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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묘한 Nov 18. 2020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게 찐이다

상처만 남을 듯한 11월 쇼핑 대전

 5월이 가정의 달인 것처럼 11월은 쇼핑의 달이다. 11월을 쇼핑 축제로 만든 원조는 바다 건너 중국의 알리바바. 2009년 티몰에서 중국판 솔로의 날인 광군절을 기념하는 프로모션 형태의 행사를 만든 것이 시초였다. 첫 해 84억 원이라는 소소한(?) 매출로 시작한 이 행사는 올해 무려 85조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실적을 남긴 매머드급 행사로 발전하였다. 알리바바가 솽스이라고 명명한 이 행사로 재미를 보자, 징둥 등 경쟁사도 대거 참전. 올해는 중국 전역에서 행사기간 동안 150조 원이 넘는 거래액이 발생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할 따름이다. 


 이러한 11월의 쇼핑 대축제는 어느덧 국내로까지 확산된다. 여기서의 선두주자는 11번가. 이름부터 11월과 관련이 깊었던 11번가는 이를 활용하여 매년 11월 11일 십일절이라는 행사를 만든다. 그리고 올해 십일절은 당일 거래액만 2,018억이라는 역대급 기록을 만드는 데 성공한다.


29CM 너마저...?

 이와 같은 단기간의 집중 행사는 할인을 주요한 경쟁력을 삼는 쇼핑몰이 가진 일종의 필살기와도 같다. 고객에게 이러한 행사로 할인하면 떠오르는 쇼핑몰로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고, 대량 판매 기회 제공을 통해 바잉파워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짧으면 하루, 길어야 2주 정도의 행사를 위한 준비를 최소 6개월 전부터 시작한다. 그것도 전사적으로 사활을 걸고 준비한다. 하지만 모든 쇼핑몰들이 할인을 전략의 핵심으로 삼지는 않는다.


(출처 : 29CM)

 이처럼 쇼핑몰들이 펼치는 경쟁전략은 제각기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29CM는 특별한 방법을 추구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아예 회사 소개에서조차 할인 중심에서의 탈피를 추구한다고 소개할 정도로 콘텐츠 큐레이션을 차별화된 강점으로 내세우는 회사였다. 그래서일까? 이번 11월 29CM가 보낸 푸시 메시지는 어떤 의미로 정말 충격적이었다.


(출처 : 29CM)


 보통 29CM가 보내는 메시지는 정말 독특한 분위기를 지닌 경우가 많았다. 마치 우측 이미지처럼 '소년에서 어른으로'라는 감성 가득한 문구가 늘 가장 먼저 눈에 띄었고, 마치 연인이 보낸 편지처럼 장문의 텍스트로 브랜드의 강점을 조곤조곤 설명하곤 했었다. 하지만 지난 한 주간 29CM가 보낸 편지는 이전과 달랐다. 여타 일반적인 쇼핑몰처럼 최대 할인율과 한정 기한을 강조하였고, 심지어 마트, 리빙, 가전 등 평소 집중하지 않던 카테고리의 메시지도 많이 보내왔다. 


 이러한 29CM의 변신은 안타깝지만 이해는 갔다. 정체된 실적과 에이블리 등 후발주자들의 위협. 더욱이 11월 대대적인 할인 행사를 펼치는 대형 플랫폼들에게 시선이 아무래도 쏠리는 만큼. 11월은 풍요로우면서도 빈곤한 달이었을 것이다. 고객의 지갑은 확실히 열리는 시기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것을 둔 경쟁은 치열한 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민하다 내린 답이 작년부터 진행한 이굿프라이스라는 행사가 아니 였을까? 할인 중심의 경쟁에서 더 이상 뒤쳐질 수 없었기에 말이다.


바쁘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할인 중심의 경쟁에서 승리한 플랫폼이라고 결코 행복하지는 않다. 일례로 11번가는 겉보기엔 완벽한 승자와도 같다. 2017년만 해도 640억에 불과했던 십일절 거래액은 올해 2천억을 넘겼고, 오랜만에 이커머스 시장 내 화제의 중심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출처 : 11번가)


 하지만 이러한 것은 상처뿐인 승리였을 뿐이다. 작년으로 되돌아가 보자. 11번가는 한때 이베이코리아를 이기기 위해 적자 경쟁을 벌이던 회사였지만, 작년부터 내실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한다. 그렇게 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하며 작년 연간 기준으로도 흑자 전환에 성공한다. 하지만 작년 4분기만 보면 다시 적자로 돌아선다. 십일절 프로모션 비용으로 너무 과도한 마케팅비가 지출된 것이 원인이었다. 올해 코로나라는 이커머스 업계에겐 호재가 찾아왔지만, 심화된 경쟁으로 올해 1~3분기도 연속 적자를 낸 11번가. 이번 십일절 거래액 신기록도 막대한 비용을 쏟아 만든 것인 만큼 올해 연간 흑자 마감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11번가의 십일절에 대항하기 위해 빅스마일데이를 만든 이베이 코리아도 속이 편치 많은 않다. 빅스마일데이 역시 올해 무려 전년대비 60%나 성장하며 나름의 성공을 거두긴 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이베이의 내일은 불투명하다. 빅 프로모션을 몇 년째 성공시키고 있지만 진짜 경쟁에선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싸우지 않아도 이미 이긴 네이버와 쿠팡

 정말 신기한 것은 이커머스 업계의 1등을 다투는 양강, 네이버와 쿠팡은 11월을 요란하게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사적 차원의 액션을 지양하는 네이버는 그렇다 쳐도, 쿠팡은 분명 작년까지만 해도 땡큐위크라는 특가 행사를 3년 연속으로 열곤 했었다. 비록 다른 경쟁 플랫폼처럼 대대적인 광고를 진행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쿠팡은 왜 11월 행사를 따로 기획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쿠팡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할인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할인 행사 없이도, 거래액이 쭉쭉 성장하는 데 프로모션 비용을 과다하게 지출하면서 적자 행사를 만들 필요가 없는 것. 이는 네이버 또한 마찬가지이다. 쿠폰 경쟁을 펼쳐서 이길 자신이 없는 게 아니라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두 플랫폼. 이번 11월 쇼핑 전쟁의 진정한 승자가 아닐까?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최선의 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이미 이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고 싸우라는 것이다. 2020년 11월 우리는 손자가 말한 최선의 전략으로 전쟁에서 승기를 잡아가고 있는 네이버와 쿠팡을 만나고 있다. 결국 경쟁에서 중요한 것은 남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차별화된 역량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기에 할인이라는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포인트를 핵심 무기로 가져가면 오래 생존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아마 이번 달은 역대 최고의 온라인 쇼핑 거래액 기록을 경신할 것이다. 하지만 기록적인 성과 뒤에 가리어진 그림자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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