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통합이 있어야, 신세계의 반등이 가능해질 겁니다
신세계의 이른 임원인사가 연일 화제입니다. 사상 최초로 신세계와 이마트 대표가 동시에 교체되는 등, 무려 전체 대표이사의 약 40%가 새로운 얼굴로 바뀌었기 때문인데요. 이뿐이 아닙니다. 여러 계열사를 동시에 맡는 겸직 CEO만 4명이 선임되었을 뿐 아니라, 이마트, 이마트에브리데이, 이마트24, 신세계프라퍼티, SSG닷컴, 지마켓 등 6개 리테일 브랜드를 하나로 묶어, '리테일 통합 클러스터'라는 새로운 운영구조를 신설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마트는 연일 어닝쇼크를 기록하며, 역대급 실적 부진을 보이고 있고요. 한때 잘 나가던 신세계 백화점마저 성장률 둔화와 영업이익 급감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듯이, 경영진 대거 교체라는 강수를 먼저 둘 수밖에 없었던 거죠.
이번 임원인사를 하나의 키워드로 요약하면, '통합'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 이마트는 유통업계 1위 그룹의 타이틀을 쿠팡에 내주었고요. 신세계 그룹 전체로 보아도 격차는 점차 줄어들고 있고, 유통부문만 따지면 사실상 따라 잡힌 상황입니다. 이렇게 신세계가 쿠팡의 기세에 눌린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대기업 특유의 굼뜬 의사결정과 계열사 간 내부 경쟁으로 인한 투자 분산입니다. 이러한 자아성찰이 있었기에, 이번 인사로 겸직 CEO를 세워 계열사 간 장벽을 허물고, 통합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 운영구조를 도입한 것으로 보이고요.
이를 통해 신세계 그룹은 크게 3가지 측면에서 이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통합 MD 전략을 통해 마진 확대라는 실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미 경쟁사 롯데쇼핑은 마트와 슈퍼 부문을 강성현 대표가 겸임하게 하면서 MD부문을 통합시켰고요. 이를 통해 바잉파워가 확대되면서 매출총이익률이 전년 대비 약 2%p 개선되면서 실적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이마트와 에브리데이, 이마트24의 합산 연간 매출액 규모는 20조 원에 달하는데요. 산술적으론 매출총이익률이 1%p만 개선되어도 약 2,000억 원의 이익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신세계 그룹의 아킬레스 건이라 할 수 있는, DT(Digital Transformation, 디지털 전환) 전략 역시 통합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그간 신세계의 DT는 구조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습니다. 자원과 시간은 한정적인데, 계열사 간 중복 투자로 인한 낭비가 많았기 때문인데요. 퀵커머스 사업이 대표적으로, 이마트와 에브리데이, 이마트24는 제각기 이를 테스트하며 힘을 분산시켰습니다. 결국 셋 중에 시장에 제대로 안착한 서비스는 하나도 없었고요. 일각에서는 이번 겸직이 '맞춤경영'을 어렵게 만들 거란 우려하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DT 전략에선 보다 통합된 움직임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야심 차게 내놓은 통합멤버십,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에 조금 더 힘이 실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세계 그룹은 잃어버린 유통 시장 내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대대적으로 유료 멤버십 개편을 단행하였지만, 초기 평가는 다소 아쉬웠습니다. 생각보다 파급력이 미미했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계열사 별로 이를 대하는 온도차가 있었던 것은 주요한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일례로 가장 범용성이 높은 이마트24 관련 혜택은 아예 부재하기도 했고요. 그렇기에 이번 인사를 계기로 그룹 전체가 리테일 통합 클러스터를 중심으로 최우선순위로 신세계 유니버스 클럽에 두고 움직인다면, 분명 새로운 반전을 기대할만할 겁니다.
지금까지 임원인사에 담긴 신세계의 고민과 기대하는 바를 차근차근 살펴보았는데요. 최근 많은 이들이 신세계 그룹, 특히 이마트에 대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경영진의 위기 대처 능력이 부재했다고 보진 않습니다. 실제로 신세계는 한 박자씩 빠르게 과감한 결단과 변화에 나서고 있고요. 그래서인지 롯데쇼핑에 비하면 여전히 신세계의 상황이 나은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문제는 이들이 경쟁하는 쿠팡이 이보다 더 빠르고 과감하다는 건데요. 이번 임원인사 역시, 그 한 끝이 여전히 부족해 보여 안타깝습니다.
무엇보다 온라인 전문가가 최고 경영진 중에 부재하다는 건, 특히나 아쉬운 일입니다. 이번에 새로이 이마트의 수장이 된 한채양 대표만 해도 검증된 위기관리 능력이 돋보이는 건 사실이나, DT를 진두지휘할 인물로 어울려 보이지 않습니다. 월마트에 디지털 DNA를 심어주었다고 알려진 마크 로어 제트닷컴 창업자와 같은 이커머스 전문가가 신세계 그룹엔 정말 필요합니다. 물론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를 만든 이석구 전 스타벅스 대표처럼, 온라인 비전문가도 DT를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긴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신세계는 안전한 선택을 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또한 가장 중요한 포스트인, 이마트와 SSG닷컴의 대표이사가 모두 기획/재무 전문가라는 점도 위험 요소입니다. 현재 신세계 그룹, 더욱이 이마트에게 수익 개선이 가장 중요한 과제인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달성할 구체적인 전략이 중요한 시점이기도 한데요. 지나치게 수익 개선으로 모든 의사결정이 쏠리면, 골든타임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우려됩니다.
마지막으로 통합의 범위가 여전히 이마트 계열 내에서 끝난 점 역시, 향후 '이마롯쿠' 경쟁에선 불리한 요소로 작용할 겁니다. 덩치는 크지만 여전히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는 쿠팡은 물론, 대부분의 유통 계열사들을 하나로 모아 거느리고 있는 롯데쇼핑과 달리, 신세계 그룹은 백화점과 마트 간 경계선이 뚜렷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은 사실 총력전이 아니고서야, 반전을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리테일 통합 클러스터를 넘어, 정말 그룹 전체가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어야, 정말 제대로 된 신세계의 반격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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