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온라인에 적합한 상품인데도 불구하고, 주인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패션 산업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컨퍼런스&미디어 플랫폼 [디토앤디토]에 기고한 글입니다
지난 7월 24일 쿠팡이 올리브영을 공정거래위원회에 '납품업체 갑질'로 신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쿠팡 측의 주장에 따르면, 수많은 화장품 납품 업체들이 올리브영의 압박에 못 이겨 쿠팡과의 거래를 포기했다고 하고요. 심지어 올리브영이 납품업체와 계약할 때 쿠팡 등 경쟁사를 명시하고, 납품하려면 사전 협의를 받아야 한다고 적시한 계약서 등을 증거 자료로 공정위에 직접 제출했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은 이러한 올리브영을 향한 쿠팡의 공개 저격을, 흔히 햇반 전쟁이라 불리는 쿠팡과 CJ제일제당 간의 공급가를 둘러싼 갈등의 연장선상이라 해석하기도 하고요. 또한 일각에서는 그간 별개의 시장으로 여겨져 왔던 온오프라인 유통을 하나로 묶어 공정위가 인식하게 만들어, 독과점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쿠팡과 올리브영의 자작극이 아니냐고 바라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만 여기서 간과한 점이 하나 있는데요. 쿠팡의 최근 행보를 쭉 지켜보다 보면, 쿠팡이 '정말 뷰티 카테고리에 진심이구나'가 느껴진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기저귀, 생수 등 생필품에서 출발하여, 로켓프레시로 신선식품을, 그리고 로켓설치로 가전과 가구까지 손을 뻗치는 등, 쿠팡은 끊임없이 카테고리 확장을 추구해 왔는데요. 신고 직전인 7월 3일에는 럭셔리 뷰티 브랜드 전용관 로켓럭셔리를 공식 출시하며, 이제 다음 타깃은 화장품이라고 당당히 선언하였습니다. 어쩌면 올리브영을 공정위에 신고한 것 역시, 정말 뷰티로 확장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이렇듯 뷰티에 진심인 곳이 쿠팡 하나가 아닙니다. 컬리는 작년 11월 뷰티컬리를 론칭하며, 본격적으로 화장품 시장에 뛰어들었고요. 그보다 앞서 작년 4월에 롯데온은 버티컬 커머스 전략으로의 전환을 선언하며 가장 먼저 고급 화장품 전문관 온앤더 뷰티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커머스 플랫폼들은 뷰티 시장을 탐내고 있는 걸까요. 또 왜 하필 그중에서도 럭셔리 뷰티 시장을 둘러싼 경쟁이 이렇게나 치열한 걸까요?
사실 뷰티는 이커머스 플랫폼이라면 모두가 탐내는 시장입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시장 크기는 상당히 큰데, 주인이 없습니다. 즉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죠. 작년 기준으로 온라인 뷰티 시장은 대략 11조 원 정도로 추정되는데요. 패션 시장이 30조 원가량 되니, 결코 작지 않은 크기입니다. 하지만 올리브영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플레이어가 전무합니다. 그나마도 올리브영의 온라인 거래액이 7,000억 원 정도에 불과하니, 해볼 만하다고 느꼈을 겁니다. 작년 기준으로 조 단위 이상의 거래액을 기록한 버티컬 플랫폼이 무신사, 지그재그, 에이블리 등 3개고, 5천억 원 이상으로 기준을 낮추면 거의 10개 가까이 되는 패션 시장에 비하면 쉬워 보일 정도인데요. 그래서 서두에 언급한 쿠팡, 컬리, 롯데 말고도, 무신사, 지그재그, 에이블리 등 패션 버티컬 플랫폼들 마저 뷰티 전문관을 만들며 이를 적극적으로 공략 중에 있습니다.
또한 수익 측면에서도 뷰티는 정말 매력적인 시장입니다. 작년 하반기부터, 커머스 시장의 경쟁 키워드가 성장에서 수익으로 바뀌면서, 많은 기업들이 흑자 전환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뷰티 상품은 마진이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수수료 수취가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부피는 작은데 단가는 높아서 배송 효율이 좋다는 점에서 수익 강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컬리가 뷰티컬리를 출시하고, 심지어 플랫폼 이름마저 바꿀 정도로 애를 쓴 건, 흑자 전환을 위한 키로 뷰티를 봤기 때문인데요. 컬리의 적자를 만든 주원인인 배송 비용을 낮추기 위해선 하나의 차량에서 나오는 이익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당연히 차량에 마진이 많이 남는 상품을 많이 실어야 하고요. 근데 뷰티 상품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작은 데다가, 마진도 좋으니 부피당 이익이 엄청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쿠팡이 로켓럭셔리를 통해 얻고자 하는 효과 역시 이와 동일하고요.
