 설명하면, 1) 업무 지시가 없어야 하고, 2) 업무가 회사의 핵심 업무와 상관없어야 하며, 3) 독립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공유경제 플랫폼인 배민 라이더스로 사례를 들어보자면, 수행하는 일에 대해 이런저런 기준이나 지침을 배민 측에서 주지 않아야 한다. 또한 배민 라이더스의 핵심 영역인 음식 배달과는 상관없는 영역에서만 종사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배민 라이더스 일을 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을 따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1가지도 아니고 3가지를 모두 통과한다는 건 한 마디로 그냥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테스트를 적용한다는 것은 긱노동자들은 모두가 회사가 고용한 근로자로 인정하라는 뜻과 사실상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판결을 아예 법으로 못 박아 버린 것이 바로 AB5법안으로, 작년 9월 10일에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통과된다. 이 법이 통과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바로 플랫폼 사업자들이었다.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수많은 긱노동자들을 근로자로 인정하고, 법으로 정해진 보호 조치들을 수용하면서는 결코 수익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원래는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되었어야 했지만, 우버 등의 플랫폼 기업들은 소송전을 벌여가며 저항하면서 본격적인 시행이 늦어진다. 하지만 잇따라 소송에서 패배하면서 그들이 마지막으로 내놓은 패가 바로 주민 발의 법안이었다.


03 주민 발의 법안 22호, 결국 플랫폼의 승리로 끝나다

  이번 선거 이전 샌프란시스코 법원은 AB5 법안을 지키라며, 긱노동자의 손을 들어준다. 우버는 결국 법안이 현실화되기 일보 직전까지 몰리자, 요금을 2배 올리거나, 아예 캘리포니아에서 철수하는 것까지 고려했다고 한다. 실제 우버는 국내 택시업계와 논쟁이 격해지자 관련 사업을 아예 철수해버린 사례가 있기도 하다.


 그래서 우버, 리프트, 도어 대시 등 주요 플랫폼 기업 3사는 이번 법안 투표에 무려 2억 달러에 해당되는 돈을 투자하여 홍보전을 벌인다. 그리고 이러한 로비의 힘 덕분일까? 투표는 압도적으로 플랫폼 기업의 승리로 돌아간다. 물론 이번 법안도 일부 책임을 플랫폼 기업이 지게 규정하고 있긴 하다. 소정의 건강보험과 최저시급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정 건강보험이나 고용보험까지 책임지도록 강제하였던 AB5법안에 비하면 확실히 후퇴한 안이다. 덕분에 우버는 계속 달리게 되었지만, 노동자들의 권익은 다시 뒤로 밀리게 되었다.


04 국내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국내에도 유사한 이슈와 관련된 논쟁이 최근 격화되고 있다. 바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이다.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숨지는 사태가 계속 이어지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이들이 과로사로 몰리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자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택배 노동자들도 근로자가 아닌 개인 사업자로 규정되어 보호의 사각지대에 몰려 있다는 문제가 계속 지적되고 있다.


 또한 국내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문제도 핫한 이슈 중 하나이자. 이미 작년 AB5법안 통과 이후, 국내에서도 유사한 논의는 이미 진행되어 오고 있었다. 더욱이 정부가 올해 연말까지 플랫폼 노동자 보호법을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번 주민 발의로 법안의 진보성이 후퇴하면서, 국내에서 준비 중인 여러 법안과 제도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온전히 이들 플랫폼 노동자들을 일반 노동자들과 동일한 처우를 누리도록 하는 형태는 더 어려워지지 않았나 싶다. 우버는 물론이고, 국내의 수많은 플랫폼 기업들도 아직은 대다수가 적자를 내고 있다는 현실도 막연히 기업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순 없게 만들고 있다.


 그렇기에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사회적인 타협이다. 지난 10월에 체결된 우아한청년들의 단체 협약이 좋은 사례일 듯하다. 배달의 민족 자회사 우아한청년들과 민노총 서비스연맹이 맺은 단체협약을 통해 아예 플랫폼 노동자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진 않았지만, 일부 처우 개선과 건강검진비, 휴식 지원비 등을 지급하며 책임을 다하는 형태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사실 이번 미국의 주민 발의 법안도 일정 부분은 플랫폼 기업들의 책임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형태로 사회적 타협이라 할만하다. 


 새로운 변화는 늘 진통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공유경제, 긱이코노미, 플랫폼 기업이 혁신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일자리와 경제적 가치가 분명 생겨났지만 동시에 여러 문제들을 낳은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문제는 단순한 접근으로는 이러한 부작용을 없애기 어렵다는 것이다. 혁신만 쫓으면 서민의 삶이 무너질 수 있고, 그렇다고 오로지 규제 일변도의 정책은 지난번 타다 사태처럼 아예 플랫폼 기업을 없애버릴 수 있다. 따라서 적정선을 찾아 타협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정부와 국회가 정말 탁월한 중재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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