그러면 왜 하필 럭셔리 뷰티였을까요? 많은 기업들이 뷰티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가장 요란하게, 그렇기에 향후 실적이 가장 기대가 되는 곳은 바로 쿠팡과 컬리입니다. 일단 컬리는 블랙핑크 제니라는 빅모델을 기용하여, 엄청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으면서까지 뷰티컬리의 조기 안착에 힘을 쏟았고요.
쿠팡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올리브영 저격까지 불사하며 지원 사격을 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가장 먼저 노린 곳이 아이러니하게도 럭셔리 뷰티 상품으로 동일하였고요. 알고 보면 이는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럭셔리 뷰티는 올리브영의 최대 약점이기도 하거든요.
올리브영이 지금처럼 독보적인 입지를 만드는데 기여한 요인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역시 기존 뷰티 시장을 인디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올리브영 이전에는 화장품 시장은, '백화점 1층 화장품'이라 불리는 고급 럭셔리 상품군과 주로 거리의 로드숍에서 팔리는 중저가 브랜드로 양분되어 있었는데요. 올리브영은 멀티숍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채널이 등장하면서 시장이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주요 브랜드들이 직접 운영하는 로드샵과 경쟁하기 위해, 올리브영은 중소기업들의 인디 브랜드를 적극 육성하였는데요. 결국 이를 바탕으로 다양성 측면에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뷰티 시장 장악에 성공합니다. 이제는 뷰티 유통 권력이라 불릴 만큼 올리브영의 위상은 올라갔고, 랭킹이나 어워즈 등을 통해 브랜드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만 자사 브랜드의 이미지를 중시하는 럭셔리 뷰티 브랜드들은 여전히 백화점 위주의 판매 방식을 고수하였고요. 여전히 이들을 찾는 고객들은 많습니다. 더욱이 이들의 디지털 전환 속도는 상대적으로 더디기도 하고요. 따라서 올리브영이 아직 장악하지 못한 이들 럭셔리 브랜드야 말로, 쿠팡, 컬리가 무기로 삼을 최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러면 백화점 1층을 누가 가장 먼저 온라인으로 옮기는 데 성공할까요? 결국 이들 브랜드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디브랜딩 없이 온라인으로 추가 매출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합니다. 컬리가 가장 먼저 치고 나갈 수 있던 건, 일단 컬리 자체가 프리미엄 브랜딩을 잘 유지하고 있었고요. 배송 품질 면에서도 합격점을 받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조금은 늦게 여기에 합류한 쿠팡은, 대신 포장 차별화로 승부를 겁니다. 로켓럭셔리로 상품을 주문하면, 고급스러운 박스와 전용 파우치에 상품을 담고, 땡큐카드까지 동봉하여 보낸다고 하는데요. 이렇듯 세심한 라스트마일 서비스를 통해 브랜드의 품격을 지켜준다고 설득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직 존재감은 약하지만 롯데온의 온앤더뷰티 같은 서비스들은 기존 오프라인 백화점에서부터 맺어온 관계를 무기로 상품을 확보하고 있고요.
물론 올리브영도 가만히 이를 지켜보고만 있진 않습니다. 7월 17일 프리미엄 화장품 전문관을 표방하는 럭스에디트를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선보였고요. 앞으로도 프리미엄 화장품 라인업을 확장하며, 결코 이들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마 한동안은 럭셔리 뷰티를 둘러싼 이들의 경쟁은 계속 뜨거워질 것 같네요.
하지만 이들은 럭셔리 브랜드들에게 너무 끌려다니면 모두가 같이 망하는 길로 갈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할 겁니다. 가장 속성이 비슷한 명품 커머스의 경우, 지나치게 공급자의 힘이 강력하여 플랫폼들은 현재 모두 막대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데요. 한때는 정말 무섭게 성장했던, 머스트잇, 트렌비, 발란 모두 올해는 정말 생존 압박에 시달리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럭셔리 뷰티 시장을 노리는 이들 역시,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브랜드들과의 공급가 협상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을지 고민해야 할 겁니다. 아니면 적어도 럭셔리 뷰티로 모은 고객들을 가지고, 추가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라도 마련해야 하고요. 아마 최종 승자는 경쟁자를 이길 비책에 더하여, 승자의 저주를 피할 출구전략까지 완벽히 갖춘 곳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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